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승호 편집부장
홍성사 

도쿄 역 서남쪽 옛 중앙우체국 건물. 하얗고 고풍스러운 이 야트막한 건물은 어느새 쇼핑몰로 변신하여 마루노우치 일대의 ‘핫한’ 곳으로 많은 이들의 발걸음이 몰린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가운데가 시원하게 트여 있는 삼각형의 단면, 세 변에 해당하는 공간에 개성 있는 상점들이 몰려 있는 이곳 4층의 ‘마루노우치 리딩(Reading) 스타일’. 요즘 각광받는 대형 서점들처럼 책과 관련 잡화를 함께 판매하며 카페가 있는 곳이라는 점에서는 특별히 새로울 게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한쪽에 있는 서가에 문고판 책이 빼곡히 꽂혀 있다. ‘생일 문고(BIRTHDAY BUNKO)’라는 이름의 이 서가에는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생일에 해당하는 저자들의 책 366종을 모아 놓았다(이 문고에 대해서는 (사)행복한아침독서가 펴내는 〈동네 책방 동네 도서관〉에 짧게 소개된 바 있다).

내 생일에 해당하는 책을 뽑아 든다. 표지와 책등을 살펴보니 원래의 책 제목이 아닌 ‘생일에 해당하는 날짜’가 책 제목이다. ‘당신과 같은 날 태어난 저명인의 책’이라는 부제목이 시선을 끈다. 일본의 서스펜스 소설 3대 여성 작가의 한 명으로 꼽히는 가쿠다 미쓰요(角田光代, 1967~ )의 기행 에세이집 <いつも旅のなか>(‘늘 여행 속에’라는 의미)다. 번역서로 출간된 그의 장편소설 <종이 달>(紙の月, 2012)은 영화로 제작되어 2015년 국내에도 개봉되었다.

그의 이 기행 에세이집에는 제목처럼 여러 나라의 여러 도시를 여행하며 느낀 단상이 담겨 있는데, 우리나라를 다녀간 뒤 쓴 글에는, 짧은 일정이지만 한국인의 리얼한 단면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담담하게 그려냈다.

가족을 비롯하여 몇몇 지인들의 생일에 해당하는 책을 골라 보았다. 외국인인 내겐 거의 생소한 저자의 책들이다. 서구 작가의 번역서도 있고, 소설 외에 문화 현상에 대한 평론을 엮은 묵직한 책도 있다(최근 현암사에서 전집이 완역 출간된 나쓰메 소세키의 대표작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2월 9일’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이 날짜가 생일인 누군가에게 언젠가 주려고 이 책도 골랐다).

커버를 벗기니 본래의 책 표지가 있는데, 모두 다른 출판사의 책이다. 재작년에 선보이기 시작한 이 문고는 일본 유수의 출판사들이 참여하여 구성된 것으로, 서점 직원에 의하면 좀처럼 책을 읽지 않는 젊은이들 사이에도 관심을 끌며 꾸준히 판매되고 있다고 한다.

나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누군가와 생일이 같다는 것은 우연한 일이고, 설령 그가 이 문고판 표지의 부제목에 있는 것처럼 ‘저명인’이라 하더라도 굳이 의미부여를 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있다. 그런데도 묘하게 관심이 끌리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희미한 끈 같은 것이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이런 심리를 적절히 활용하여 기획되었음직한 ‘생일 문고’는 문고판 혹은 시리즈물의 이모저모를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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