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펜의 아시아(AD 610~1625) 천년여행 [ 201 ] / 당나라 기독교(景敎)_ 下 (최종회) 65

연동주 사제가 이끄는 서역(타클라마칸) 행이 결행됐다. 연동주 일행은 아이엘 비수 주교를 금군청 감옥에 남겨둔 채 결심을 굳힌 날 밤에 대진사로 돌아왔다.
다수가 비수 주교와 행동을 같이해야 한다고 고집했지만 연동주는 반대했다.

“우리 네스토리우스 파는 죽고 사는 형식이 같소. 이미 에베소 종교회의(AD431년) 때 우리는 죽은 몸이 되었소. 칼케돈 회의(AD 451년) 초청받은 우리들은 지도자인 네스토리우스 총대주교가 뭐라고 답변서를 보낸 줄 아시죠. 그는 이렇게 말했소. 네스토리우스는 이미 죽었소. 나는 여러분의 평가를 받기 원치 않으며, 오직 주 예수의 심판을 원합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특별히 순교를 자청할 필요가 없어요. 우리는 이미 살아있어도 죽은 목숨이요 죽어도 산목숨입니다. 살고 죽는 것이 하나임을 잊지 마시오.”

“그건 너무 추상적입니다. 어찌 살고 죽는 것을 동일하다 하시오. 그 의미는 알아듣겠으나 생사는 엄연히 각기 다른 모습이죠. 물론 저는 연동주 사제와 서역으로 떠나긴 합니다. 비수 주교님이 죽음 직전에 있는데 우리만 갑니까?”
“저는 아이엘 비수 주교님께 서역에서 기다리는 요한 사제와 합류하겠다고 했습니다. 비수 주교님도 기쁘게 동의했어요. 아이엘 비수 주교는 단식하면서 버티실 결심을 하시더군요. 주께서 그를 인도해 주실 것이니 우리는 일단 사마르칸트로 방향을 잡기로 합시다.”

그 시간 요한 사제는 다위드 총주교의 임종을 지키고 있었다.
“아들아, 장안에서는 소식이 없느냐?”
“걱정하지 마세요. 대진사의 젊은 주교 아이엘 비수가 민첩하게 대처하고 있을 것입니다. 일단 장안에서 철수하여 변방으로 흩어져서 다음 계획을 세울 것입니다.”
“그래야겠지. 그러나 어린 제자들은 어찌 할꼬….”
“…….”

요한은 다위드의 ‘어찌 할꼬’에 빙긋이 웃음으로 대응했다. 아버지가 늙으신 것이다. 100살이 넘으셨으니 늙으셨지. 내일을 걱정하시는 모습을 보니 늙으신 것이 분명하다. 늘 당당하시고, ‘나에게는 언제나 오늘이다. 태양은 오늘을 말해주고, 숨을 쉬는 것도 이것이 바로 오늘이 내게 있음이야’라고 하셨던 요한의 아버지 다위드이시다.

동방아시아의 기독교, 정확하게는 네스토리우스 교단 사마르칸트 대교구장을 지내신 외할아버지 요한 대주교님의 외손자로 총명하고 신앙심이 뚜렷했던 다위드, 초대 당나라 대교구장이신 알로펜 총주교님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던 당대의 다위드가 하나님의 품으로 떠나려고 하신다. 요한은 다위드의 두 손을 붙잡고 여유와 미소로 바라본다.

“요한아, 너 이 늙은 아비가 우습냐? 벌써 며칠이냐, 동료 전도자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나만 편히 누워서 하나님께 응석을 부리는 것 같아서 낯이 뜨겁구나. 그런데 너는 웃고만 있는 거야?”
“네, 아버지, 아버지가 영광의 나라로 떠나시려 하는데 왜 저는 웃음이 나올까요. 아버지, 아버지가 나를 낳아주시지 않았으면 저는 이 세상 구경을 못했을 거죠.”

