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락시장에서 농수산물 나눔 펼쳐온 은혜나눔선교회 회장 박순희 목사

▲ 박순희 목사

10만평 가락시장 누비며 남은 야채, 과일, 생선 거둬 장애인, 노숙인, 탈북자 등 어려운 이웃에 전달
“목사가 할 일 없이 쓰레기 주우러 다닌다”며 욕하던 사람들, 이제는 남는 물건 선뜻 내어주며 서로 고마워할 정도

“비켜요~ 짐이요, 짐짐짐!”

하마터면 야채가 잔뜩 쌓인 지게차와 부딪칠 뻔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비슷비슷한 상가들의 나열에 눈이 휘둥그레, 한눈팔다 길 잃겠다 싶은 순간 구원투수가 나타났다. 25년째 서울 송파구 가락동의 가락시장을 사역 터전으로 삼아온 은혜나눔선교회 회장 박순희 목사(70). 앞서서 휘적휘적 걸으며 “여기는 호박, 이쪽은 고구마랑 감자, 저 끝은 쪽파, 생선은 저기, 과일은….”

10만평 가락시장 구석구석 모르는 곳이 없다. 여기서만 리어카 운전 25년이니 가락시장바닥이 내 손바닥처럼 훤히 보이는 건 당연지사다.

매일 이곳에서 리어카를 끌며 박순희 목사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확인한다”고 했다. 그럼, 가락시장의 하나님을 만나러 가볼까.

# 가락시장은 내 사역 터전

“야채 없으면 과일, 아니면 생선 등 하루라도 물건 안 나오는 날이 없어. 그건 하나님이 아니면 누가 하는 거야?”

새벽 경매시장부터 오후 소매시장, 다시 저녁에 열리는 경매, 전국의 농수산물이 거래되는 가락시장의 365일은 늘 활기가 넘친다. 그 중에 불낙된 것들이나 소매상들이 팔다 남은 것들이 박 목사 차지가 된다. 그날그날 모아진 물건을 장애인 시설이나 노숙자·탈북자 섬김 시설, 형편이 어려운 교회 등에 연락해 가져가도록 한다.

처음에는 매일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물건을 부탁했는데 이제는 신뢰가 쌓여 전화 통화로 물건이 오가는 중개만 해도 될 정도이다. 그날 남는 물건을 가져가라는 연락이 오면 박 목사가 도움이 필요한 곳들을 수소문해 직접 가져가도록 안내한다. 그래도 혹시 놓치는 물건이 있을까 싶어 리어카 순례는 멈출 수 없다. 물건을 거둬들인 만큼 더 도울 수 있으니까. 사정 급한 곳이 있으면 멀쩡한 물건도 뺏어올 정도로 배짱 두둑해졌다.

“리어카 끌고 다니니까 기독교인들까지도 욕하더라고. 목사가 할 일 없이 쓰레기 주우러 다닌다고. 지금은 다들 믿고 물건을 내주니 너무 고맙지. 100원 200원에도 언성 높아지는 곳인데 물건 내주는 게 어디 쉬워? 하나님이 하시는 거지. 나이 70에도 할 일이 있으니 좋고, 귀한 물건들 쓰레기 되는 것 줄여주니 좋고, 어려운 사람들 도와주니 좋고.”

25년 전 서울 동작구 흑석동에 교회를 개척하면서부터 독거노인이나 장애인, 이주노동자 등 어려운 이웃에게 반찬 나누는 봉사를 했다. 가락시장에 가면 물건 남는 것들을 얻을 수 있다는 말에 귀가 번쩍, 그때부터 시작한 리어카 순례로 2009년부터는 아예 가락시장 안에 사무실을 얻어 ‘은혜나눔선교회’ 간판 걸고 본격적으로 농수산물 중개(?)에 나섰다. 이곳에서 주일 오후 2시에는 연로하신 분들 20여 명과 예배를 드린다.

맑은 날이나 궂은 날이나 추위에도 아랑곳 않고 나서는 리어카 순례, 상인들 사이에서 ‘저 일은 부처님도 예수님도 못하고 박순희 목사만 할 수 있다’는 소리를 할 정도이니 그간의 고생은 말로 다할 수 없을 터, 박 목사는 왜 사서 고생일까?

“목사안수 받기 전 삼각산에 기도하러 다니면서 헐벗고 굶주리는 사람, 이북의 동포들까지 먹이게 해 달라고 기도했어. 나도 제대로 못 먹고 못 입으면서 왜 그렇게 기도했나 몰라. 이것도 하나님이 시키니까 하지 내 힘으로 어떻게 하겠어.”

기도 응답인지 지금껏 ‘남 좋은 일’을 신나게 하고 있다며 환하게 웃는다.

# 나눔은 ‘무조건’

이곳에서 박 목사는 한때 ‘거지들의 엄마’로 통했다.

