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여행 [ 198 ] / 당나라 기독교(景敎)_ 下 62

“여러분, 순교자의 피는 천국 문을 크게 만듭니다.
일부러 순교자의 길을 가자는 것이 아니라
순교를 요구하는 하나님 앞에서 등을 돌리는 비겁자들은
없어야 합니다.”


금군청에 찾아온 수리아파 주교 등 강경세력들이 황제 면담을 계속 요구하고 있었다. 금군청 아장인 백천기 성도는 주교 아이엘 비수에게 말했다.
“주교님, 지금은 때가 아닙니다. 황제께서 칼을 뽑아들고 있어요. 피를 보겠다는 결심이 굳건합니다. 다음 기회가 있지 않을까요?”

아장 백천기는 아이엘 비수 주교의 저항을 무모한 행동으로 보고 있었다. 불나방이 불길 앞에서 겁 없이 덤벼드는 꼴이라고 보았다. 그는 아이엘 비수의 인격을 조금은 알고 있다. 결코 함부로 아무 곳이나 뛰어드는 천방지축형 인물이 아니었다. 비교적 온유하고 웬만해서는 앞에 나서기를 꺼리는 신중한 지도자였는데 오늘은 그의 의외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가 권하는 말을 들은 체 하지 않은 아이엘 비수를 설득하기 위하여 백천기는 금군청 성봉수 부장을 찾아갔다.

“부장님, 내가 하나 부탁드립니다. 아이엘 비수 주교가 황제 면담을 끝내 고집하다가 개죽음을 당할까 겁이 납니다. 그 분은 훌륭한 지도자입니다. 부장님도 잘 아시잖아요.”
성봉수가 아이엘 비수 앞에 나타났다.
“주교님, 제가 이곳을 나가시도록 힘을 쓰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머지않아서 주교님이 황제 폐하를 배알할 수 있는 자리를 꼭 만들겠습니다. 지금은 아무래도 때가 아닌 듯 합니다.”

“고맙소. 성봉수 부장님, 그러나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습니다. 지금 우리 경교는 비겁하게 줄행랑을 치고 있어요. 지난 2백여 년 우리가 당나라에 바친 정성이 얼마입니까? 우리 경교는 당나라가 주는 떡을 공짜로 먹지 않았어요. 이 기회에 황제에게 우리 경교도들의 존재를 확인할 필요가 있어요. 황제의 칙령을 보면 불교 신도들의 자파 종교의 욕망을 규탄했지 우리들 기독교(경교)에는 지적 사항이 없지 않소? 바로 이런 때에 우리들의 입장을 밝힐 필요가 있어요. 그리고 희생을 염려하시는 것 고맙게 알겠습니다마는 저는 우리들 경교 신도들이 미리 겁을 먹고 도망치는 자들에게 경교를 하기 위해서도 이 자리에서 떠날 생각이 없습니다.”

성봉수는 아이엘 비수 주교의 움직일 수 없는 용기를 확인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황제의 분노를 부추겨서 뒷걸음질 치는 경교 지도자들의 생각을 뒤집고 싶어 한다는 것까지 확인했다.
성봉수는 다위드 총주교의 아들 요한 사제를 알고 있다. 요한이 제시하는 당나라 선교의 앞날 계획에 동의하고 있다. 성봉수는 아이엘 비수와 다위드의 아들 요한 사제를 비교해 보았다. 세력간의 견해차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성봉수는 아이엘 비수의 결심을 변개시키기에는 자기 힘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성봉수는 금군청 부장관을 찾아갔다. 아이엘 비수가 개죽음 당하는 것은 막아주고 싶었다.

“설 대감님, 소인 청이 하나 있습니다.”설해룡 대감이 퇴청하려다 말고 성봉수를 가까이 불렀다.
“뭔가? 무슨 급한 일이 있는가?”
성봉수는 아이엘 비수 주교를 불러서 위로해 달라고 부탁했다.
“대감님, 사람 하나 살려주세요. 아까운 인물입니다.”설 대감은 성봉수의 말을 다 듣기도 전에 와락 화를 냈다.
“그 사람 명 재촉하는구나. 죽기로 작정했어. 정신 차리라고 해. 죽기 싫으면 말이다.”설 대감은 지휘검 등으로 성봉수의 어깨를 한 대 내갈리고 나가버렸다. 칼집으로 맞았으나 어깨뼈가 부러지는가 싶을 만큼 아팠다.

그날 밤 성봉수는 장안의 경교도 집결지를 찾아가 보았다. 대진사는 물론 오삼수도회 수도원들과 신도들 숙소로 사용하는 궁궐 밖 처소도 찾아갔다. 뒤숭숭했다. 불안에 떠는 신도들뿐이고 수사들이나 사제들은 한 사람도 만날 수 없었다.
다음날 황제는 경교신자들 체포령을 발동했다. 경교뿐이 아니었다. 오랑캐 종교 모두에게 형평성 있는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조로아스터교나 마니교, 이슬람 종교까지도 검거령을 내렸다.

“올 것이 왔구나.”
성봉수는 걱정을 했다. 아직은 정면대결이 힘드니 후방으로 가서 좀 더 철저한 훈련을 하겠다. 당나라는 이미 태종대왕시대의 세계제국의 위상도 사라졌고, 머지않아서 문을 닫게 된다. 중국은 새로운 왕조를 맞이할 것이다. 우리는 중국을 로마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 지속적인 실력을 양성하여 백년, 천년의 앞날을 설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요한 사제의 시국관을 성봉수는 본인으로부터 직접 들은 일이 있었다.

