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봄에 성락성결교회에서 진행한 목회자 인문학 독서모임에 대하여 그 취지와 간략한 진행 사항을 쓴다. 크게는 기독교 신앙과 오늘의 세계에 대한 생각이 연관돼 있고 구체적으로는 한국 교회에 대한 고민과 갈 길에 대한 몸부림이 담겨 있다.

# 그리스도인다움과 사람다움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사람다운 사람이 된다. 사람다움은 그리스도인다움보다 더 원천적이다. 기독교 신앙이 병들고 타락할 때 흔히들 하는 얘기가 있다. ‘신앙도 좋은데 좀 사람이 되라’고 한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맞는 말이 아니다. 신앙이 좋으면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이 된다.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면 참된 사람이 된다. 그러나 신앙이 타락하면 신앙이라고들 하지만 사실은 신앙이 아닌 것이 제멋대로 나댄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 사람부터 되라는 말이 나온다.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이 처음에 만드신 참 사람됨을 회복하는 일이다. 타락 이전에 있었던 그 사람됨 말이다. 교파에 따라서 교리에 차이가 조금 있지만 대부분의 정통 기독교 집단들은 공통적으로 사람의 타락성을 말한다. 현실적이고 자연적인 사람이 깊이 죄에 물들었다는 것이다.

이 상황을 탈출하여 바람직한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 신앙의 힘이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사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성육신은 이 일을 이루려는 것이다.

# 목회자의 인식 변화
신앙은 인생관, 세계관, 가치관을 바꾼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인식이 변화되어 속사람이 바뀌는 과정이다. 한국 교회의 인식이 바뀌려면 그 중심에 서 있는 목회자의 인식이 먼저 변해야 한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그리스도인다움이 무엇이며 그것이 참된 사람다움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깊이 성찰해야 한다. 한국 교회의 고질적인 병인 개교회주의 또는 교파주의의 벽을 넘어서서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하게 믿는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묵상하고 또 묵상하며 그렇게 사는 것을 훈련해야 한다.

이 일을 위해서 두 가지의 균형과 조화가 필요하다. 신학적으로 말하면 일반계시와 특별계시 얘기다. 위에서 말한 사람다움과 그리스도인다움과 연관된 얘기다. 일반계시 또는 자연계시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통해서 사람에게 당신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특별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당신을 사람에게 보여주시는 것인데 성경이 그 중심이다.

한국 교회는 특별계시에 강력한 에너지를 갖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 묻은 십자가, 그 원색적인 복음을 위한 헌신’에 강한 열정을 갖고 있다. 좋은 일이다. 그리스도인 됨과 특별계시 없이 기독교가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여기에 몰두한다는 것이 사람됨과 일반계시의 외연(外延)을 무시해도 좋다는 논리는 타당하지 않다. 결코 성경적이지 않다.

구약성서의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만을 위한 민족 신이 아니다. 하나님은 모든 민족의 주님이시다. 이 사실을 온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 이스라엘 민족의 사명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배타적인 선민의식으로 빠졌고 그래서 사명에 실패했다. 신약시대에 예수님이 교회를 세우신 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실패했던 그 일을 다시 맡기시려는 것이었다. 교회는 이스라엘 민족이 저지른 실수, 그 함정에 다시 빠지면 안 된다. 하나님은 교회나 그리스도인만의 하나님이 아니다. 성서에서 말씀하는 삼위일체 하나님은 온 세상 모든 민족 더 나아가서 피조물 전체의 하나님이시다.

목회자들이 이런 인식을 훈련해야 한다. 특별계시의 분명한 토대 위에 서서 일반계시의 넓은 지평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기독교 신앙의 심장을 붙잡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섬기지만 동시에 요한복음 10장 16절의 예수님 말씀처럼 앞으로 주님을 믿을 사람들을 시야에서 놓치지 말고 오늘날의 세계를 하늘 아버지의 마음으로 품어야 한다. 그래서 교육, 법조, 경제, 정치, 문화 예술 등 인간 삶의 전반적인 영역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해야 한다.

# 고전 또는 인문학 공부
고전과 인문학이란 두 단어는 상당 부분 겹친다. 인문학 공부에서 가장 중요한 교과서는 고전이다. 고전을 읽고 공부하면 인문학적인 소양이 깊어지고 넓어진다. 고전은 사람됨을 훈련하는 일에서 가장 안전한 공부다. 고전은 무엇보다 오래도록 살아남은 책이다. 적어도 몇 세대 또는 몇 백 년을 지나면서 없어지지 않고 살아남은 책이다. 사람들이 그 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사람 삶에 어느 모로든지 그 책의 내용이 유용하다고 생각했다는 말이다.

본디 사람됨을 보여주는 어떤 상황, 그게 인문이다. 고전이 다루고 있는 주제는 참 다양하다. 과학의 발전이나 정치의 변혁 또는 사랑의 서사나 인간의 악마성 등 고전은 실로 사람 사는 모습과 존재하는 피조물의 모든 것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통하여 우리가 공부하게 되는 것은 사람이 어떠한가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면서 삶을 성찰한다. 그리스도인이면 당연히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참 사람됨을 살아낼 것인가’ 하고 질문하게 된다.

지난봄에 목회자 인문학 독서모임을 가졌다. 주제는 ‘16, 17세기로 오늘을 읽다’로 잡았다. 모인 사람은 기본적으로 목회자로 한정했다. 목회자들이 소속된 교파는 다양했다. 책을 세 권 읽었다. 마르틴 루터의 <그리스도인의 자유>,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 블레어 파스칼의 <팡세>. 이 세 권은 모두 같은 시대 흐름에서 나온 책이다. 루터의 책과 토마스 모어의 책은 서로 대비된다. 루터의 책이 특별계시를 집중적으로 다룬 것이라면 토마스 모어의 책은 일반계시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다. 파스칼의 책은 기독교 신앙의 깊이에서부터 삶과 세계를 보고 있다.

가을에 목회자 인문학 독서모임을 계속할 생각이다. 목회자들이 책을 읽어내는 독서력과 목회 현장의 여러 상황을 고려한다면 책 한 권을 몇 주간에 걸쳐서 깊이 읽는 것도 좋을 수 있겠다. 한 주간에 책 한 권을 읽은 지난봄의 방법을 두고 드는 생각이다. 2017년에는 평신도들을 대상으로 인문학 독서모임을 가질 계획이다.

한국 교회가 성급하지 말고 한 걸음씩 걸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가 교회를 보는 시각보다 기독교 신앙의 내부로 들어가 복음의 말씀을 묵상하고 거기에서부터 오늘날의 사회와 세계를 보는 눈이 성숙해야 하리라. 한국 교회가 개혁돼야 한다는 데 대해서 이견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개혁의 방법은 다양하다. 작지만 구체적인 걸음걸음에서 진행되는 개혁의 하나가 인문학 독서모임일 수 있다.

*목회자 인문학 독서모임 두 번째는 9월 29일부터 10월 27일(목요일 5회)까지 성락성결교회에서 진행하며, 지형은 목사가 강사로 나선다. 목회자 및 사역자를 대상으로 하며 매 회마다 1만원의 참가비가 있다(문의 : 010-4139-8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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