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진경교유행중국비(경교비) 건립은 AD 781년 덕종 때인 건중(建中) 2년으로 전해지고 있다. AD 635년 태종 정관 9년에 알로펜 주교 일행 21명이 당나라에 입국하여 150여년 만에 한 시대를 정리했다. 그때 당나라 기독교는 “황금기”였다. 절정의 시대를 직감했을까? 만월처럼, 그래서 그때도 민간에 회자되었을 말, 달도 차면 기운다까지 그들은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당나라 기독교가 마치 스스로에게 내린 훈장처럼 ‘경교비’를 만들었다. 높이가 279cm, 폭 99cm, 두께는 30cm인 걸죽한 품새였다. 여기 32행간에 각 행마다 62자의 한자 1,984자로 적어 넣은 문장과 고대 수리아의 문장도 40여 개나 함께 쓰여 있다.

비석문에는 당시 대덕(大德)으로 호칭했던 당나라 경교의 주교가 70명, 일반 성직자인 승려들 이름도 나온다.

화려 찬란한 7, 8세기를 승세로 이끄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다음 시대를 가늠해 보았을 것이다. 로마 기독교 중심에서 밀려났으나 오히려 먼 앞날에는 세계 종교사의 중심이 될 아시아에서 예수의 복음을 꽃피우기 위하여 제자들을 에뎃사(현 터키 산우르파)에 집결하게 하여 아시아로 진군시켜 점차 유라시아의 중심에 서고자 했던 네스토리우스의 기독교 운동이 아시아의 중심부인 당나라 심장부에 터를 잡았다.

다위드 총주교는 장안을 떠났다. 그는 3년 전부터 교단의 지휘를 사실상 놓고 있었다. 수리아 출신 아시후 주교에게 행정수반의 자리를 넘겼다.

그는 북경의 부모님을 찾아가서 최종 결심을 말했다.

“그래, 그럴 거야. 내 아들 다위드는 교단 상층부에서 결재나 하면서 세월을 보내기는 너무 아깝지. 우리 사마르칸트로 함께 갔으면 하는데, 생각 좀 깊이 해봅시다.”

실비아가 요수아를 바라보면서 넌지시 말했다.

“그래, 나는 지금 떠나도 될 만큼 준비가 되었어요. 나이가 많다고 누가 걱정할지는 몰라도 나 지금도 계속해서 다섯 시간 성경강의를 할 수 있어요.”

다위드가 어머니 아버지를 번갈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장안으로 돌아가서 요한과도 상의를 하는 것이 어떨까요?”
실비아가 다위드에게 말했다.

다위드는 부모를 모시고 장안을 행해 길을 떠났다. 그는 교단이 급속하게 팽창 하면서 지도자 노릇이 싫어졌다. 급속한 팽창 기간이 10여년 내외가 되지 않을까. 당나라 주민들의 호응도 좋아졌으나 페르시아나 시리아 출신 주교들이 각 지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다위드는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공부하고 싶었다. 성경을 더 깊이 알고 제자 한 사람을 길러도 시간을 두고 가르칠 환경을 그리워했다.

다위드는 장안에 와서 아들 요한과 단 둘이 깊이 있는 대화를 했다.
“아버지, 그동안 너무 혹사 당하셨어요. 저는 아버지가 종신직이신 총 주교직에서 벗어나신 것을 환영합니다. 다만 교단의 분위기가 알로펜 시대로부터 이어오던 전통이 흔들리는 것을 우려합니다.”

“너의 눈에 그런 모습이 보이다니 내 아들이 많이 컷구나.”

“아버지, 앞으로는 저에게 아버지께서 주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진리를 다 가르쳐 주세요. 저는 요즘 진리에 대한 갈증으로 고통하고 있어요.”

“그러냐? 그런 갈증은 평생이면 더 좋다. 사실 너도 생각해 봐라. 이곳 당나라에 공자, 노자, 맹자, 장자 그리고 수많은 선생들이 있는데 그들은 선생으로부터 가르침을 받는다. 그러나 우리들 스승들인 선지자나 사도들은 가르치기보다는 자기 배움에 세월을 다 보내지….”

“그건 왜 그럴까요?”

“이 나라는 사람에게 배우고 유대 이스라엘은 하나님에게 배우니까 다르지 않겠느냐.”

“그런 유대인들의 가르침을 이어 받았으니까 우리 기독교 또한 하나님께 직접 배우는 교육법을 따라야 하겠군요.”

“그렇지, 바로 그거야, 하나님에게 직접 배운다는 자세를 가지면 그들은 다 성공할 수 있지.”

“하나님께 직접 배운다는 것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요?”

“그래 그 말도 맞다. 불가능에 가깝지. 우리들의 과거나 현재 지도자들이 불가능한 것을 너무 쉽게 아는 체하니까 실패하는 거야 생각해 보거라. 전에 예언자들이나 사도들이 하나님 말씀을 받아내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느니라. 구약 예언자들은 대부분 평생 걸렸어. 난 말이다. 이사야 선지자를 주목해서 살펴보는 데 그분이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 7:14)는 예언을 했어. 그리고 그 예언의 후속 예언, 곧 답변이라고 할까 아니면 해석이라고 하는 말씀을 이사야서(53장)에 해놓았는데 이사야서 7장과 53장의 시공간의 거리는 몇 년쯤일까? 1백 년이 넘을 거야. 나의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느냐?”

