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 기독교(景敎)_ 下 58

서로가 기다려주는 예의만 있었어도 지금 기독교의 형세는 달라졌을 것이다. 이슬람 종교 등장 이후에도 기독론 다툼은 이슬람과 기독교의 장래를 위하여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다.

“꼭 말씀이 로마 기독교를 염두에 두고 하시는 말씀처럼 들리네요.”
샤프르는 다위드가 답변을 찾는 중에 하나 더 질문에 보탠다. 다위드는 샤프르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이 방긋 웃는다.

“그래, 종교의 이름으로 저 하늘의 태양이 가는 길을 역행해서는 안 되지. 안 되는 일을 짓궂게 저지르는 것이 인간이기는 하지만 말이야. 인류가 역사의 시대로 뛰어든 이후 종교나 민족의 탐욕을 앞세우면서 살생을 끝없이 해왔지. 그것들을 숫자로 말한다면 바닷가의 모래알 만큼이 될 거야.”

“그렇습죠. 스승님, 얼마나 바보 같은 인생인가요. 그럼요, 인간들은 바보지요.”

“아니오. 사명과 같은 착하고 용기 있는 종교인이 있지 않소. 낙망할 필요 없소이다.”

사명이 샤프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다위드의 눈치를 본다.

“그렇지요. 사명 도인과 같은 여유를 지닌 사람도 많지 않아요. 당나라에서 활동하는 종교들은 얼마간 여유가 있어 보이지만 그렇지 못한 종교들을 생각하면 안타깝죠.”

사명이 로마교회를 떠올린다.

“그럼요. 로마기독교는 욕심이 많고 다혈질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지요. 부처님 제자 앞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내 얼굴에 침 뱉기가 되겠으나 하는 수 없네요.”

샤프르는 다위드 총 주교의 눈치를 보면서 불교승 사명과 기독교 내부 이야기를 꺼낸다.

“저도 조금은 알고 있어요. 샤프르 도사의 종파는 로마파에게 파문을 당해서 당나라까지 떠밀려 온 종파라고들 하더군요. 그러나 나는 생각을 달리 합니다. 로마파 기독교에게 쫓겨온 것이 아니라 하늘의 섭리라고 말입니다. 바람이 동풍이 되어 아시아 땅을 보살펴 준 것이죠. 저는 불교보다 운동력이 활발해 보이는 기독교를 좋아합니다. 벌써 서쪽 끝에서 동쪽 끝까지 왕래하는 종교가 됐잖아요. 우리 불교는 천축국에서 겨우 지금 당나라에 와 있어요.”

“허어, 사명께서는 내 앞이라 신경을 쓰시나 보네요.”

다위드가 사명의 마음을 헤아리고 있었다.

“불교의 너그러움이 하늘을 감동시킨다는 내용 하나를 저는 알고 있습니다. 천축국에 다녀온 현장 법사님이 하신 말씀이라던가? 거 있죠. 인도에 가니까 소승불교의 사찰 안에 대승종단 승려들이 함께 수행을 하고 있더라는 말씀입니다.”

“아, 그 말씀이군요. 그 말씀은 현장 법사의 전언이 아니고 동진 시대 후기에 법현 스님이 천축국에서 직접 경험한 내용이라더군요. 소승불교가 석가모니 부처를 신처럼 모시는 종단이라면 대승불교는 깨달으면 우리 모두가 부처라는 파격적인 가르침인지라 소승집과 대승집 종단이 서로 쉽게 사귀지 못하리라고 생각했으나 그들은 거뜬히 불편한 환경을 이겨내더랍니다.”

“참으로 부럽더군요. 비슷한 예가 될지 모르겠으나 기독교에는 양성론과 단성론 교리가 있지요. 양성론은 예수님이 신이면서 또 사람이신 분으로 신성과 인성을 다 함께 가지신 것이죠. 단성론은 신이라고 믿는 자와 사람일 뿐이라는 주장으로 신성이든 인성이든 오직 하나를 선택하는 이론으로 양성론과 정면 충돌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결코 용납하지 못합니다.”

“그렇군요. 거 참, 그거 어찌 보면 육지와 바다의 차이가 아닐까요. 육지도 언젠가는 바다였다 하고 또 바다 역시 밑창으로 가면 그게 육지 아닐까요. 경험의 차이일 터, 생각을 더 깊이 하면 곧바로 만날 수 있겠지요. 불교 집안 이야기도 마찬가지죠. 깨달았으면 부처라 했고 깨닫지 못하면 인간이란 한 줌의 흙이잖아요.”

“거, 사명승의 말씀이 시원하군요. 우리 이러지 말고 일단 길을 나서 볼까요.”

다위드의 말이다.

“어디로 모실까요?”

샤프르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발 가는 데로 가자꾸나. 산 자는 떠나야 하느니라. 그 정도 알고 있으면 떠날 수 있겠구나.”

샤프르가 사명과 헤어질 것을 생각했는지 잠시 말을 잇지 못한다.

“스승님, 여행길에 소승이 동행하면 어떨까요? 배움을 얻고 싶나이다.”

다위드가 바지자락을 털면서 말했다.