흑석동 교회에서 노숙인들의 쉼터를 마련하려다가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되고 교회가 있던 건물이 경매에 넘어가면서 오갈 데 없는 처지가 됐다. 그래도 가락시장을 떠나지 못하고 천주교에서 하는 노숙인 무료 급식 봉사에 나섰다. 한 번에 450그릇씩 밥을 푸면서도 힘든 줄 몰랐다.

자식처럼 따르던 노숙인들 이야기에 박 목사 눈가에 물기가 어린다. ‘기우’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기우’는 어린아이처럼 박 목사에게 생필품을 사달라며 조르곤 했다. 그는 시골에서 농사짓는 아버지가 소 판 돈을 훔쳐 달아난 후 영영 돌아갈 수 없게 됐다. 그에게 박 목사는 “네가 열심히 일 해서 송아지 한 마리 사고, 내가 또 크고 튼튼한 소 한 마리 사 줄 테니 같이 고향으로 돌아가자”고 약속했었다. 그 후 벽돌공장에서 일하며 달라진 모습을 보이던 ‘기우’가 교통사고로 급사한 것이다. 새 삶을 꿈꾸던 한 청년, 그리고 아들이 돌아오길 하염없이 기다리는 그의 부모를 생각하니 또 눈물이다.

“노숙자? 하나님 자식이면 다 내 자식이지. 제대로 살아보겠다는데 힘껏 도와야지.”

노숙인들 중에는 신학교를 졸업해 사역의 길을 걷고 있는 이, 사회복지 자격증을 취득해 새로운 길을 준비하는 이, 직장을 찾은 이 등 박 목사를 통해 새 삶을 찾은 이들이 적지 않다. 그들이 변화되는 건 “주고 끝나는 구제로는 안 되고 1:1로 사랑을 줘야 한다”는 게 박 목사의 나눔 지론, ‘한 영혼’을 위한 진심어린 헌신이 그들에게 용기와 버팀목이 되고, 그들의 달라진 모습은 박 목사가 사역을 이어갈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 그런 모습은 가락시장 상인들에게 신뢰로 다가서게 된 요인이기도 했다.

박 목사의 전화 한 통에 물건이 한 트럭씩 왔다갔다 하는데, “공짜 물건 갖다 팔면 대박 나겠다”는 말에 박 목사는 “그게 내 거야, 네 거야? 하나님 거야!”하면서 호통이다.

집사 시절 기도만 하면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는 음성이 들렸다. 무슨 뜻인 줄 알면서도 당시 공무원이던 남편이 직장을 잃어 어린 자녀 둘을 길러야 하는 상황, “나더러 뭘 어쩌라는 거냐”며 버텼다. 400만원짜리 전셋집에서 4번 옮겨 지하의 보증금 150만원에 월 5만원 사글세로 전락해서야 두 손 들고 신학교에 들어갔다. 극구 반대하던 남편이 술담배 끊고 세례받은 것은 그야말로 기적이라고.
17년 전 남편과 사별하고 박 목사는 지금도 영세민 아파트에서 사는 팍팍한 살림이다. 하나님 일 한다는데 왜 이리 고생길일까.

“예수님이 언제 팍팍 먹은 일 있어? 사도 바울은? 수없이 매 맞고 감옥 가고, 그게 하나님 일이야. 성경에 그렇게 나와 있는데? 배부르고 등 따스운 사람 누가 있어?”

박 목사는 ‘나’를 자랑하고 드러내는 것은 내 일이지 하나님 일 아니라며 자신은 중간 역할만 할 뿐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을 통로 삼아 되어지는 일들을 보면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목도한다”고 했다.

“물건을 받을 때든 줄 때든 하나님 앞에서 일한다고 생각해야지. 무 하나 배추 하나도 하나님이 씨 뿌려서 자라게 하신 거니 소중히 여기고, 그것을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모두 소중하지.”

박 목사는 요즘 일을 많이 줄였다. “나눔은 따지거나 재지 않고 무조건”이라는 마음으로 억척스럽게 섬김과 나눔의 삶을 살아왔는데 몸이 예전 같지 않은 것을 더욱 느끼기 때문이다. 15년 전쯤 머리에 생긴 석회석으로 인해 뇌출혈로 쓰러져 회복하는 데 1년 반이 걸렸다. 지금도 가끔씩 두통에 시달린다. 심장이 약해져 계단 오르는데도 숨이 찬다. 그래도 그만둘 수 없는 이유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기 때문”이란다.

“띠리리~. 콩나물 백 관? 알았어.”

인터뷰 중에 박 목사의 휴대폰이 울린다. 콩나물 백 관이 남았다고 가져가란다. 상당한 물량인데, 박 목사가 한 곳에 전화하니 금방 달려온다며 반긴다.

“예수님이 물과 피 한 방울 안 남기고 우리에게 주셨듯이 내가 없어져야지 내 것 찾으면 이 일 못해. 내가 다니는 발자국이 예수님 발자국을 닮아가길 바란다”고 말하는 박순희 목사, 그는 오늘도 리어카 순례를 떠난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현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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