다위드는 요한의 엉뚱한 말에 숨이 차고 고통스러운 시간에도 웃었다. 아들의 기분을 따라서 웃었다. 100살이 넘은 인간이니 특별한 병은 없다지만 몸의 기능 전반이 다 노쇠하여 헐떡일 수밖에 없었다. 비명을 지를 만큼은 아니지만 숨이 차고 또 숨길이 답답해 몸을 일으키고 싶었으나 번번이 참으면서 주님께서 천사를 보내주실 시간을 기다렸다.

저녁이 깊어지자 요한은 주위를 모두 물렸다. 신학교 학생들, 교수들, 교구 동역자들도 내일 아침 만나자고 약속하고 그는 다위드 곁에 앉아서 아버지를 지켰다.
다음날 새벽. 다위드가 요한을 불렀다. 잠시 눈 깜빡했을 때였다.
“아들아, 한동안 시련이 계속될 것이다. 당나라는 곳곳에서 민란도 일어나서 왕조가 바뀔 거야. 너는 이곳 사마르칸트를 중심하여 교구를 강화하고, 투루판이나 쿠처는 물론 카슈가르나 허탄 등 주요 선교관할지에 실력 있는 제자들을 양성해 배치하거라.”

다위드는 아주 조용한 목소리로 띄엄띄엄 말했다. 요한 사제는 이 시간에 아버지 다위드 총주교의 마지막 유언의 시간인 줄 미처 모르고 잠결에 말씀을 듣는 듯했다. 그리고는 말씀이 이어지지 않아서 아버지를 유심히 살폈더니 다위드가 미소를 머금은 채 숨을 거둔 뒤였다.
요한은 번쩍 정신을 차렸다. 밖에 나가서 비상종을 두드렸다. 비상이었다. 동료들을 안심시켜 돌려보낸 후 혼자서 다위드를 지킨다는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

“총주교님이 하나님 품으로 떠나셨습니다.”
다위드와 마지막 인사를 나눴는지도 모르는 불효자식이 되었으나 요한은 아버지의 유언은 충분히 들었음을 자부하고 교구 책임자들과 함께 다위드 총주교의 장례를 마쳤다.
다위드가 세상을 떠난 후 1개월이 지났다. 그동안에 코초에서 제자들이 와서 요한을 도왔는데 장안에서 30여 명의 젊은 사제들이 몰려왔다.

“요한 사제님, 저희들 장안 교구는 일단 사마르칸트로 합류하면 되겠죠?”
“아닙니다. 둔황이나 코초에 행정부를 두고 당나라 선교는 이동선교구로 보존하면 됩니다.”
“그럼 둔황보다는 코초가 좋겠군요. 코초의 경우 수도원이나 신학교 규모가 이곳 사마르칸트와 맞먹을 정도이고 장안보다 더 크니까 불편하지 않을 것입니다.”
연동주 사제의 의견을 들으며 요한은 다른 도시들 문제도 궁금해했다.
“아, 참. 아이엘 비수 주교는 장안에 그냥 계십니까?”

요한이 묻는 말에 연동주는 비수 주교가 금식 중에 순교했음을 밝혔다. 금식하다가 순교한 것이 아니라 금군청을 떠나지 않고 그곳 감옥에서 금식 중에 누군가에 의해 살해되었다고 했다.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그 어른의 순교 목표는 달성했습니다.”
요한 사제의 말에 연동주는 고개를 모로 흔들었다.

