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성사 편집부장

전시장 안에 들어선 큼직한 서점이 눈길을 끌며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흔히 생각하는 ‘구내서점’이 아니다. 설치미술 작품임을 감지하고 주위를 둘러본 뒤 안으로 들어선다. 바깥쪽 벽면에 붙어 있는, 80년대 대학가에서 흔히 보던 대자보들과 입구 바로 안쪽에 놓인, 태극기에 덮인 관이 보는 이를 긴장시킨다. 한쪽 벽면으로 난 수납공간 같은 곳에 놓인 옛 물건(복제품)들도 이곳이 특별한 공간이었음을 증언하고 있는 듯하다.

8단 높이의 책꽂이에는 책들이 빽빽하다. 기억 저편에 아스라이 남아 있던 책들이 광채를 뿜으며 다가온다. 과제 준비를 위해 혹은 이런저런 계기로 손때 묻혀 가며 읽던 책들이다. 5·18 기록관에서 가져온 책들을 포함하여 4천여 권에 이르는 책 가운데 상당 부분은 시대의 모순과 아픔에 온몸으로 고뇌하던 많은 이들에게 필독서 혹은 그에 버금가게 여겨지던 것들이다. 물론 요즘 책들도 있다. 바깥쪽 매대에 진열된 비엔날레 관련 책들은 실제 판매도 한다.

스페인 태생의 작가 도라 가르시아(1965~ )의 〈녹두서점-산 자와 죽은 자, 우리 모두를 위한〉. 광주 민주화운동의 역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녹두서점’이 1981년 문을 닫은 이래 35년 만에 광주비엔날레(gwangjubiennale.org, 올해는 9월 2일~11월 6일) 전시장에서 다시 우리 곁에 다가온 것이다. “책 파는 공간을 넘어 숱한 토론이 오간 지식과 공동체의 장소였던 이곳은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행진하고 소통하고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낸 공간이라는 점에서 작품 소재로 삼았다”고 작가는 말한다.

전시 기간 중 이곳에서는 워크숍과 토론회, 퍼포먼스를 비롯한 갖가지 행사가 열려, 많은 관객에게 나눔과 소통의 장이 되기도 했다. ‘광주 민주화운동의 역사적 맥락이 지금 세대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박제된 향수어린 과거와 미술작품으로 감상될 뿐’이라는 비판적인 견해도 있지만, 서점의 서점다움을 근본적으로 돌아보게 한 점에서 충분히 의미 있는 작품이라 생각한다.

다른 작품들로 향하려는데 문득 간판 끝부분에 다시 시선이 갔다. 그냥 ‘녹두서점’이 아니라 긴 작품 이름이 모두 명시되어 있는데, 맨 끝의 ‘우리 모두를 위한’이라는 문구 아래 붓으로 쓱쓱 그은 붉은 선 같은 것이 있다. ‘우리 모두를 위한 공간’-이 말을 곱씹으며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다양하게 변신하고 있는 요즘 서점들이다.

많은 지점이 있는 대형서점과 이렇다 할 특징이 보이지 않는 동네서점으로 양분되어 온 서점의 지형도가 바뀌어 가는 가운데, 특색 있는 이른바 인디서점이 늘고 있고, 일부 대형서점은 고객 친화적인 공간으로 부분 변신하고 있다. 동기와 변모의 양상은 저마다 다르지만 ‘책을 팔고 사는 곳’을 넘어선, 조금은 특별한 색채를 띠며 고객과 소통하는 공간이 되어가는 것이다. 한 세대쯤 뒤, 국제 규모의 미술전람회에는 어떤 모양새의 서점이 어떤 이야기를 간직한 채 작품이 되어 다가올까? 기독교 서점이 그 모델이 되기를 바라는 것은 과욕(過慾)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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