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499주년에 만난 사람 / 슈퍼마켓 주인에서 도토리교회 담임으로… 김수열 목사에게 일어난 변화

▲ 김수열 목사(도토리교회)

‘만인제사장’과는 거리가 먼 한국교회 현실, “목사 성도 분리되어 교회 안에만 머물기 때문”

누구든지 들어올 수 있고, 예수 믿으라는 말보다는 예수의 가치로 사람답게 사는 일상의 삶을 함께 걷는, 슈퍼 같은 교회이길

“새우깡 한 봉지 팔면 얼마 남는 줄 아세요? 120원. 슈퍼마켓에서 효자상품은 정가의 50%가 남는 아이스크림이에요….”

식료품이나 일용잡화 등의 이익금을 줄줄 꿰는 이 사람, 정체가 뭘까? 전직 슈퍼마켓 주인, 현직 서울 양천구 목동의 도토리교회 담임 김수열 목사(35)이다. 사실 그의 본래 신분이 목사이고 슈퍼마켓 주인은 2년간의 일탈이었다. 하지만 그는 일탈을 통해 목사 본연의 모습에 더 가까워졌단다. 아니, 슈퍼마켓 주인일 때가 더 신명나는 목회 현장이요 더 목사다운 모습이었다고.

종교개혁 500주년을 한 해 앞둔 시점에서 종교개혁의 핵심이었던 ‘만인제사장’과는 거리가 먼 한국교회 현실에 그는 “목사와 성도로 분리되어 교회 안에만 머물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이것은 교회 교역자 시절에는 전혀 보지 못했던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인생군상에 섞여, 100원 매상에 마음 졸이며 슈퍼마켓 주인으로 살아낸 경험을 통해 얻은 깨달음이다.

# 목사, 슈퍼마켓 주인 되다

목사가 왜 슈퍼마켓 주인이 됐을까?

“교회 부교역자로 있다가 몸에 병을 얻었어요. 대상포진과 피부병이 심해 진물로 양말이 다 젖을 정도였어요.”

과로로 면역체계가 무너지면서 피부에서부터 문제가 생겼다. 밤이면 날카로운 칼로 살이 베이는 듯한 통증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1년 정도 쉼이 필요하다는 병원의 진단에 따라 교회에서는 주중에 쉬고 주말에만 사역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지만 한 달이 지나니 그만두었으면 하는 눈치, 교회 사역을 그만두자 당장 생계가 막막했다.

결정이 필요한 순간에 오래된 아파트단지의 허름한 슈퍼마켓을 인수하라는 제안이 들어왔다. 그렇게 그는 2013년 10월부터 주중엔 슈퍼마켓 주인으로, 주일에는 슈퍼마켓 인수와 동시에 개척한 ‘이웃교회’ 목사로 살아가는 이중생활을 시작했다. 소위 이중직 논란이 한창이던 때였다.

“새벽 6시 30분이면 셔터를 열고 밤 12시까지 17시간을 일했어요. 빚으로 시작한 슈퍼마켓 운영은 하루하루가 피가 마르는 고민의 연속이었어요. 그때서야 알았죠. 목사로 살면서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 행복하다고 여겼던 내 모습이 일터에서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성도들의 삶과 동떨어진 것이었다는 걸요.”

아직 어두운 시간, 자는 아이의 이마에 입 맞추고 집을 나섰다가 다시 귀가하면 또 아이의 자는 모습을 봐야 했다. 주일이면 잠깐 사람을 써서 가게를 맡기고 예배 후 다시 가게를 지켰다. 어쩌다 주일 아르바이트가 펑크나면 김 목사는 일주일 내내 준비한 설교원고를 부둥켜안고 가게에서 눈물을 쏟았다.

그런 때면 오랜만에 교회 출석한 성도에게 “주일성수 제대로 하세요”라며 권면했던 자신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무심코 한 말이 성도들에게 상처였을 수 있겠다는 것도 슈퍼마켓 주인으로 살면서 알게 됐다. 교회 출석만이 아니라 나의 도움이 필요한 곳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성도의 삶이라는 것을 몸으로 깨달은 순간이었다.

# 교회 밖, 사람살이를 배우다

교회 밖 사람들과의 만남, “아무리 뛰어도 빚만 늘어난다”는 구조적인 모순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교회는 그리고 목사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에 대해 고민하며 젊은 목사의 목회 반경은 더욱 넓고 깊게 다져져갔다.

특히 밤이면 사연 많은 이들이 가게를 찾았다.

거의 매일 술에 취해 들어와서 동전들을 꺼내놓으며 또 술을 사가는 50대쯤의 남자, 그는 버스 정류장에서 구걸해 동전을 모은다고 했다. “그렇게 모으셔서 술 사 드시는 거예요?” 책망하듯 던진 말에 남자는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 아내가 전 재산을 도박으로 날렸고, 남자가 버는 돈은 대부분 빚 갚는 데 나간다고 했다. 자신은 벌거벗은 삶이기에 더 이상 부끄러운 게 없어 구걸하고, 현실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신다고 했다. 그 후로 한동안 “그 누구의 행위나 삶을 쉽게 재단하는 것은 큰 잘못”이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또 교회의 생색내기 식 ‘이웃 사랑’과 내 교회 채우기 위한 ‘예수 믿으세요’ 하는 전도문구는 이렇게 바닥 치는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얼마나 공허한 메아리가 될지도 아프게 돌아보게 됐다.

