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펜의 아시아(AD 610~1625) 천년여행 [ 200 ] / 당나라 기독교(景敎)_ 下 64

아이엘 비수는 성봉수 부장을 조용히 바라다보았다. 성 부장은 비수 주교를 형님으로 부르며 따르는 젊은 군관이다. 자기도 주 예수의 사제가 되어 주님을 섬기는 일에만 몰두하며 살았으면 좋겠다고 늘 말했었다.

아이엘 비수는 성봉수를 붙잡아 일으켜 세웠다. 진흙바닥에서 옮겨 붙은 흙먼지를 성봉수의 관복에서 툭툭 털어주면서 애써 웃음 지었다. 그리고 말했다.
“성 부장, 폭군이야. 폭군에게 불교 기독교의 구분이 있겠나. 황제가 미친 거야.”
성봉수가 비수의 입에서 황제가 미쳤다는 말이 나오자 두 손으로 비수의 입을 틀어막았다.
“주교님! 이러시면 큰일 납니다. 생각을 바꾸세요.”

조용한 목소리로 그러나 힘주어 말했다. 그를 마주 바라보는 비수 주교가 빙긋이 웃었다. 그는 성 부장의 어깨를 툭 치면서 어서 여기를 떠나라고 속삭이듯이 말했다. 머뭇거리는 성봉수를 비수는 다그쳤다.
“어서요. 더는 지체할 시간이 없어요. 이제 당신 할 일은 끝났어요.”
비수 주교의 말이 끝나기 전에 금군청 병사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최종 통첩이다. 어명을 받들어 돌아갈 자들은 이쪽으로 자리를 옮기라!”
금군 간부의 말에도 주교 일행은 무릎 꿇은 자세에서 옴짝하지 않는다.

“없는가!”를 거듭 외친 금군의 요구를 외면한 경교 사제들은 황제 알현을 계속 요구했다.
“우리는 황제 폐하 알현을 요구한다. 황궁으로 우리를 안내하라.”
사제들의 이 같은 요구는 채찍으로 되돌아왔다. 금군들이 퍼부어대는 채찍에 사제들은 욱, 억, 등 짤막한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그들의 얼굴에는 붉은 피가 흐르고 채찍은 여전히 계속되었다.
“미친개들에게는 몽둥이가 약이다. 너희가 원하면 얼마든지 두들겨주마.”

금군들의 매질은 멈출 줄을 몰랐다. 비수 주교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를 바라보는 금군들 두 명이 달려왔다. 발로 짓밟으면서 말했다.
“더는 너희에게 인간적인 대접은 없다. 그만큼 말해주었는데도 말이 통하지 않으니 더는 인간대접 없다.”
“황상 폐하! 황상은 우리 백성의 어버이라 하셨소이다. 이렇게 저희가 폐하의 뜻을 따르고자 하는데도 그 길을 막으시니 하오면 저희가 목숨을 버려 마지막 충성을 하도록 은혜를 베푸소서.”

비수는 몸을 바르게 가눌 수 없는 자세를 안타까워하면서 무종 황제를 향해 호소했다.
“은혜를 베푸소서.”
아이엘 비수의 호소를 뒤따라서 사제들도 소리쳤다. 은혜를 베풀어 달라는 것이다.
비수 일행은 모두 금군청 뒤뜰에 있는 지하 감옥에 갇혔다. 아이엘 비수와 사제들은 지하 감방에 갇혀 3일 동안 엎드려 있었다. 그들은 주님께 기도하면서 침묵 속에서 다음 시간을 기다렸다. 그들끼리도 말하지 않았다.
장안뿐 아니라 낙양, 북경, 개봉, 항주, 남경 등 대도시 교회들도 비슷했으나 장안만큼 황제에게 극렬하게 저항하지 못했다. 그러니 북경은 거세게 저항하여 교회당들이 폐쇄되고 사제들은 감옥에 갇혔다. 일부는 죽음을 면치 못한 사제들도 있었다.

다시 장안 금군청. 지하실에 연금된 아에일 비수는 3일 동안 침묵의 기도 후 금군청 고위 책임자 면담을 요구했다. 금군청 부장관이 아이엘 비수를 불렀다.
“아이엘 주교! 내가 부장관 여상수일세. 그래 그동안 고집을 좀 꺾으셨나. 지금까지 그대가 목숨을 부지한 것은 황제 폐하가 그대를 각별히 아끼고 계심임을 아는가요?”
여상수 부장관은 비수 주교의 몸 상태를 눈여겨보면서 말했다.
“잘은 모르옵니다. 장관님.”
“그래, 잘은 몰라도 조금은 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겠소이까?”
“……. 아, 아닙니다. 잘 모르는 일이옵니다.”

“그래요. 황제 폐하는 아이엘 비수 주교를 다치게 하고 싶지 않다 하셨소이다. 금번에 주교께서 한 발 물러서 주시오. 당신들의 종교를 탄압하는 것이 아니지 않소.”
“장관님, 그런 말씀은 더더욱 받잡기 민망합니다. 어찌 우리들 기독교가 정화대상이 아니라고 그냥 나는 몰라라 할 수 있나요.”

