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500주년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3인 사역자의 탄식

   
▲ 초대교회 성도들이 박해를 피해 숨었던 터키의 동굴. 그들의 순결성이 지금 우리에게 얼마나 남아있을까.

오늘의 한국교회의 뿌리는 16세기 종교개혁자 마틴루터에게서 찾을 수 있다. 그것보다 더 깊게 들여다보면 초대교회, 더 깊게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찾게 된다. 근원적으로는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신 그곳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런데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신 사람의 모습이 오늘날 왜 하나님의 형상이 아닌 ‘하나님 없는 사람’의 모습이 많은 것일까.

최근에 만난 50대 목회자로부터 ‘교회에 복음이 없는 그것이 암울한 우리네 현실이지 않을까’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정말 그럴까? 30대, 40대, 70대의 사역자들이 이런 이야기를 터놓고 자유롭게 대화하고 있었다. 이들은 한국교회, 아니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하며 오늘 현재 시점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었다.

◐ 내 안(교회)에 하나님이 없다?
이들의 공통된 고민은 누구의 책 제목처럼 ‘아, 내 안에 하나님이 없다’는 것이었다. ‘우리 교회에 하나님이 안 계신 것 같다’는 것이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까.

예수를 믿기는 하지만 예수 믿는 자로서의 삶을 살지 않는 사람이 교회를 너나 할 것 없이 찾을 수 있지 않느냐는 30대의 지적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예배, 봉사, 교육 등 무언가 교회에서 하는 일은 많은데, 그 내면에 이 모든 일을 가능하게 하신 그분을 신뢰하지 못하는 모습을 많이 본다는 것이다. 타인을 보더라도, 자기 자신을 보더라도 ‘믿음’으로 시작했다가 ‘내 힘’으로 끝나기 일쑤라는 지적이다.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는 신자들이라면 교회에서의 문제들이 그렇게 자신의 이익을 좇아 행해지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40대 사역자가 말한다. “예수를 믿기는 하지만, 예수로 살지 못하는 것은 예수 살기를 거부하기 때문이 아닐까.”

이 무슨 말인가.

혹 기독교인들은 근본적으로 예수처럼 살 수 없다고 믿는 것은 아닐까. 예수는 우리 사람과는 달리 하나님과 동일한 분이시고, 사람은 타락한 죄인이기 때문에 비슷하게 살 수는 있어도 예수와 같은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이 밑바탕에 깔려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예수의 삶을 우리 시대에 재현하려는 노력을 처음부터 단념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 외에 예수께서 인간의 모든 죄를 위해 대신 십자가를 지심으로 이미 모든 것이 용서됐는데 왜 굳이 인간이 예수처럼 살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냐는 것이다.

이렇게 기독교인들의 밑바탕에 깔린 이런 미신적인 생각 때문에 예수살기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한국교회의 교단이나 연합단체의 조직적인 힘으로는 하나님의 선한 것을 이뤄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입장에 이들은 하나같이 공감했다. 자신의 이익과 명예를 탐하는 이들이 바로 교단과 연합단체의 대표들이 아니냐는 적나라한 지적도 있었다.

‘그곳에서 희망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데 이들은 한목소리였다.

◐ 믿음의 시인은 신앙의 첫 걸음
예수를 믿어 구원받고, 천당 가는 것은 환영이지만 예수처럼 사는 데는 뒷걸음치는 것은 아닐까. 왜냐하면 예수처럼 살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방식들을 모두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70대 사역자는 이 모든 부분에 동의를 표했다. 그러면서 루터가 말한 ‘오직 믿음’이 왜곡되어 ‘실천, 행위, 삶’이 없어도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 것처럼 인식되어온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믿음’이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온 몸을 던져서 예수 십자가와 나의 생명이 하나 되는 은혜를 통해 이뤄진다는 것을 체험하지 못하는 무지에서 온 부분도 많다고 말했다.

믿음이라고 말할 때 거기에는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을 얻는다’는 것과 함께 ‘막힌 담을 헐고 둘이 하나되는’ 지경까지를 말한다.

그 지경이란 예수님의 호흡(생명)과 크리스천 개개인이 하나임을 깨닫는 구원의 출발신앙에서 천국의 완성신앙을 향해 그 하나 된 호흡으로 주님의 나라와 의를 향해 날마다 함께 사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는 말은 하나님을 상대화하여 저 멀리 두는 존재로 믿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사는’ 데서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다른 어떤 종교와 차별성을 가진다.

내가 필요로 하는 것 때문에 하나님의 존재, 하나님의 힘을 빌려 채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발걸음에 크리스천이 발을 맞추어 가야 한다는 것이다.

종교개혁 499주년, 루터는 그 당시 가톨릭의 비신앙적인 것을 타파하기 위해 사투를 벌였다. 그렇다면 오늘의 크리스천은 기독교 내에 뿌리내리고 있는 비기독교적인 모습-빈껍데기 신앙, 우상-을 도려내야 하는 시점에 있는 것 같다고 이들 3명의 사역자는 이구동성으로 자조 섞인 이야기를 했다.

이들은 ‘오늘, 나부터 예수님과 함께 살기’에 혼신을 다해야 한다는 다짐, 그리고 자신의 사역 처소에서 현실의 필요성을 신께 구하는 자세에서 하나님의 세계 속에서 자신이 살 수 있기를 기도하고, 그 기도 가운데 모든 것들이 이뤄지기를 소망하며 나가야 한다는 다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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