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는 고대 유대교에서 태어났을 거야”

다위드 총 주교는 아들 요한과 마주 앉았다.

“아들아, 나는 너를 보고 있노라면 저 옛날 다윗 왕이 생각난다. 다윗 왕은 어느 날, 하나님으로부터 네 허리에서 난 자가 성전을 짓게 된다는 말씀을 들었지. 그때 다윗 왕의 머리를 스쳐가는 사람이 솔로몬이었어. 아마 다윗 왕은 솔로몬에 대한 신뢰가 적었을 거야.”
“총 주교님. 왜 솔로몬 이야기를 하세요?”

“다윗이 지을 수 없는 성전이라면 솔로몬도 지을 수 없지. 냉정하게 다윗과 솔로몬 두 인물을 비교하면 다윗이 훨씬 더 큰 인물이었지. 그런데 네 아들이 성전을 지을 것이라는 말씀을 따라서 솔로몬 왕이 예루살렘 성전을 지었단 말이야.”

“그래서 역사가 비뚤어졌다고 할머니가 말씀 하시더군요.”

“그래, 네게도 말씀해 주시더냐? 나도 네 할머니께 들었다. 다윗의 왕궁이면 솔로몬이 지을 수 있으나 성전이기에 다윗의 아들일지라도 영적인 아들이어야지 육신의 아들인 솔로몬이 아닐 거야.”

“그렇군요. 그래서 할머니가 그런 말씀을 하셨군요.”

“요한아. 나는 다윗의 영적인 아들은 예수님으로 본다. 그리고 다윗의 영적 아들인 예수가 지은 성전은 말이지, 성전 아닌 성전이다. 이동성전이라고 할까, 이스라엘이 모세를 따라서 시나이 광야 생활을 할 때가 이동성전 시대였단다. 그때는 사막의 생활이었기에 이동성전이었다. 인간들이 정착생활을 하면서 성전도 고정 건물로 지었지만 예수님이 오신 뒤로는 달라져야 할거다.”

“그래서 예수님이 성전이시군요.”

“그렇다. 그래서 우리들 네스토리우스 파 교회는 성전을 로마 가톨릭처럼 짓지 않는다. 성전이 웅장한 건물로 자리 잡는 수준은 예수님이 바라시는 것이 아니다.”

“성전이 내 몸 안에 있습니다. 그럼, 우리 기독교는 이슬람 종교보다 월등한 영적 수준에 올라있군요.”

“왜, 그럴까?”

“그렇잖아요. 이슬람 신자들은 메카를 향하여 정확하게 하루에 다섯 번 절을 합니다. 메카에 가 본 이슬람 사람들이 전해주는 말에 의하면 메카의 신전이 어마어마하다더군요. 더군다나 바쁘게 사는 세상에서 하루 다섯 번 메카 방향으로 절을 하는 수준이면 우리들 네스토리우스 파에 비하면 수준이 떨어지는군요.”

“어디 이슬람 뿐이더냐. 로마 제국이나 그 밖의 다른 기독교들도 건물은 웅장하게 지어놓고 우월감에 취해 있단다. 그에 비하면 우리들은 몇 단계 더 높은 수준의 종교적 자부심을 가져도 되는 거야.”

“그런데 아버지, 저는 이슬람 형제들이 좋거든요. 그들의 활동성이 놀랍잖아요. 그렇죠. 총 주교님.”

“그래, 그러나 나는 이슬람이 두렵다. 이슬람이 유럽의 우리 기독교 국가들을 절반 이상 차지하였다. 앞으로 우리를 앞지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저는 그럴 수는 없다고 봅니다. 언젠가 아버님이 말씀하셨죠, 하나님이 이슬람을 내 보내심은 잘못을 저지르는 기독교를 가르치려는 뜻이라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슬람은 기독교를 앞지를 수는 없습니다. 기독교에게 교훈으로 주는 반면교사일 뿐이죠.”

“그렇다. 내가 두렵다고 말하는 것은 이슬람을 두려워하는 당사자가 나와 너라는 것이 아니라 이슬람 유혹에 넘어가는 유럽의 기독교를 두고 하는 말이니라.”

“그래요. 저도 알고 있어요. 지금 여기 장안에 있는 이슬람 사람들은 얌전해요. 중앙아시아도 마찬가지라고 저는 듣고 있습니다.”

“그래, 아들아 너는 요즘 내가 선교 영역을 확대하고, 심지어 각 지구 절도사들까지 선교 인력으로 동원하고 있음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당나라 정변이 있은 후에는 옛 모습이 아니라는 말들을 하지만 당나라는 지금도 로마제국보다 더 강력한 나라죠. 군 사령관들이 우리의 선교에 협조하고 있음은 고마운 일이죠. 그들의 선교는 군 내부 군사들을 상대로 하는 일이니 괜찮은 일이 아닐까요.“

“그렇다. 군 사령부 산하 군인들도 예수님을 믿고 훌륭한 사람들이 되어야지. 시리아 학자들이나 선교사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네, 총 주교님, 우리 기독교는 하나님과 예수님의 관계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다’라는 말씀 앞에 기독교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큰 재앙이 따를 것입니다. 로마와 알렉산드리아 교구가 우리들의 지도자 네스토리우스 총 대주교를 이단자로 몰아낸 소행은 기독교의 불행한 자충수가 되었죠. 제가 볼 때 로마 기독교는 우리 네스토리우스 파 기독교를 버렸으나 하나님은 우리를 아시아 세계의 선교 책임을 맡기셨지요.

