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펜의 아시아(AD 610~1625) 천년여행 [202] / 사제 왕 요한 ②

"내 집안 어른들 중에 기독교 신자가 많았어요.
그래서 나도 절반쯤은 신자일세. 자신감을 가지게."
을지고는 야율 대석의 말, 나도 절반은 기독교 신자라는
말을 깊이 기억해두었다.


에밀 성이 전략 요충지로서 선택된 것은 아니었다. 지형의 구조상 적으로부터 자기 방어가 용이할 뿐 아니라 우호적 관계가 가능하리라고 믿는 천산 위구르 왕국의 빌게 칸과 연대하기가 좋다고 생각했던 단순한 판단이 실수였다. 그러나 위구르를 믿는다.

북방 초원의 출생자들로서의 동류다. 뿐만 아니라 위구르는 당나라 후기에 그들의 영양소를 먹고 살아왔으며 요나라 또한 당 왕조가 문을 닫은 후 당조 문물 상당수를 흡수한 종족이니까 서로에게서 동류 본색이 있었을까. 야율 대석은 천산 위구르 빌게 칸을 신뢰했다.

사신을 보냈다. 당신이 도와줘야 하겠다. 우리가 지금 카라한을 공격할 계획이다. 가능하다면 빌게 칸 그대가 우리를 도와 달라. 우리는 지금 당신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다.
이 같은 요구를 하고 곧바로 카라한의 진지를 공습했다. 카라한은 투르크계 유목민으로 이들은 위구르 왕국의 붕괴로 유목민들의 대규모 이동과정에서 시르다리아 남쪽 이란계 국가인 사만 왕조와의 대립과 갈등과정을 겪으며 이슬람 종교를 받아들여 강성한 국가체계를 갖춘 종족이다.

카라한 왕조는 이란계 사만 왕조를 계속해서 압박해 북방쪽에서부터 터전을 넓히면서 페르가나를 장악하고 마침내 종교성이 강한 불교지역인 부하라와 히바를 장악해 사만 왕조를 붕괴시켰다.
카라한 왕조가 이렇게 두각을 나타낸 배경에는 투르크계가 북방에서 당나라 세력에게 쫓기면서 중앙아시아 각 지역에서 토착세력화 된 이슬람 종교의 결집력과 사만 왕조의 이란계 이슬람이 카라한 왕조의 정신적 기반과 정치력으로 확대 발전되면서 강성한 세력이 되었다.

더구나 그들은 1070년대 유수프하스 하집이라는 불세출의 종교지도자가 등장하면서 왕조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중국의 공자와 같다고나 할까. 그가 남긴 잠언서 또는 시 문장이 21세기 현재까지 보존된 것만 해도 6천5백여 수가 넘는 서사시집으로 당시 투르크어로 편집되었고, 현재는 아랍어나 한문으로 보존되어있다. 서책명은 <쿠타드구 빌릭>이요 중국 표기로는 <福樂 智慧>이다. 책의 내용 개요는 당시 국왕·재상·현자·수도사로 지목된 4명의 상대와 대화를 나누는 덕목들이 시와 잠언 형식으로 집필되었다.

야율 대석도 카라한 왕조가 정신적인 자부심은 물론 정치 군사적인 힘이 만만치 않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 또한 거란인의 자부심이 크다. 천하의 대제국인 당나라를 승계한 요제국의 자부심 말이다.
천산 위구르가 야율의 요구를 흔쾌히 들어주었다. 그러나 길을 열어준 위구르의 길목에 카라한 왕조의 군대가 야율 대석의 공격군을 맞이하고 있었다. 복병이었다. 기겁한 야율의 군대가 혼비백산이다. 야율은 패퇴하는 부하들과 함께 에밀 성으로 후퇴했다. 아직은 우리 실력이 모자란다. 쉽게 생각하지 말자. 한 방 얻어터진 야율 대석은 부하들 앞에서 솔직하게 고백했다. 내가 서툴렀다. 그리고 너무 서둘렀다. 혹시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 망설이지 말고 말하라. 대 토론회다.

대다수의 부하들은 공격적인 자세는 계속 유지해야 한다. 카라한 왕조가 한때는 강성하다 했으나 지금은 석양이다. 우리는 떠오르는 태양이고 저들은 지는 해다. 한 번 복병을 만난 것으로 겁먹을 필요는 없다.
“아니다. 내가 생각할 때는 저들에게는 우리에게 없는 무엇인가 있다. 그것을 알아내야 한다. 그의 미간에 굵은 주름이 진다. 광대뼈가 얼굴 표정의 긴장 때문인지 반짝거린다. 양쪽 귀 밑을 두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짜증이 나려고 할 때 참는 그의 습관이었다.

“누구 할 말 없는가. 을지고! 을지고는 어디 있나?”
“저 여기 있나이다. 폐하!”
을지고가 폐하라는 호칭을 사용하자 일부 부하들 중에는 키득거리면서 웃음을 참고 있었다. 야율 대석이 말했다.

