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조선 사회를 해학과 풍자로 깨우친 연암 박지원의 소설 12편

   
▲ <연암 박지원 소설집> 박지원 지음/간호윤 옮김·해설/새물결플러스

“선비가 입과 배 때문에 구차해지면 백 가지 행실이 이지러지고, 부유한 생활을 누릴 수 있는 것은 탐욕스러움을 경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엄 행수가 비록 몸소 똥을 쳐서 밥을 먹을지라도 발은 더러우나 입은 깨끗하다.”

분뇨를 치우며 살아가는 ‘엄 행수’를 놓고 스승과 제자 사이에 말씨름이 벌어졌다. 학자인 ‘선귤자’가 엄 행수를 ‘예덕선생(穢德先生)’이라고 높여 부르며 벗으로 청하는 것이 못마땅한 제자 ‘자목’은 스승을 비난하며 문하를 떠나겠다고 한다. 예덕선생, 똥을 뜻하는 ‘예’에 ‘덕’과 학식이 높은 사람을 부르는 ‘선생’이라는 극존칭을 붙여 부름이 웬 말인가.

제자를 불러 앉힌 스승, ‘벗 사귐’에 대한 가르침을 시작하는데, “무릇 큰 사귐은 얼굴로 사귀는 것이 아니며, 좋은 벗은 지나치게 가깝지 않고 다만 마음으로 사귀는 것이고 덕으로 벗을 해야 하는 거란다. 이것을 이른바 도의지교라 하지”.

벗 사귐의 기본을 말한 스승은 본격적으로 엄 행수에 대해 풀어놓으며 왜 그를 ‘예덕선생’으로 높이고 벗으로 청하고자 하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아침 해가 뜨면 기쁜 듯이 일어나 흙 삼태기를 메고 동네 뒷간을 쳐 나르는 엄 행수, 똥 따위를 마치 값지고 귀한 보물처럼 모아다가 거름으로 주어 온갖 농작물을 극상품으로 자라게 하는 그의 일을 예찬하는 게 아닌가. 그뿐 아니라 분뇨 치우는 일에 몰두하며 볼만한 광경, 풍악소리도 거들떠보지 않는, “아침에 밥 한 사발만 먹으면 만족한 기분으로 다니다가 저녁이 되면 또 한 그릇 먹을 뿐” 타고난 분수를 기꺼이 받아들이면서 ‘사람 사는 예’를 지키는 그의 행실을 칭찬한다.

“선비가 좀 궁하다고 해서 얼굴에 나타내면 부끄러운 노릇이고, 출세했다 하여 온 몸에 표를 내는 것도 수치스러운 노릇이지. 아마 저 엄 행수를 보고 부끄럽지 않을 사람이 거의 드물걸. 그래 나는 엄 행수에게 ‘선생’으로 모신다고 한 것이다.”

자목은 스승의 가르침을 깨달았을까? 알 수 없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작은 일에 성심을 다하는 엄 행수의 모습에서 ‘사람 사는 예’를 엿보는 것이나 그에게서 참된 벗됨을 발견한 선귤자의 가르침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큰 울림을 준다.

이야기는 연암 박지원(1737~1805)의 <연암집 별집>, <방경각외전>에 실린 단편소설 ‘예덕선생전’으로 18세기 조선의 못난 양반들에 대한 비판을 ‘똥’으로 풀어낸 글이다. 이 소설을 쓰면서 연암은 “선비가 입과 배 때문에 구차해지면 백 가지 행실이 이지러지고, 부유한 생활을 누릴 수 있는 것은 탐욕스러움을 경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엄 행수가 비록 몸소 똥을 쳐서 밥을 먹을지라도 발은 더러우나 입은 깨끗하다. 이에 ‘예덕선생전’을 쓴다”고 밝히고 있다.

연암은 조선후기의 실학자이자 소설가로 <열하일기>, <허생전>, <연암집> 등을 남겼다. <연암 박지원 소설집>은 18세기 조선 사회가 격변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던 시기 조선 사회의 음습한 부분들을 해학과 풍자, 조롱과 꾸짖음 등을 통해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연암의 작품들을 묶은 것이다. 기존의 유교 사상과 질서에 충실했던 정조가 당시 사대부들의 문풍을 어지럽힌 배후로 박지원을 지목해 “근자에 문풍이 이렇게 된 것은 모두 박지원의 죄다”라고 한 바, 책에 수록된 연암의 작품들은 도발적이며 전복적이다.

단순히 기성사회를 붕괴시키고 해체하는 것에 목적을 두지 않고 모든 사람이 성과 신분에 종속되지 않고 참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이상적 사회를 고민하며 풀어낸 작품들, 조선 사회의 허구성과 위선을 고발하되 해학과 유머를 잃지 않은 연암의 작품들은 깊고 시원하다.

12편의 소설을 고전독작가(古典讀作家)인 간호윤 박사가 밀도 높은 주해와 감칠맛 나는 언어 선택으로 연암의 소설의 가치를 현대화하는 데 힘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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