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인철 목사
광천중앙교회 담임 

슬프다. 참으로 슬프다. 예레미야의 애가 첫 일성, ‘슬프다. 이 도성이여!’라는 말이 귀청을 뚫고 마음을 관통해 온몸을 진동시킴은 수백만의 촛불 시위 현장에서 이 민족의 아픔과 희망을 동시에 보아야 했기 때문이다.

미성숙과 성숙, 비정상과 정상, 옳고 그름의 간격이 이처럼 크게 느껴지기도 처음인 듯하다. 믿었고, 지지했던, 관(冠)을 쓴 여인에 대한 실망은 노천명 시인의 사슴에서 ‘너는 무척 높은 귀족이었나 보다’라는 시구(詩句)같이 이제는 과거가 된 것이 참으로 슬프다. 그런데도 그녀는 여전히 그 관을 벗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그뿐인가? 이 슬픔들을 자기 욕망 충족의 기회로 삼으려는 별반 다를 바 없는 잠룡들의 이기적 몸짓들은 희망을 마시고 싶어 하는 촛불 든 백성들을 분노케 한다.

이보다 더 슬프고 슬픈 것은 관을 쓴 여인을 넘어 열 두 별의 관은 쓴 여인(계 12:1), 즉 그리스도의 신부 된 교회가 이 모든 슬픔의 한 중심에 있었었다는 불편한 진실이다. 모든 것이 수상한 최태민은 간교한 거짓된 미혹으로 목사들을 군 훈련장으로 몰아넣고 복음이 아닌 반공을 외치게 하며 구국의 용사로 만들어 무너지는 유신집안과 그 공주를 찬양할 때, 복음이 아닌 어설픈 권력의 그림자로 명예의 육적 욕구와 세속적 성공의 위업을 달성하려 교회의 거목들은 그것들의 재목이 되려고 자신의 허리를 잘랐다.

정권마다 교회는 자신의 정당성을 위한 아주 좋은 먹잇감이었다. 신자 된 왕들의 권력과 물질은 성전을 위한다는 제사장들의 그럴듯한 궤변으로 왕들의 범죄를 정의로 둔갑시켰고, 왕의 권력으로 성전의 지붕을 삼아 그 힘으로 백성의 골을 빼먹었다. 제사장의 타락은 그래서 하나님의 슬픔이었다. 뜬금없이 나타난 족보도 없는 목사의 감언이설에 불나방처럼 줄을 대던 그들의 침묵은 또 다른 범죄이건만 그림자마저 어둠에 감춘다.
최태민이 중이었건 무당이었건 그것은 결코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 앞에 선 목사가 영적으로 깨어 있어 소명하신 주의 사명에 충성을 다하려 했다면, 그와 더불어 시대의 권력을 손에 쥐고 싶지 않았다면 스스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향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이제 와서 최태민은 목사가 아니니 언론에게 목사로 칭하지 말라고 애걸하는 한국교회가 슬프다. 그와 한 판 잘 놀아보자고 손잡고 춤을 춰대던 엊그제에 대한 회개는 흉내도 없고 그와 간격 두기에 여념이 없는 한국교회가 참 애처롭고 슬프다.
관을 쓴 청와대의 여인을 향해서 촛불을 든 백성의 힘겨운 손들과 외침을 좌파니 친북이니 하며 사탄집단으로 몰아가는 강단들이 있음이 정말 슬프다. 불의가 분명함에도 단순히 보수라는 이유만으로 촛불을 비난하며 야단치는 것은 진정한 복음이 아니다. 교회는 보수의 대변자가 아니다.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대변자다.

열 두 별의 관을 쓴 여인은 세상의 권력에 저항하다 피를 흘려야 한다. 주님은 그 권력에 계시지 않기 때문이다. 김경렬의 ‘냄새나는 예수’에서 알 수 있듯이 주님은 냄새나는 사람들 틈에 계신다. 거기서 그들과 함께하는 여인의 옷에는 그들의 땀 냄새 악취 같은 냄새가 배어들어야 하고, 그들의 옷에는 예수의 냄새가 배어야 한다.

그런데도 아직 열 두 별의 관을 쓴 여인, 한국교회는 진정한 회개의 눈물이 없다. 불나방처럼 권력 주변을 서성이며 죽는 날을 기다린다. 슬프다. 이 도성이 슬프고, 이 교회들이 슬프다. 하나님은 너무도 선명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셔서 회개하고 복음으로 돌아설 것을 절규하듯 외치시는데, 매주 백만이 넘는 촛불의 함성으로 열 두 별의 관을 쓴 여인을 향해 소리치는데, 여전히 이 도성과 이 교회는 주님이 “화 있을 진저”라며 탄식하셨던 고라신과 벳새다와 같다(마 11:20~21).

어찌해야 하나, 귀는 닫혔고 눈은 멀었으니, 슬프다. 정말 슬프다. 광야의 외침마저 순수하게 듣고자 한이 없으니. 슬프다. 이 성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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