“을지고! 폐하? 좋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카라한에게도 쫓기는 중이다. 대세를 장악한 후에면 어떨까?”
“아닙니다. 폐하의 위세와 권위로 대세를 장악해야 합니다. 그리고 카라한 정복을 위한 준비에 필요한 것을 찾아냈습니다.”
“그래, 그게 뭔가?”
“종교의 힘입니다.”
“뭐, 종교의 힘…?”

을지고의 거침없는 답변에 야율 대석은 물론이고 그를 보좌하는 참모진도 어리둥절이었다. 종교의 힘이라니…. 야율은 한참 만에 빙긋이 웃으며 을지고를 가까이 불렀다.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맞다, 을지고의 판단이 맞다, 카라한 왕족은 이슬람 세력이 뼛속까지 자리 잡고 있다. 우리는 무엇으로 저들을 제압하고 대응하나. 야율은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을지고가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에게도 방법이 있습니다. 황제시여!”
“방법이 있다고? 말해보라. 무슨 방법이냐?”
“네, 폐하. 사마르칸트를 중심하여 이식쿨, 그리고 타클라마칸 사막지대 수십 개의 성벽국가들마다 대세를 이루고 있는 종교는 기독교의 네스토리우스파 신도들로 용감하고 또 매우 평화적입니다.”
“그래. 그게 정말이냐?”
“”뿐만 아니라 하서 위구르나 천산 위구르 왕국에도 마니교와 친근한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도들이 큰 떼를 이루고 있나이다.“

황제는 을지고의 정보력에 놀라고 기독교라는 종교 세력에 큰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지금 야율의 힘으로는 그들을 불러들일 수 없지 않은가. 난감했다.
“을지고! 내가 그대에게 기독교 세력을 불러오고 그들을 군조직으로 훈련시켜서 전투력을 만드는 책임을 명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사항은 말하라.”

“폐하. 소인이 목숨 갈기갈기 찢어져서 이 사막의 모래알이 된다 해도 폐하의 명령을 따르겠나이다. 그리고 아뢰올 말씀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이는 군사비밀인지라 별도로 보고 드리게 해 주옵소서.”
을지고의 당돌한 제안에 야율 대석은 물론 참모들이 놀란다. 어떤 이들은 허공을 바라보며 가소롭다는 식으로 헛웃음을 날리기도 했다.

야율 대석이 을지고를 그의 군막으로 인도해 갔다.
“말하라.”
야율 대석은 을지고에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대장의 군막에 들어왔다는 긴장감을 풀어주는 배려의 친절이었다. 을지고는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시선을 내리깔고 있었다. 그러나 마냥 시간을 끌 수는 없었다.
“폐하! 서방군대, 로마 십자군의 군진을 살피시옵소서. 적을 알면 그만큼 우리에게 유리합니다. 십자군이 우리의 적은 아니라 하나 적의 적은 우군일 수 있으니 십자군의 병법을 익혀두면 저희가 언젠가는 우리의 강역이 되어야 할 시르다리아 인근 아랄 해나 카스피 해까지도 정복의 목표를 삼을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카라한이 아니라 카라한의 모체가 된 셀주크 투르크를 제압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 요 제국을 파고드는 여진족들, 그들 뒤에서 미래의 호랑이로 커 카고 있는 몽골족의 생존방식과 전투형태도 장기적으로 폐하의 군략 속에 있어야 합니다.”

“허허, 자네야말로 중국의 제갈 공명 뺨칠 인물일세. 그래, 그대는 내 곁에서 계속해서 짐의 도움이 되어 주시게.”
“네, 폐하. 소신이 가까운 참모들까지 배제시키면서까지 폐하와 독대를 원하는 것은 정보의 기밀 때문이 아니라 모든 전략이 폐하에게서 나와야만 하기에 폐하께서는 소인이 말씀드리는 계략을 이미 알고 계실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까지 소인이 무엄하고 경솔한 행동을 해서 죽을 죄를 지었나이다. 소인을 벌하여 주소서.”

“아니야. 아닐세, 자네가 짐에게 이토록 깊은 배려까지 하는 모습을 보니 내 마음이 든든하구먼. 하늘의 신께서 내게 자네를 보내주심은 우리 제국의 홍복이야. 자, 고맙네. 오늘은 저녁 만찬에 자네를 초대하겠네.”
“아니옵니다. 그리 마옵소서. 소인은 폐하의 명령을 받은 대로 기독교 부대를 편성하고 군사를 모집하는 일에 전념케 하옵소서.”
“아니야. 그래도 가까운 참모들과 마음을 열고 대화하다보면 도움이 많이 있을 것이야.”
“네, 폐하! 감읍, 또 감읍이옵니다.”
“그래, 그래. 그리고 기독교 군사를 모집하는 일 열심히 하게. 내가 기독교 신자는 아니지만 내 집안 어른들 중에 기독교 신자가 많았어요. 그래서 나도 절반쯤은 신자일세. 자신감을 가지게.”
을지고는 야율 대석의 말, 나도 절반은 기독교 신자라는 말을 깊이 기억해두었다. 작가 조효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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