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 당나라 기독교(景敎)_ 下 61

청천벽력이다. 그러나 예고된 저주이기도 했다. 당나라는 안녹산의 반란 이후 100여년 가까운 세월 동안 내리막길을 걷고 있으니, 이런 때는 나라를 좀먹는 기생 세력들이 일어나는 법이다. 기생하며 부화뇌동하고 냉혹한 현실의 정토화가 아니라 극락왕생만을 장려하는 미혹의 종교들이 판을 치게 된다.

탁월한 군주로 분류되지는 않았던 당나라 무종(武宗)이 회창(會昌) 5년 되던 해(AD 845년)에 불교를 비롯한 당시 당나라에서 활동하던 조로아스터교, 마니교, 기독교(경교)까지 모든 외래 종교들을 향한 대박해의 칼을 뽑았다.
그러나 무종의 종교박해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제국 통치자로서 최소한의 조치였다는 주장을 가능케 한 내용이 있다. 아래 내용은 무종 황제가 직접 썼다는 “전국의 불교 사찰 제도를 철폐하라”는 칙령의 일부이다.

「수도 장안과 낙양의 궁궐은 물론이고 전국 방방곡곡에 나날이 승려와 불자들로 넘쳐나고 불교사찰의 위세도 날로 높아지는구나. 인력을 동원하여 토목공사를 일으키고 사람들의 재물을 빼앗아 금은보화 장식에 여념이 없구나… (중략) … 사내들은 농사지을 전답이 없으니 굶주리고 아낙네들도 누에치기를 못하여 추위에 떨고 있다. 그럼에도 오늘날 보통의 승려들조차 하나같이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도 의식 걱정 없다. 승려들이 외모를 치장하는 데나 신경을 쓰고 본분을 벗어나 궁궐같은 곳에서 살고 있으니 이를 어찌할꼬. 기강이 극에 달했구나(후략)」

황제가 절간의 승려들의 호화생활을 부러워해야 하고, 승려들이 논밭을 가져가버려서 농민들은 농사지을 땅이 없고, 황제가 국방을 위해 군사를 뽑으려 해도 병역의무를 피해 승려의 길을 가버린 자들 때문에 제국을 지켜낼 수 없다는 탄식도 포함되어 있다.
회창의 법난으로 불교 탄압을 일으킬 때의 당나라 전국 사찰 수는 4천 6백여 개 처, 사원 4만여 개, 승려 수 26만 5백여 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각 주요 도시에 사찰 1개, 또는 2개 처만 남겨두었고 20만여 명의 승려들 중 저항이 심한 경우는 살해당했고 대다수는 평민으로 돌아가야 했었다. 불교가 중국에 들어온 이후 최대의 위기요 수난이었다.

이토록 불교탄압에 집중하면서도 외래 종교 모두에게 불교와 비슷한 탄압을 가했다. 외래 종교 모두가 대상이었으니 기독교(경교) 또한 이 수난을 피해갈 수 없었다.
한마디로 몰락이었다. 오랑캐 종교로 분류된 경교는 대다수 추방이었다. 불교의 경우는 환속과 귀향으로 마무리 되었으나 경교는 국내 세력이 빈약했으니 사원의 파괴와 승려(성직자) 추방이 중심이었다.
회창의 법난이 일어난 때로부터 정확하게 당나라 선교를 시작한 지 210년 차에 경교는 최대의 위기를 맞이했다.
대진사 교회본부에서는 즉각 경교비를 땅속 깊이 묻었다. 낮밤을 가리지 않고 인력을 최대한 동원하여 더 깊이 묻었다. 자유로운 세상이 올 때까지 지하 깊은 곳에 2백여 년 지속해 온 당나라 선교역사를 묻어둔 것이다.

경교는 황제의 추방령을 신호로 도심을 떠났다. 그러나 순순히 떠나기를 거부하는 지도자들도 있었다. 다위드 총 주교의 아들 요한은 하룻밤 된서리에 살아갈 기운을 잃어버린 풀잎들 꼴이 되어버린 교구 지도자와 신도들을 살펴보면서 큰 부끄러움을 느꼈다.
우리 네스토리안 신앙도 겨우 이 정도의 수준이구나. 사실 불교도에게 가해진 핍박에 비하면 온건했다고 느꼈는데 신자들의 반응이 의외로 비굴했다. 요한은 장안성 방위 사령부로 갔다. 위병덕 사령관실로 가서 사령관과 마주 앉았다.

“사령관님! 불교가 우리 교회까지 망쳤습니다. 너무 억울합니다.”
“그러게요.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 어디 계시는지를 모르지요.”
“그래요 그건 위 사령관의 판단이 옳아요. 이럴 때는 사제인 저보다 사령관님 판단이 월등해요.”
“아니오. 저는 요한 사제의 제자입니다. 그런 말씀 하시면 제가 어떻게 처신을 합니까.”
“그런가요. 사실은 우리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경고일 수 있어요. 심판도 되고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황제의 칙령에 보면 종교들의 탐욕을 문제 삼았습니다. 백성들 위에 군림하는 종교들, 황제 자신보다 더 호화로운 생활을 하는 종교를 비판했잖아요.”
“그거야 불교를 두고 하신 말씀이시죠.”
“아닙니다. 그렇게 해석하면 안됩니다. 냉정하게 살피면 우리들 경교로서도 권력이나 상층부 주민들 주변에서 은근히 재미를 보지 않았을까요?”
“…….”

