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형은 목사
말씀삶공동체
성락성결교회 담임

교수신문이 연말마다 크게 주목받는다. 사자성어를 정하는 일 덕분이다. 교수신문이 이 기획으로 연말연시에는 국민의 신문이 된다. 추천위원들이 그해의 사회상을 가장 잘 담는 사자성어를 추천하면 이것을 교수신문 내부의 파일럿 테스트를 통하여 몇 개를 걸러내고 그 가운데 가장 선호도가 높은 것을 정한다. 올해는 ‘군주민수(君舟民水)’다. 임금은 배요 백성은 물이란 말인데 순자(苟子) 왕제(王制)편에 나오는 표현이다. 물이 배를 띄우고 실어 운반하지만 물이 화가 나면 배를 뒤집어 망하게도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박근혜-최순실 사태와 직결돼 있다.

교수신문의 작업이 의미가 깊다. 우리 사회의 집단 역사의식을 깨우니 말이다. 흐르는 시간 속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흔적이 역사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그 시간의 일정한 부분을 떼어놓고 살피며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역사 공부다. 역사 공부에서 교훈을 받아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를 확인하고 앞으로 걸어갈 길을 전망하는 정도가 되면 역사의식을 가진다 할 것이다. 이런 작업이 중요함을 깨닫고 역사를 깊이 공부하는 사람들이 중장기적으로 사회의 흐름을 이끌어간다. 역사의식으로 깨어있는 사람들이 역사를 주도하는 것이다.

교수신문이 한 해의 사자성어를 정한 것이 새로운 세기가 시작된 2001년부터다. 올해까지 16개의 사자성어를 선정했는데 대부분 호응이 대단했다. 이 사자성어들을 보면 새로운 세기가 시작된 이후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느끼며 살아왔는지를 알 수 있다. 지난 것들을 차례로 써본다.

오리무중(五里霧中), 깊은 안개 속에서 길을 찾기 어려움. 이합집산(離合集散), 헤어졌다 모였다 반복하여 어지러움. 우왕좌왕(右往左往),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방향을 종잡지 못함. 당동벌이(黨同伐異), 한 편이 다른 쪽 사람들을 무조건 배격함. 상화하택(上火下澤), 위에는 불 아래에는 못이 있는 것처럼 서로 이반하고 분열함. 밀운불우(密雲不雨), 하늘에 구름만 빽빽하고 비가 되어 내리지 못하는 답답함.

자기기인(自欺欺人), 자신을 속이고 남을 속임. 호질기의(護疾忌醫), 병을 숨기며 의사를 피함. 방기곡경(旁岐曲逕), 샛길과 굽은 길 곧 일을 바르게 하지 않고 그릇된 수단을 동원함. 장두노미(藏頭露尾), 머리는 겨우 숨겼지만 꼬리가 드러나 보이는 모습. 엄이도종(掩耳盜鐘), 귀를 막고 종을 훔침. 거세개탁(擧世皆濁), 온 세상이 혼탁하여 홀로 맑게 깨어있기가 쉽지 않음. 도행역시(倒行逆施), 순리를 거슬러 행동함. 지록위마(指鹿爲馬),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우김. 혼용무도(昏庸無道), 세상이 온통 어지럽고 무도함.

오, 이럴 수가! 새로운 천년에 들어서면서 지금까지 행복한 해가 하나도 없다! 진짜 그랬을까. 우리 사회에 사는 사람들 모두가 이 16개 사자성어의 느낌으로만 살았을까? 그랬다면 절망의 사회일 테다. 사람이 현재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보통 감사와 만족보다는 불평이나 불만 쪽이 많다. 사회상에 대한 통속적인 인식이 주로 언론에 의해서 형성되는데 언론이 사건사고를 중심으로 보도한다는 것도 감안해야 할 것이다.

지난 16년 동안 이 땅의 삶에 기적 같은 감사와 가슴 저리는 행복이 왜 없었겠는가. 교수신문의 사자성어가 우리 사회의 중요한 특징을 잘 짚어내기는 했다고 해도 삶의 실존을 깊이 있게 응시했다고는 못하리라. 가만히 보니 선택된 사자성어들에 ‘하늘의 뜻’을 담은 것이 거의 없다는 점이 특이하다. 우리 문화와 사상에 민심, 하늘, 순리(順理) 등이 참 중요한데 그런 내용을 담은 것이 두 개 정도 외에는 보이지 않는다.

역사에는 예기치 못한 요소가 작용하여 반전이 일어나는 경우가 있다. 보통은 역사의 우연이라고 부르는 것인데 신앙적으로는 하나님의 섭리다. 우리 사회의 지난 16년이 적잖이 어려웠지만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가 컸다. 지난해 시월에 터진 박근혜-최순실 사태도 반전의 계기로 봐야 할 것이다. 지난해의 사자성어에 두 글자를 덧붙이고 싶은 것이 그래서다. 신치(神治), 하나님의 섭리적 다스림 말이다. 병신년에서 정유년으로 넘어가는 시간의 흐름이 ‘군주민수신치(君舟民水神治)’이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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