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여섯 차례 옥고 치르는 등 민주화에 주력

   
▲ 고 박형규 목사

우리 사회의 민주화와 정의 구현에 앞장서며 행동하는 신앙인으로 살아온 박형규 목사가 8월 18일 소천했다. 향년 94세.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장 최부옥, 기장)는 장례를 총회장(5일장)으로 치렀다.
고 박형규 목사는 4.19 사태를 계기로 민주화운동에 앞장서왔다.

기독교의 사회참여를 실천하여 1973년 반유신체제 시위인 ‘남산부활절사건’,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사건’(민청학련사건)과 ‘기독교장로회 청년 전주시위사건’ 등에 연루되어 구속되는 등 평생 여섯 차례나 옥고를 치렀다.

고 박형규 목사는 지난 2014년 헌법재판소가 긴급조치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림으로써 명예를 회복했다.

1950년 부산대학교철학과를 중퇴하고 1950~58년 미 육군에서 근무, 그후 목사가 되기로 결심해 1959년 일본 도쿄신학대학원에서 석사학위, 1963년 미국 유니언신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교단적으로는 1960년 기장 서울노회에서 목사안수 받은 후 1970년부터 20년간 서울제일교회 담임으로 시무했으며, 1981년 기장 제66회 총회장을 지냈다. 이 외에도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KSCF) 총무, 기독교사상 주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초대 이사장, 남북평화재단 이사장을 지냈다.

18일 빈소인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기장총회 주관으로 임종예배를 드린 가운데, 19일 오후에는 서울제일교회 주관으로 유가족과 교인, 지인들이 참여한 가운데 입관예배들 드렸다. 장례기간에는 서울노회와 기독교빈민선교협의회, 한국기독학생총연맹,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생명선교연대가 주관하는 추모기도회가 잇따라 열렸으며, 장례예배는 기장총회 주관으로 22일 오전 9시 한국기독교회관 2층 조에홀에서 드려졌다. 장지는 경기도 파주시 기독교상조회 묘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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