위병덕 사령관은 마니교로 분류되지만 기독교 신자이기도 하다. 그는 요한 사제의 자책하는 말에 화답을 못했다.
“보세요. 이슬람 종교는 아무런 요동이 없습니다. 저들은 장안에 들어와서 사원(모스크)을 두고 포교를 하지만 당나라 사람들에게 서로 거래하는 상인계층으로 취급되기 때문에 종교 탄압의 대상에서 제외된 사실을 유심히 살펴야 합니다.”
“그렇군요. 이슬람은 중국인들의 필요 상품을 거래하는 상인계급으로 사업을 하는 동안 중국에 체류하고 체류기간동안 자기들이 마련한 사원에서 예배하기에 종교탄압 대상에서 제외되었다면 생각해 볼 바가 있겠군요.”
“글쎄요.”
그때, 장안에서 전갈이 왔다.
낙양 수리아 교구 사제들이 금군감옥에 투옥되었다는 것이다. 금군이면 황제궁을 담당하는 부서인데 이상한 일로 느껴졌다.
“왜 금군이 간여했다고 하던가?”
“네, 시리아 교구 주교단에서 황제 면담을 무리하게 요구했다가 모두 체포되었답니다.”
사령부 연락장교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허어, 너무 가볍게 행동했구먼. 우리 기독교 사람들은 자칫 무리수를 두는 실수를 한단 말이야. 하나님은 기독교를 특별히 사랑하지 않음을 먼저 깨달아야 하는데….”

요한의 이 말에 사령관이 의문을 제기했다.
“사제님. 거 무슨 말씀이세요. 그럼 하나님께서 선택받은 우리 기독교를 별도로 보호하지 않으신단 말입니까?”
“그래요. 하나님이시기에 다른 모든 종교나 그 밖에 인류 모두를 똑같이 사랑하십니다. 사령관님 같은 생각에 빠진 신자들 때문에 더 이상 성장을 못하는 겁니다.”
“…….”
사령관은 답을 못했다. 그러나 그의 마음에는 궁금증이 남아 있었다.
“목숨이 위태롭겠는데요.”
요한은 금군청에 잡혀간 수리아 교구 주교나 사제들을 걱정했다.
“황제가 작심하고 칼을 뽑았습니다. 희생자가 생각밖에 많을 수 있습니다. 불교도들도 당하고만 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일이 더는 번지지 않아야 하는데…. 사령관님 나는 내일 코초의 다위드 총 주교님께 가볼 계획입니다.”
“아, 네. 그러셔야죠.”

요한은 코초로 달려갔다. 다위드는 화염산 골짜기 동굴 속에 머물면서 자기 자신의 백년 인생을 회고하고 있었다. 다위드는 요한이 찾아갔으나 감정의 동요가 없어 보였다.
“아버지, 강녕하오신지요?”
요한이 무릎으로 한 발 나아가서 다위드가 내민 손목을 잡으며 말했다.
“그래, 어찌 된 일이냐? 무슨 급한 일이 있어서 왔느냐?”
다위드의 물음에 요한은 쉽게 답을 못했다. 그때 모친 세루비아가 부축을 받으며 다위드의 기도실로 찾아왔다.
“요한, 언제 왔는고?”
“네, 어머니. 장안에 큰 변고가 일어났어요. 황제의 종교 탄압에 우리 교단 사제들이나 신자들 모두 변방으로 쫓겨 났고, 저항하는 사람들은 모두 죽음을 당하거나 구속되었습니다. 참으로 무상한 일이 있어났어요.”
“그래. 올 것이 왔구나.”
모친 세루비아는 담담하게 말했다.
“요한아, 두려워 마라. 하나님이 우리 교단을 사랑하신 것이다. 이제 너희는 주께로부터 받은 믿음의 표적을 보여 주거라. 고난을 영광으로 삼는 법부터 배워야 하느니라. 장안에 있는 신자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할까?”

“아버지. 우리 교단 신자들은 의외로 허약했습니다. 현지인들은 내가 언제 경교 신자였느냐면서 세속으로 되돌아갔고, 외국인들은 자기들 본토를 찾아간다고 떠났습니다. 교회당들은 파괴되고 몰수되었으며, 일부 영향력을 가졌다는 지도자들은 변방 군부대나 국경지대로 떠났습니다. 참으로 오합지졸이 따로 없더군요.”
“그래, 참 부끄러운 일이로구나.”
다위드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아버지, 평소 저와 사귐이 있던 낙양이나 장안의 청년들과 교회의 일꾼들이 2~3일 있으면 이곳으로 올 것입니다. 저들을 사마르칸트와 이곳 코초에 분산시킬까요?”

“아니다. 이식쿨까지 각각 1백 명씩을 나누어 보내라. 그들은 이 사막과 황야 지대에서 자연을 통해서 배우고 좀 더 깊이 있는 신앙으로 자기를 다듬어야 하느니라. 그리고 당나라에서 우리가 고통과 눈물을 삼키며 신앙의 씨앗을 뿌렸던 지난 2백여 년은 결코 헛된 수고가 아니었음을 명심하거라. 하나님께서 못난 이 애비에게도 1백 년 이상의 목숨을 주신 것은 아직도 할 일이 남았기 때문이다. 장안에서 퇴각하는 우리의 군사들 중 이곳에 1백여 명 남겨두고, 너는 나머지를 데리고 사마르칸트로 가서 그곳에서 1백여 명을 네가 돌보고, 그리고 나머지는 이식쿨 스데반에게 보내서 처음부터 다시 재훈련을 하는 것이다. 두려워하지 마라. 장안의 큰 박해가 길게 가지 않는다. 1년이면 잠잠해질 것이야. 그런 때가 와도 옛날처럼 방심하지 말고 철저하게 개인전도, 또는 개개인별로 신앙지도를 하면서 실력 있는 순회전도자들을 많이 길러내야 할 것이야.”
“네, 명심하겠습니다.”
장안에서는 엉뚱한 소식이 당도했다. 투쟁하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조효근 /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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