“자연스러워야죠. 살고 죽는 것이 하나라지만 저는 생명의 시간을 아껴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요한 사제의 뜻을 따르자고 비수 주교님을 설득했고, 주교님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젊은 사제들 목숨을 제가 이끌고 이곳 요한 사제의 뜻을 따르겠다면서 왔습니다. 면전에서 공치사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저는 다위드 총주교님이나 요한 사제의 가르침에 일찍부터 공감했습니다. 앞으로 내 목숨의 마지막 한 시간까지를 주 예수의 나라를 위해 요한 사제님과 함께할 것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다른 교구들 소식은 어떻습니까?”
“장안에서도 희생자가 있고요. 그러나 장안에서는 이영부 노사제가 교우들을 이끌고 오르도스 지역으로 갔습니다. 뤼양, 칸발리크(북경), 개봉 등지에서는 수백 명의 순교자가 나왔어요. 어떤 사람의 전언에 의하면 예배시간에 정부군이 예배당에 불을 질러 수많은 신자들이 희생된 곳도 있다고 해요. 태풍이 지난 후 저희가 한 번 조사해봐야 할 것입니다.”
“결국 그렇게 큰 사고가 났습니까?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로군요.”

“무종 황제가 불교를 핑계대지만 따로 들은 이야기로는 우리 기독교에 대해서는 별도로 꽁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게 뭡니까?”
“당태종이 알로펜 주교 일행의 당나라 입국(AD 635년) 후 알로펜 주교와 복음 이야기를 나누면서, 노자(老子)가 검은 소를 타고 서역 멀리로 갔다더니 그가 우리 당나라에 돌아온 것 같다면서 알로펜 주교를 노자에 비유했다는 이야기를 무종황제가 듣고는 기독교(경교) 따위를 감히 도교의 교조와 비교하다니, 하며 불쾌하다는 말을 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무종 황제가 불교 탄압과 함께 우리 기독교(경교)를 탄압한 것이기도 하고, 주 탄압 대상이 불교가 아니라 우리 기독교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래요? 무종이 그렇게 소심한 군주인 줄 몰랐군요. 만약 무종의 뜻이 기독교와 불교의 동시탄압에 목적이 있다면 우리들은 큰일입니다. 불교는 중국에서 이미 1천년이 넘은 역사를 가졌고, 더구나 인도 불교는 중국불교화 되었기에 불교 탄압을 해봐야 중국불교가 크게 흔들리지 않지만 우리들 기독교는 뽑으면 뽑히는 작은 나무인데, 아하, 이를 어찌해야 합니까?”

“요한 사제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도 당나라 기독교는 겨우 2백여 년 역사지만, 바로 여기 사마르칸트나 중앙아시아 더는 메소포타미아 시대 이후 동방아시아 시대를 말한다면 2천년이 다 됩니다. 우리들 동방아시아 기독교는 오순절 성령 강림 때의 역사부터 지금까지입니다. 또 있지요. 예수님이 사용하시던 아람어(시리아어)를 지금 우리들이 예배언어로 사용하고 있고, 로마 제국보다 더 우수한 성경번역본이 시리아 사본 <페시타> 성경입니다. 앞으로는 세계 기독교 역사의 중심이 우리들 ‘동방 아시아’로 옮겨올 것입니다.”

“연동주 사제의 역사 감각이 세계적인 틀을 가지고 있군요. 그러나 지금 말씀하신 ‘동방아시아’라는 용어가 제게는 낯설게 들리는군요.”
“아, 그거요. 우리들의 앞선 교회시대는 ‘아시아’를 ‘동방’으로 표기했지요. 그 시대 아시는 비잔틴 동쪽 아나톨리아를 아시아로 여겼고, 지중해변의 소아시아를 아시아로 표기했어요. 그러나 지금 우리가 머물고 있는 곳 사마르칸트가 ‘중앙아시아’입니다. 중앙아시아가 있다면 동서남북 아시아가 있다는 말로서 큰 아시아입니다. 그래서 고대 아시아 교회를 ‘동방교회’라고 했으니 두 지명을 합성시켜서 저는 ‘동방’과 ‘아시아’를 합해 ‘동방아시아교회’로 표기해 ‘유럽 교회’나 ‘로마교회’의 쌍두마차로 봅니다.”
“야, 멋있군요. 그렇게 합시다.”
요한 사제는 연동주 사제의 역사 언어 감각을 귀하게 여기기로 했다.

조효근 /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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