난감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한 아버지가 급하게 가게에 들어와 두리번두리번, 딱 봐도 뭔가 큰일이 터진 듯 보였다. “뭘 도와드릴까요?” 아버지가 쭈뼛거리더니 조심스럽게 꺼내놓는 말. 아내가 일찍 죽고 딸아이와 사는데 아이가 초경이 시작돼 아빠도 아이도 당황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거다. 김 목사가 아내에게 전화해 물어물어 아버지에게 필요한 물품들을 건넸다. 여성용품이 그렇게 다양하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이야기를 이어가던 김 목사가 얼굴이 굳어지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한 여자아이가 떠오른 것이다. 초등생쯤의 아이는 가게 근처를 지나는 어른들에게 동전을 구걸해 아이스크림을 사먹었다. 할아버지와 사는 것 외에는 그 아이의 사정을 알지 못했다. 할아버지에게 이야기하면 야단맞을 게 뻔하고, 아이스크림을 그냥 주자니 교육상 좋지 않겠다 싶어 김 목사는 고민 끝에 아이디어를 냈다. “나 좀 도와줄래?” 김 목사가 잠깐씩 자리를 비우는 사이 아이에게 가게를 봐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돌아와서는 아이스크림을 선물했다. 아이에게 정당한 대가로 얻는 기쁨을 선사한 것은 물론이고 그 후로 아이는 더 이상 구걸하지 않았다.

주일 저녁이면 서로 신분이 노출된 이들끼리의 밀담이 오가기도 했다. 집사, 장로 직분인 이들이 김 목사에게 교회에서 느끼는 이런저런 궁금증을 꺼내놓는 것. 맥주 한 캔과 주전부리를 놓고 시작된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처음에는 “교회 목사님께 물어보세요” 했는데 교회의 문제를 차마 담임목회자에게 물을 수가 없다는 대답, 교회 안에 목사와 성도 간의 보이지 않는 담이 두텁다는 걸 보게 됐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아이들에게 “뭐 먹고 싶냐?”며 통화하는 아버지의 모습에서는 삶의 무게를 견디게 하는 가족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늦은 밤 공장에서 퇴근하며 슈퍼에 들른 외국인 노동자의 기름 때 묻은 손을 보며 그에게 잠깐의 휴식이 되어 줄 수 있음에 가슴 뿌듯했다.

그렇게 슈퍼는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고 하루를 힘겹게 보낸 이들에게는 쉼터가 되어주기도 했다.

“교회가 슈퍼 같은 곳이 되면 좋겠어요. 누구든지 들어올 수 있고, 예수 믿으라는 말보다는 예수의 가치로 사람답게 사는 삶을 더불어 살아가도록 함께 걷는 곳이요.”

슈퍼마켓은 임대차계약이 만료된 2년 만에 폐업했다. 건강이 악화돼 더 이상 이어가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폐업 때 물건을 대폭 할인하며 그동안 함께했던 이들과 작별인사를 나누는데 아쉬워하며 눈물을 훔치는 분들도 적지 않았다.

# 다시 교회로, 만인제사장의 삶으로

지금 담임을 맡고 있는 도토리교회는 슈퍼마켓을 계기로 만나게 됐다. 가게를 운영하며 새롭게 깨달은 이야기들을 페이스북에서 나눴는데 그것을 지켜봐 온 도토리교회에서 가게 폐업 소식에 당시 담임이 공석인 상황에서 설교를 부탁했고 이후 청빙까지 이뤄졌다. 개척해 가족 같이 삶을 나누며 이어왔던 ‘이웃교회’와 도토리교회가 합병해 하나의 교회가 되었다.

“종교개혁의 핵심인 만인제사장이 구현되지 않는 것은 목사가 목사로, 성도가 성도로만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목사든 성도든 그리스도인으로서 복음을 삶으로 살아내야 하고 복음의 소식은 그리스도인들이 일상에서 힘껏 살아내는 삶의 모습을 통해 자연스럽게 전해질 것입니다.”

김 목사는 “슈퍼 목사 때나 지금이나 교회 안에서 목사의 직분으로, 세상에서는 하나님 앞에 선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며 달라진 건 없다고 했다. 예수가 이 땅에 왕의 모습이 아니라 원수들 가운데 버려진 모습으로 오셔서 그 속에서 살아내신 것처럼 그리스도인 역시 세상의 거친 풍파 속에서 살아내야 한다는 것. 목사이기 이전에 세상 속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 걷는 그 길을 도토리교회 성도들과 함께 걸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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