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명애 화가 예예동산 섬김이

금병산 기슭의 예예동산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계절을 살며 깨달은 진리가 있다. 하나님의 창조의 오염되지 않은 이 자연 속에는 어느 것 하나도 똑같은 것이 없다는 것이다. 같은 종류의 식물들이나 비슷한 색깔과 모양의 꽃들도 자세히 보면 다 조금씩은 다르다. 볕과 그늘과 바람이 그들을 다르게 보이도록 하기도 하고, 다른 풀들과 어우러지면서 구부러지기도 하고 훌쩍 키가 커지기도 하며 어쨌든 다 다른 모양을 보이며 그의 수명을 살다가 스러져 간다.

이 다름을 깨달으며 예술의 사명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예술가는 하나님이 주신 은사인 예민한 감성으로 다양한 창조의 아름다움을 감지할 뿐 아니라 그 다양함을 조화롭게 다듬어 최선의 하모니(조화)를 찾아내고 하나님께 찬송을 올려드리며, 이웃에게 아름다움의 증언자가 되는 것이다. 소리로 이렇게 하는 이들이 음악가이고, 시각으로 하는 이들이 시각 예술가이며, 언어로 하는 이들이 문학가일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진선미를 증언하는 일-그 기쁨을 모르고 무미건조하게 살고 있는 이웃들에게 하나님의 창조 속으로 이끌고 깨닫게 하는 일이 바로 예술의 사명이다. 그러나 그 예술의 역사 속에는 인간의 목소리와 탐욕으로 인해 또 성숙되지 못한 저속한 감성으로 고집부려서 저질러 놓은 오물들이 얼마나 추잡한 흔적을 많이 남겼는지 모른다. 내 전공인 그림의 세계만 보아도 그렇다. “그림은 복잡하고 어려워”라는 것이 상식으로 되어 있다. 그 좋은 그림이 사람들을 기죽이고 소외시키는 역할을 할 때는 참 속이 상한다. 더 슬픈 것은 “그림은 비싸다”, “그림은 돈 많은 사람들이나 즐기는 사치스런 세계다”라고 인식되어지는 것은 여간 슬픈 일이 아니다.

최근에 어떤 분께 복음을 전한 일이 있었다. 그분은 “왜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모두 자기 교회만 옳다고 하는 거예요?”라고 물었다. 그리고 “성당에 가면 마리아를 숭배하는 것이라 이단이라는데, 솔직히 신부나 수녀가 교회의 목사나 장로보다 인상이 깨끗하고 착해 보이더라고요.” 그의 당돌한 이야기에 나는 더 이상 할 말을 잃었다. “다 사람 나름이지요”라는 궁색한 대답을 하며 참 속이 답답했다.

1517년, 마틴 루터가 비텐베르크 교회 정문에 당시의 타락한 교회와 교황을 향한 반박문을 게시했던 종교개혁의 시작으로부터 500년의 세월이 지났다. 그동안 로마교회와 프로테스탄트(종교개혁파) 사이에 벌였던 차마 입에 올릴 수 없는 잔혹한 대학살과 신앙의 이름 아래 벌어진 전쟁과 죽음들은 고스란히 우리의 아픔으로 남아있다. 신구교의 싸움이 아니더라도 장로교도들과 재침례파 간의 학살과 싸움들-한번에 3,000명씩 죽였던 그 피의 흔적들을 우리는 숨길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와 성직자들의 타락에서 주의 몸 된 교회와 하나님 백성의 거룩을 지켜내시기 위해 500년 전에 그 무서운 격랑을 친히 일으키셨던 것은 아닐까?

지난 9월 23, 24일 서강대학교 신학연구소에서 ‘종교개혁 500년, 그 빛과 어둠’이라는 주제의 국제 학술대회가 개최되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우리 같은 평범한 신자에게, 구교계통의 대학에서 ‘종교개혁’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이 우선 기뻤다. 그곳에서 김희중 대주교는 기조 강연에서, “우리가 참으로 그리스도의 말씀에 충실한 제자라면 터무니없는 불신의 묵은 감정과 선입견을 버리고 서로를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받아들이려는 구체적 시도가 필요하다. 이제 천주교와 개신교가 무엇이 다른가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우선 신앙의 공동유산이 무엇인지 공유하면서, 복음의 말씀을 함께 묵상하고 기도하며 실천하는 일부터 구체적으로 시작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이야기 했다고 한다.

하나님이 만드신 대 자연 속에서는 그 어느 것도 다른 것을 비판하거나 정죄하지 않는다. 다만 미물(존엄한 하나님의 자녀가 아님)이기에 살아남기 위해 약육강식의 원리가 적용될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원수까지도 내 몸처럼 사랑하며,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이 참 사랑’이라고 가르침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이 다양함 속에서, 다른 이들을 이해하고 즐거워하며 오히려 섬기고 종노릇하는 아름다운 예술적 하모니가 이루어지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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