성봉수는 금군청에서 석방된 아이일 비수 주교 일행을 만났다. 황제가 감 일등 형벌로 사형이 아니라 추방령을 내렸다고 했다.
추방이다. 아이엘 비수는 추방이 아니라 저항을 선택했다. 경교가 태종 할아버지의 큰 은공을 입었으며, 제국을 위하여 공도 많아서 마땅히 사형에 해당하지만 추방령으로 대신한다는 무종 황제의 관대함을 아이엘 비수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이엘 비수 주교와 함께 행동을 같이 하는 주교나 평사제는 물론 수사들이 아이엘 비수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24시간 안에 당나라를 떠나라는 황제의 명령을 어기고 탄원서를 작성했다.
탄원서 내용에는 경교가 당나라에서 자비량 선교에 주력을 했다, 노동을 통해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했으며, 가난한 자들을 구휼하는 일에 많은 실적이 있음도 밝혔다. 그리고 황제가 부르면 언제든지 국방의 의무를 지킬 것임을 밝히면서 세금도 요구하면 기쁘게 낼 것이라고 탄원서 내용에 밝혔다. 자신감 넘치는 탄원서였다. 끝으로 황제와 당 제국을 위해서 계속 충성하되 결코 보상이나 은급은 바라지 않는다는 것도 밝혔다.

아이엘 비수는 자신감이 넘쳤다. 장안 시내는 물론 낙양이나 개봉은 물론 북경에도 전령을 보내서 신자들은 동요 없이 선교 현장을 지켜달라고 부탁했다.
“주교님, 혹시 황제의 뜻을 거스른다는 비난은 없을까요? 지금 불교 쪽에는 수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10만 명 이상의 불교도들이 승려의 신분을 버리고 사찰을 떠났습니다. 사찰들도 주요 지역은 도교사원으로 용도를 바꾸었고, 폐쇄하거나 사찰을 뜯어버린 곳도 많다고 합니다.”
불안에 떠는 신도들이 아이엘 비수 주교를 붙잡고 울부짖는다.

“여러분, 순교자의 피는 천국 문을 크게 만듭니다. 우리는 로마교회가 얼마나 많은 핍박 속에서 오늘에 이른 줄을 아셔야 합니다. 일부러 순교자의 길을 가자는 것이 아니라 순교를 요구하는 하나님 앞에서 등을 돌리는 비겁자들은 없어야 합니다.”
“하오나 황제가 우리에게 당장은 추방령을 내리지만 머지않아 우리는 다시 당나라 땅을 밟을 수 있습니다. 사실, 국경을 넘지 않아도 됩니다. 변방 지역으로 가면 우리가 돌볼 수 있는 양떼들인 신자들이 있고 군사령부에서도 우리의 활동에 도움을 줄 것입니다.”

“글쎄, 이해가 되기는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우리들의 순결한 신앙을 한 번 가다듬을 필요는 있습니다.”
“주교님, 목숨은 하나뿐입니다. 지혜로운 방법이 있는데, 황제의 자존심을 건드려서 무슨 이득을 보려 하십니까?”
이영복 사제의 항변이다. 이 사제는 이미 팔순이 넘은 연로한 인물로 평소 조용한 성품이었으나 순교를 부추기는 듯한 아이엘 비수 주교에게 강하게 반박했다. 아이엘 비수도 이영복 사제를 안다. 그는 매우 신중하고 온건한 인물이다. 그런 그가 많은 군중 앞에서 주교의 제안에 제동을 건 행동을 했으니 아이엘 비수도 신중한 답을 해야 했다.
“원로 사제님의 지혜로운 말씀에 저도 동감입니다. 다만 우리 기독교가 이방인 황제 한 사람의 횡포에 너무 겁을 먹어서는 안 된다는 최소한도의 자존심으로 선택한 작은 종의 생각이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아이엘 비수 주교의 신중한 태도에 대하여 이영복 사제는 빙긋이 웃었다. 긴박한 분위기 속에서도 이 사제의 온화한 미소는 긴장 속에서 속 타는 사람들에게도 한줄기 평안한 여유를 안겨주었다.
“그래요. 우리 모두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이니 한 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합니다. 황제의 추방령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것도 사치스러운 핑계에 불과한 일이기는 하죠.”
“저희는 싸우기를 원합니다. 십자가의 승리를 믿습니다. 사제님과 주교님께서 저희에게 용기를 주십시오.”
젊은 층에서 싸우자고 나선다. 무엇을 위해서 싸우나? 황제의 추방령을 거부하는 싸움을 원하는가?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이번에는 아이엘 비수가 신중해졌다.
“여러분, 싸울 기회는 앞으로 많이 있습니다. 황제의 추방령에 동의하고 국경 지역으로 후퇴하여 훗날을 기약하는 방법도 용기 있는 싸움입니다. 일단 국경 쪽으로 선교지를 이동할 사람들은 이영복 사제님을 따르십시오.”
절반쯤 되는 신자들이 국경 쪽 이동을 선택했다. 아이엘 비수는 일부 젊은이들을 이끌고 황궁 쪽으로 갔다. 그들을 본 금군들이 제지했다.

“당신들은 뭐요? 황제 폐하의 명을 거역하는 무리들인가?”
“아니오. 저희는 수도 장안의 종들 중에서 종이 되어 황제의 신민으로 충성하기를 원합니다. 저희는 군 징집은 물론 노예가 되어서라도 대당제국의 충성을 바치려는 사람들입니다.”
“못 말리는 자들이구먼. 죽겠다는데 죽여주지 뭐.”
금군들이 눈으로 신호를 하자 검정색 제복을 입고 복면을 한 특수부대원들이 아이엘 비수와 그를 따르는 젊은이들을 포승줄로 묶었다. 고분고분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사정없이 몽둥이를 휘둘렀다.

조효근 /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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