“허어, 지금 불교는 내가 판단해도 도를 지나쳤어요. 황상 폐하의 칙령을 주교도 읽었을 게 아니오. 그래, 불교가 가진 재산이 황실을 웃돌고 있으며 출가 사문이라는 승려들의 사치가 하늘을 찔렀소이다. 그런 종교는 황제뿐 아니라 물론 내가 볼 때도 지나쳤어요. 종교가 종교의 본분을 망각하고 사치와 부를 무한대로 소유하려 든다면 그건 불교, 불교뿐 아니라 종교의 기본적인 자세가 아니지 않소. 황제께서 통치자의 입장에서 균형을 잃은 어느 종교를 바로잡으려 하시는데 직접 대상이 아닌 그대들 경교가 황제에게 대들면 황제께서 난처하시지 않겠소이까. 주교는 황제 폐하가 그대를 얼마나 아끼는지 모른다 하니 내가 한마디 귀띔하겠소. 황상은 그대를 무척 아끼시오. 폐하의 친형제 정도로 생각하고 계시오. 그대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벌써 며칠째 금군청에 뛰어들어서 고집을 피웠으면 진작 요절이 났소. 그러나 비수 주교가 고집을 피우는지라 황상께서 고통스런 인내를 하고 계시오. 제발 이 선에서 여러분은 돌아가서 근신하고 있다가 황제의 진노가 멈추기를 기다려 포교사업을 계속하도록 하시오.”

“폐하께서 소인을 그토록 아끼신다니 더더욱 언행이 조심스럽기는 하옵니다만 제가 장관님 면담을 요청한 내용은 이렇습니다. 저도 무작정 주교의 책무를 소홀히 할 수 없나이다. 저를 바라보고 무조건 따르는 제자들이나 동료들이 물러설 수 있는 퇴로를 장관님께서 열어주셨으면 합니다.”
“그래, 그래요. 그것은 나는 물론 황제께서 바라는 바가 아니오이까. 어서 한시바삐 비수 주교와 그대 동료들이 자기 고유 임무를 위해서 교회당으로 돌아가기를 바라오.”

“아닙니다. 황제의 명은 제가 받들겠으니 저와 함께 지금 갇혀있는 저의 동역자들은 돌려보내주셨으면 합니다.”
“뭐요. 그대가 황제의 뜻을 받든다고…? 어떻게…?”
“장관님, 송구합니다. 저는 이미 우리 구주 예수님의 뒤를 따르기로 했습니다. 저는 황제 폐하의 은혜로 알고 제 목숨을 제단에 바치려 하나이다.”

“아니오. 그건 억지요. 황제의 자비무한하신 은총을 배반하는 일이며 또 비수 주교는 동료와 그대 후학들에 대한 무례요 더 심할 경우는 탐심이라 할 수 있소. 그대들 기독교도들은 순교를 생명처럼 아끼죠. 로마시대 로마 황제들에게 저항하여 사자 밥이 되어 죽어갔던 시대를 예찬하고 있죠. 그런 점에서 그럼 당신만 순교하고 다른 사제들은 목숨이 아까워서 되돌아간 결과라면 이건 아이엘 비수 주교의 지도자 자격에 문제가 있소이다.”
“상관없습니다. 제가 탐심이 많은 자로 낙인이 찍혀도 최소한 저만큼이라도 목숨을 구차하게 면하려 드는 비겁자가 아니기 바랄 뿐입니다.”

“그렇다는 이야기지 내가 비수 주교의 도덕성을 문제 삼는 것은 아니요. 좋은 뜻으로 우리 만났으니 물건 흥정하듯이 따지지 맙시다. 아마, 비수 주교도 잘 알겠으나 다위드 총주교의 자제인 요한 사제 말이죠. 그 어른을 나도 잘 압니다. 아마도 비수 주교나 요한 사제는 다함께 소중한 당나라 기독교(경교)의 지도자이니 나도 자랑으로 알고 있소만 그분은 지금 제자들과 함께 서역(현 신장위구르 지역)으로 갔지요. 거기서 앞날에 대한 계획을 세운다 하였소. 여러분들의 견해차일 수 있으나 양쪽 다 나는 소중하게 봅니다. 비수 주교는 동료들 수십 명을 이끌고 금군청까지 와서 며칠째 농성을 한 것으로 신앙과 소신의 표현을 했소이다. 그러니 이 밤 후에 동료들을 설득하여 대진사(경교의 당나라 본부 교회)로 돌아가는 것이 지혜로운 선택입니다. 자꾸만 고집을 피우시면 그대를 아끼시는 무종 황제께서 노여워하실 까봐 걱정이오. 자, 나는 이제 더 할 말이 없소이다.”

아이엘 비수는 금군청 지하 감옥으로 돌아왔다. 말없이 밤이 깊어 가는데 쉽게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 자신의 마음 한구석에서는 황제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황제가 자기를 아끼신다는 금군청 수석 부장관의 말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황제는 만백성의 어버이다. 나뿐 아니라 제국 안에서 숨을 쉬는 사람이나 생명체들 모두를 아끼고 사랑하심이 당연지사이지 그것을 특별한 사랑과 연결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때 그의 곁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주교님, 우린 금번 기회에 순교를 못합니다. 퇴로를 찾아야 합니다.”
연동주 사제의 말이다. 그는 엎드린 채 계속 말했다.

“주교님, 로마 제국과 당 제국은 다릅니다. 우리는 로마식 순교에 너무 매달리지 말고 당나라에 기독교의 천년 기둥을 박고 반드시 당나라 또는 중국이 아시아 기독교의 버팀이 될 수 있는 지도자를 양성해내야 합니다. 저는 다음날 돌아가겠습니다. 일단 서역으로 가서 요한 사제를 만나고 싶습니다.”
“그래, 잘 생각했습니다. 나도 조금 전에 금군청 수석 부장관 여상수 대감을 만나고 왔소. 모두 대진사로 돌아가라 하셨어요. 황상의 명입니다.”
“아, 그렇군요. 잘됐습니다.”
연동주 사제는 매우 기뻐했다.
“그래요. 가서 천년을 견디어낼 기둥을 만들어보시오. 그래야만 합니다. 여러분은 해낼 수 있습니다.”

조효근 /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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