저는 이게 바로 사람과 하나님의 차이점으로 봅니다. 저는 총 주교님의 선교역량 확대 정책을 지지합니다.”
다위드는 아들 요한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대견한 듯이 바라보면서 다음 말을 이어갔다.

“너 요한은 내게 공부를 더 하고 싶다. 특히 이슬람 공부를 하고자 한다 했는데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느냐?”

“이슬람의 팽창해가는 속도가 무섭고, 그들의 힘이 칼에서 나오는 것이 의심스럽습니다.”

“그래 맞다.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 세 종교를 만들었으나 이슬람은 폭력을 가졌고 유대교는 사상을 가졌다. 기독교는 아직까지 특징이 없다.”

“특징이 없는 기독교라고요?”

“희망은 있다. 사상의 구체화이다. 다시 말하면 임마누엘의 실체를 보여 줄 때 기독교는 유대교나 이슬람을 이끌어 갈 메시아 종교가 될 수 있느니라.”

“임마누엘의 실체라니요? 저는 잘 모르겠어요. 아버지!”

“메시아 예수의 현재적인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다.”

“아, 그럼 내가 예숩니다라고 하라는 것인가요?”

“이 놈, 아둔한 내 아들아! 네 놈이 예수냐 요한이지. 그것도 다위드의 아들 요한 말이다.”

“…….”

“왜, 답이 없어!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은 곧 너와 내가 죽은 것이야. 이 문제를 해결 못하면 미신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미신은 싫어요. 임마누엘을 저에게 보여 주세요.”

“오냐, 내가 임마누엘이다.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셨느니라. 예수에게 오시고 내게 오셨고, 지금 너에게도 오려 하시느니라.”

“아, 알겠습니다. 총 주교님, 내게 정직한 믿음을 일깨워 주세요.”

요한은 다위드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아비보다 더 큰 아들이 갑자기 뛰어들자 다위드는 흐뭇했다. 아들의 가슴이 열리고 있음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다위드 총 주교는 위그리아 지역 사령관실에서 온 병사를 만났다.

“총 주교님, 강녕하셨습니까? 저희들도 순조롭게 선교활동을 잘하고 있습니다. 사령관님이 총 주교님께서 부대 방문을 한 번 꼭 와 주셨으면 합니다.”

“또 그 말인가? 내가 말했죠. 위구르 인들이 중심이 된 부대는 그들이 마니교를 국교로 모시고 있으므로 조심스러운 걸세. 종교들 간의 예의도 중요하거든!”

“저야 하시는 말씀을 잘 알죠. 그러나 저희 아턱귀 사령관님은 총 주교님과 기독교를 너무나 많이 좋아하십니다. 개인적으로 개종을 원하십니다.”

“어허…. 야단났군.”

다위드 총 주교는 아턱귀 위구르군 사령관에 대해서 크게 아는 바는 없다. 그의 군대가 안록산 반란군을 진압하기 위하여 당나라 수도 장안에 진입해 들어왔을 때 아턱귀는 하급 부대장이었으나 그가 사령관으로 승진하는 데 전임 주교 영부의 힘이 보탬이 되었다는 등의 내용만 알고 있다. 또 외국인 종교지도자의 영향력으로 당나라를 지원하기 위해서 온 위구르 족 군사령관 임명 문제 개입이 쉽지 않으리라는 것은 상식일 터인데 말이다.

“총 주교님께서 한 번 용단을 내리시면 우리 종교에 큰 유익이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이보시오. 군관은 마니교와 우리 기독교가 큰 차이가 있다고 보는가?”

“글쎄요. 깊은 뜻은 잘 모르오나 많이 다르지는 않다고 봅니다.”

“어째서?”

“마니교 창설자가 본래는 기독교 신자였으나 그의 조국 파르티아가 새 종교를 만들라고 해서 마니교를 만들었다는 말이 있더군요.”

“아니오, 아니야. 그럴리가요. 마니교는 기독교의 영향을 받은 것이죠. 당나라에 들어온 선불교 또한 우리 기독교의 영향을 받았죠. 더 오랜 옛날로 돌아가면 이스라엘 북왕조가 앗시리아에 멸망하고, 수도인 사마리아의 거주자들인 10개 지파 이스라엘 백성들이 동북방 쪽으로 흩어졌는데 그때가 주전 722년이니까 페르시아 동쪽 박트리아나 인더스 강 북방이면 북인도가 되겠지, 바로 그때 이스라엘 10개 지파 자손들이 떠돌이 생활할 때 불교의 교주 석가모니에게 영향을 끼쳤을 거야. 불교에서 나는 기독교 냄새를 많이 맡고 있어요. 불교는 고대 이스라엘 종교의 영향을 받아서 태어났을 확률이 많아요.”

“그럼 어떻게 되나요?”

군관은 멍한 눈으로 다위드 총 주교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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