“…….”

요한은 답을 못했다.

“그래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지식 전달은 쉽지 않거늘 하나님의 가슴 속 진리를 쉽게 터득하겠느냐?”

“그렇군요. 아버지. 이제 더 정확하게 알았어요. 아버지가 70여 명의 주교단을 거느리는 최고 지도자 자리를 3년이나 계속해서 그만 두겠다고 사양하시고, 이제는 왜 초야에 묻히겠다 하시는지를 알겠습니다.”

“그렇다. 진리! 내 몸 내 뼈 속에 아로새겨지는 수준의 자세로 몸을 낮추고 배워야 만날 수 있는 진리는 하나님이시다. 아 참, 아들아 너 대속죄(代贖罪) 교리에 대한 자신이 있느냐?”

“네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것을 할머니께 다시 학습했어요.”

“그래, 그럼 어디 말해 보거라.”

“주 예수 십자가 죽으실 때 그의 피가 나의 모든 죄, 원죄까지도 깨끗케 해 주셨다는 것을 믿는 가르침입니다.”

“틀렸다. 너는 너의 신앙고백이 아니라 교리책을 낭독했어. 그건 너의 믿음이 아니라 공중에 떠다니는 임자 없는 지식일 뿐이야.”

“…….”

요한은 얼굴이 창백해졌다. 당황스러워 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내가 좀 심하게 말했느냐?”

“…….”

그래도 요한은 말이 없었다. 여전히 그의 얼굴은 창백했고, 알 수 없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다위드(총주교)가 일어섰다. 아들의 머리에 두 손을 얹고 기도했다.

“아버지여, 요한을 도와주소서. 대속죄의 은혜가 쉽게 말로 표현하기 쉽지 않사오나 이는 주께서 주신 은혜가 분명하오니 대속의 은혜가 쉽게 내 경험으로 감지되지 않았다 해서 그것이 나의 불신앙이 아님 또한 가르쳐 주소서. 그러나 주여 대속죄 은혜는 충분히 준비된 자, 이미 자기 목숨을 주 예수께 내어 맡긴 자, 속된 욕망에서 해방을 받은 자가 아니면 감당하기가 어려운 경지임을 알게 하소서. 마치 주 하나님 가슴 속으로 내가 뛰어드는 경험과 같은 것이고 그래서 자칫 내가 신이 된 것 같은 착각도 드는 순간의 경험도 할 수 있는 신비의 지경 임을 알게 하소서. 주여 요한이 온전히 담대함으로 주의 십자가를 붙들게 하소서 아멘.”

다위드는 요한을 남겨두고 부친 요수아에게로 갔다.

“부자 간에 대화를 많이 했는가?”

요수아의 말이다.

“대속죄 이야기를 했는데 요한이 상당한 충격을 받은 것 갔습니다.”

“그렇겠지. 대속죄 교리는 너무 어려워요. 그 내용이 어려운 게 아니라 상대방과 대화를 나눌 때 어느 정도의 분위기에서 꺼내느냐가 말이지 어렵더라….”

“그렇죠. 우리 기독교가 대속죄에 대한 가르침을 너무 성급하게 하다가 싸우고 등을 돌리고, 죽이고 무서운 저주를 퍼붓고 있죠. 이는 그들이 대속죄 신앙 단계에 이르지 못했음을 그들 스스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대속죄’란 사람과 하나님이 만나는 시간, 또는 하나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하면 마치 신의 경지로 올라가는 듯한 영적 상승을 하는 것이죠.”

“그렇지, 그게 적절한 표현이죠. 사실은 지금 우리 네스토리우스 교단도 내적 청결이 필요한 때야. 사람들이 너무 붕 떴어요. 마치 우리가 당나라 주인이나 된 것처럼 착각하고 있으니 걱정이예요.”

“저희가 기도해야죠. 장안에는 요한을 남기고 저는 코초에서 제자들을 기르겠으니 부모님은 사마르칸트에서 제자들을 기르시죠.”

다위드의 말이 끝나자 요한이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말했다.

“저는 코초로 가서 다위드 주교님의 제자가 되겠습니다.”

“응, 그러냐. 우리 부부도 다위드 총 주교님의 애제자가 되어 다시 공부하련다.”

요수아가 큰소리로 말하자 실비아가 들어오면서 말했다.

“저도요. 내가 다 늙었지만 다위드를 보고 있으면 사마르칸트의 아버지를 대하는 것 같다니까….”

다위드는 웃으면서 모친 실비아를 부축하며 자리에 앉게 했다.

“요한이 오늘 아버지께 복음의 진수를 배웠다며?”

요수아가 요한을 자기 가까이로 불렀다.

“네, 저는 오늘 뿐 아니라 아버지로부터 철저하게 배울 결심을 했습니다.”

“그래 주님이 도와 주실거야.”

실비아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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