▲ 김문건 목사 신광교회 담임

지금도 보화는 밭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여러분의 가족이나 이웃, 여러분의 도움을 받고자 찾아오는 어느 한 사람이 여러분을 인생의 축복의 통로로 인도할 왕일지 모릅니다.

◈ 월 : 하나님 편에 서자 / 잠언 21장
인생은 거의 모든 경우가 싸움입니다. 이 원리는 이미 창세기 3장 이후 인류의 시조가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후 “에덴 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에서 잘 나타나 있습니다. 또한 사랑하는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서신을 쓴 바울의 디모데후서에서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그러면 어떻게 지혜로운 승리를 가져올 수 있을까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삼국지에도 보면 제갈공명의 승리의 원인은 항상 전략적 요충지를 확보하는데 있었다고 합니다. 지혜로운 승리는 언제나 자신의 자리를 잘 찾는 데 있습니다. 다윗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의 최고의 전략은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입니다. 자기 백성에게조차 죽임 당할 위험에 처했던 다윗은 그 하나님 여호와께 힘입고 용기를 얻었습니다(삼상 30:6). 삼상 31장 8절에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라고 했습니다. 이렇듯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하나님 편에 서는 겁니다. 온 백성이 배반하는 와중에도 여전히 하나님 편에 서는 것, 이것이 참 승리의 방도입니다.
▶ 기도 : 언제나 하나님 편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아멘.

◈ 화 : 왕 앞에 설 자 / 잠언 22장
하나님은 우리를 천한 자 앞에 살지 않고, 왕 앞에서 살도록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던 우리는 여전히 신분이 변화된 존귀함을 망각하여 천한 자 앞에 서기를 즐기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준에 나를 맞추기보다는 자신의 형편에 따라 하나님을 움직이려 합니다. 이 모든 것은 자신의 존귀한 위치를 몰라서 생기는 인생의 오류입니다. 마태복음의 산상수훈 마지막 부분을 보면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사람과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사람이 나옵니다.

누가 모래 위에 집을 짓겠습니까마는 인류는 이 어이없는 일들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귀한 인생, 더구나 그리스도의 보혈로 완전히 거듭난 참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자긍심을 헌신짝처럼 버립니다. 자신의 인생의 참 가치나 의미도 모른 채 매일을 살아갈 뿐입니다. 감옥에 갇혀도 하나님이 주신 꿈을 잃지 않았다가 급기야 문자 그대로 왕 앞에 선 요셉 이야기를 그저 이야기로 알아서는 절대 안 됩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준비하심을 우리 모두는 스스로 확인하며 하루를 살아야 합니다.
▶ 기도 : 왕 앞에 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자긍심을 잃지 않게 하소서. 아멘.

◈ 수 : 소망의 사람 / 잠언 23장
성도를 무엇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한마디로 ‘소망이 있는 자’입니다. 에베소서 2장 12절에는 “그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라고 우리의 과거를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자는 교회를 못가는 정도가 아니라, 소망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꼴이라고 말씀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3절에는 죽음 앞에 서 있는 믿음의 형제들에게 아주 담대하게 권고합니다.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입니다. 성도란 어떤 경우에라도 소망을 말할 수 있는 온 우주의 유일한 존재입니다. 이 놀라운 축복을 어디서 받을 수 있나요? 바로 우리의 마음가짐에서 온다고 본문 17절은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부러워 말고,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고 말입니다. 입술의 소리를 넘어서 마음으로 하나님을 조용히 찬양함으로 참 소망의 자리를 되찾기를 기대합니다.
▶ 기도 :여호와를 경외하여 소망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아멘.

◈ 목 : 다시 일어나자 / 잠언 24장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지느니라”

인생을 이처럼 과학적이고 현실적으로 묘사한 글귀가 성경 이외는 없는 것 같습니다. 참 감사할 뿐입니다. 누구나 넘어진다고 아주 친절하게 알려 줍니다. 무엇이 이단인가요? 실제적으로는 이단은 인생의 고난에 대해서 설명할 방도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알려 줍니다. 넘어질 수 있는 게 인생이라고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다음입니다. 일어설 수 있느냐입니다. 성도는 다시 일어서는 자입니다. 인생은 나오미처럼 하나님이 넘어뜨리시기도 합니다. 그 때 나오미는 겸손히 하나님의 넘어뜨림을 받아들입니다. 룻기 1장 21절입니다.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나로 비어 돌아오게 하셨다.” 이것을 인정하고 나오미는 일어섰고, 믿음으로 일어선 나오미는 다윗 왕국의 주춧돌을 놓습니다. 넘어짐을 딛고 일어서는 자가 바로 예수 믿는 자입니다.
▶ 기도 : 겸손히 하나님의 넘어짐을 받고 그곳에서 바로 서게 하소서. 아멘.

◈ 금 : 왕 앞에서 / 잠언 25장
잠언에는 왕 앞에서라는 말이 자주 나옵니다. 우리가 주변의 사람들을 대할 때에, 우리에게 축복의 통로로 주신 왕으로 생각하느냐 그렇지 않고, 마구 대할 수 있는 천한 자로 여기느냐가 축복과 저주의 차이를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나요? 우리 주변을 자세히 믿음의 눈으로 보면, 축복의 통로가 많이 준비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렘브란트나 고호 등 유명 화가의 경우를 보면, 그들 작품의 대상은 주로 그 주변에 있었던 마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삶과 그들의 얼굴, 그들의 손에 묻어 있는 삶의 이야기를 화폭에 담았고, 나중에 세계적인 명작이 되었던 것입니다.

마 13장에 나타난 있는 바와 같이, 지금도 보화는 밭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여러분의 가족이, 이웃이, 여러분의 도움을 받고자 찾아오는 어느 한 사람이 여러분을 인생의 축복의 통로로 인도할 왕일지 모릅니다.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이 붙여준 환경, 사람, 이웃에 감사하는 일로부터 하루를 시작함이 옳지 않을까요?
▶ 기도 : 우리 주변 사람들을 존귀히 여기게 하소서. 아멘.

◈ 토 : 상관없는 다툼 / 잠언 26장
어려서 사촌 누이가 개의 귀를 잡았다가 얼굴에 큰 상처를 입는 것을 보았습니다. 참 무서웠습니다. 이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인지 아닌지 자세히 묻고 또 묻는 일들이 있지 않으면 나의 선행이 진노를 불러 올 수도 있다고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인생의 문제를 자신이 다 해결해야 하고 또 할 수 있다고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길로 지나다가’라고 적시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길을 지나면서 자신의 사명이 뚜렷한가를 하나님은 묻고 있습니다. 가족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가정과 교회를 동일한 창조 원리로 만드신 것입니다. 인생 길을 가면서 우리에게 가족을 주심은 동반자일 뿐입니다. 가족은 우리의 소유가 절대 아닙니다. 저들의 인생, 특히 자녀의 인생은 우리 삶의 보상이 결코 아닙니다. 그렇다고 무책임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참 주인이신 하나님께 맡길 수 있냐는 것입니다. 상관없는 다툼이란, 이런 면에서 일이 크게 벌어진 다음에 어리석게 개입하지 말고, 평소에 삶을 함께 나눌 이웃, 성도, 가족 간의 삶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툼이 생긴 다음에 개입하지 말고, 삶을 나누라고 말입니다. 믿음을 나누세요. 믿음을 강요하지 말고 말입니다.
▶ 기도 : 삶과 믿음을 나누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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