“가고 오는 것 또한 길이니 내가 허락하고 말 일이 아닌 듯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다위드는 천천히 걸었다. 그의 좌우를 지키면서 따르는 샤프르와 사명에 대한 기대를 해 본다. 이들이 기독교와 불교의 젊은 수행자들로 장차도 지금처럼 함께 걸을 수 있고 필요한 때는 서로를 돕고, 참의 경지를 향해 무한경쟁도 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다. 샤프르가 말한 소승과 대승 종단이 형제처럼 지내더라는 말을 그가 샤프르는 물론 서역의 제자들에게 일러준 말이다. 소승불교와 대승불교의 관계가 기독교 입장에서 더 이상 깊은 이해는 어렵지만 기독론 교리 논쟁 수준은 될 것이다. 서로가 기다려주는 예의만 있었어도 지금 기독교의 형세는 달라졌을 것이다. 알로펜 스승님 때부터 안타깝게 생각했던 아라비아 이슬람 등장과 기독론 투쟁은 상당부분 직접 관계가 있다.
이슬람 종교 등장 이후에도 기독론 다툼은 이슬람과 기독교의 장래를 위하여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다.

깨달음의 단계임을 왜 모를까.

그들은 점심시간도 거르고 걷고 또 걸었다. 하늘에 별들이 총총, 달 모양도 반달형으로 중천에 떠 있었다.

“스승님, 저희는 종일 달리기를 한 셈이었나이다. 어찌 그리 걸음이 빠르시나요?”

사명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쉬어 갑시다.”

다위드는 샤르프가 보이지 않아서 궁리했으나 묻지 않았다. 그들이 발을 멈추는 사이 샤프르가 달려왔다.

“스승님은 저를 버리실 작정이셨나봐요?”

“사람 참, 누가 누구를 버려, 자네야 말로 이 늙은이를 버릴 날이 곧 오겠지….”

“아이고, 천벌 받습니다. 제가 감히 스승님을 버리다니요.”

“그런가? 그럼 다행이고….”

한적한 주막거리가 나타났다. 우마차도 지나간다.

“저기서 하룻밤 쉬어갈 수 있을까 알아보겠습니다.”

샤프르가 달려갔다. 샤프르는 잠시 후에 달려왔다.

“잠자리는 없더군요. 요기는 할 수 있답니다.”

다위드가 손짓으로 주막거리로 함께 가자고 했다. 그들이 그곳으로 가자,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스님들이 이 저녁 늦게 어딜 다녀오시나요?”

주막거리 사람들이 나이 많은 다위드가 일행 중에 있는 것을 보자 말씨가 공손해졌다.

“송구합니다. 그냥 지나가야 하는데 불편을 드렸군요.”

다위드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서서 정중히 인사를 했다.

“밤새 걸어야 하는데요….”

“네, 압니다. 저희는 가다가 피곤하거나 졸리면 아무 곳에서나 쉴 수 있습니다. 천한 객승들은 꼭 찬이슬 피하려 고집하지 않습니다.”

“저런, 노승이시구먼. 잠시 여기 앉아 쉬세요. 저희가 한 번 알아보리다. 하룻밤 쉬어갈 처소가 있을지 모르니까요.”

“….”

다위드가 객주 사람들이 비켜준 한쪽 자리에 먼저 앉는다. 샤프르와 사명이 다위드 곁에 가까이 다가섰다.

“잠자리가 정말 없군요.”

잠시 후 사내가 다가와서 말했다. 그는 미안해했다. 그의 마음을 가볍게 해주려는 듯이 사명이 한마디 했다.

“이렇게 관심을 가져 주시니 제가 한 말씀 드릴까요?”

“무슨…?”

“혹시 헛간이나 마구간 빈 곳이라도 있으면 저희가 잠시 찬이슬을 피했다가 새벽에 떠날 수 있습니다만….”

“아이고, 벼락 맞을까 두렵소이다. 어떻게 스님들께 헛간을 드린단 말인가요.”

“아닙니다. 가능하시다면 저희는 기쁘게 쉬어갈 수 있습니다.”

사내는 나이가 좀 더 든 사람과 귓속말을 하더니,

“그럼 알겠습니다. 우선 따스한 국물로 몸을 좀 녹이세요.”

사내들 몇이서 다위드 앞으로 모여들었다.

“귀하신 어른 같으시오만 어찌 늦은 시간 길을 나서셨나요?”

다위드는 싫지 않은 기분으로 껄껄 웃는다. 그리고 말했다.

“저 같은 늙은이가 귀한 게 아니라 여기 두 사람 수행도인들이 귀하죠. 허허허….”

“아닙니다. 저희 다위드 총…”

“이 사람이….”

샤프르가 경솔하게 총 주교 운운하려는 순간 다위드가 그의 말을 잘랐다

다음날 새벽, 길을 떠나려 했으나 사명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샤프르가 그를 흔들어 깨우자 뒤늦게 일어났다.

“어디 불편하시오. 사명!”

사명이 자리를 털고 몸을 일으켰다.

그는 거의 누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는 듯이 서둘렀다.

“아니, 내가 스승님 앞에 실수했네. 이거….”

허둥대는 사명의 등을 토닥여주는 다위드였다.

“이보시오. 걱정 마시오. 나 도망가지 않았어요. 나 여기 있어요.”

다위드는 사명이 무척 사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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