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조년
한남대 명예교수

좀 큼직한 교회의 부목사로 청소년사역을 담당하던 젊은 목사가 여러 해 전에 어려운 시간을 내어 나에게 왔다. 대학시절에 나에게 강의를 듣고 많이 좋아하던 사람이다. 아주 깊은 고민을 나에게 털어놓았다. 담임목사와 갈등관계가 설정되면서 자기가 하는 청소년사역에도 많은 영향(지장)을 받게 되고, 교인들간에도 어떤 갈등의 조짐이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 어떤 다툼이나 원망 또는 자기 옳음을 주장하는 것 없이 그냥 그 교회를 떠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담임목사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좋겠고 그를 좋아하고 따르는 어떤 교인과도 상의하지 말고 혼자서 스스로 결심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설혹 그 가까운 도시에 새롭게 교회를 개척하여 목회를 하더라도 결코 그 교회의 교인들을 데려가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그는 정말 말없이 그 교회를 떠났고, 그 무렵 서울의 어느 교회로 옮겼다. 그 뒤 아무런 소식이 없어서 매우 궁금했다. 잘 하고 있는지?!

어제 그와 전화통화가 됐다. 그는 내가 먼저 전화한 것에 아주 놀라고 미안해 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됐다. 어린이들까지 합하여 교인이 300명 정도 된다고 했다.
‘아이구, 큰 교회구나! 더 늘리지 마. 더 늘면 분가하는 것이 좋아.’ ‘유혹이 심하네요. 더 큰 곳으로 옮길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것이 목회의 본질인가 생각도 들고. 막 더 늘리고 조직하는 것이 잘하는 것으로 알고 살아왔거든요. 나이가 좀 드니 옛날 선생님이 하시던 말씀도 새로 생각나고, 성경을 다시 보게 되네요. 성경을 보니까 지금 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아주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달려왔던 길이 의문스럽게 보이고요.’

‘그래? 아주 잘 됐네. 지금 교회의 행태가 의심스럽게 보이지 않으면 바른 목회를 하는 것 아니겠지. 고민이 깊겠네. 책 한 권 소개할까? 이 책을 일반기독교인들이 좋아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 그래도 고민하는 당신이 읽을 때가 된 것 같아. 똘스또이의 책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인데, 그 책은 당시 러시아에서 금서였어. 러시아정교회에 대한 비판과 똘스또이 자신의 예수이해와 기독교이해를 쓴 것인데, 지금 읽어도 유효하다고 봐. 그러나 맘을 열고 읽으면 좋겠어. 그것을 그대로 따를 필요는 없겠지만 깊게 생각하게 하는 글이 되리라고 봐.’

이런 대화를 하는 동안 똘스또이가 자기 책에서 러시아 정교회를 비판하면서 내세운 한 대목이 생각에 떠올랐다. ‘산상수훈이냐 사도신경이냐’ 하는 질문이다. 산상수훈은 예수요 그리스도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라면, 사도신경은 조직된 교회요 체제를 잡은 신학이면서 빈틈없는 성례전과 세상권력을 상징하는 것으로 나는 이해했다. 이 말은 지금 한국의 교회에도 직접 적용하여 생각해 볼 문제라고 본다. 다시 말하면 예수에 충실하냐 교회에 충실하냐의 문제로 집약된단 말이다. 상당히 많은 분들이, 지금의 기독교는 예수를 배신하였다고 지적하는 판에.

기독교 신교에서는 루터가 종교를 개혁한 지 500년이 되는 것을 기념하여 여기저기에서 종교개혁 기념 논의가 참으로 많다. 당시 교회가 부당하게 서 있는 것에 대한 비판과 성찰로 시작된 그 일이 지금 우리 사회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가? 지금 가톨릭으로 불리는 교회에 대한 저항으로 시작된 기독교 신교의 정당함을 주장하는 입장만이 강한가? 그 뒤 가톨릭은 굉장히 많은 변신을 거듭하였다. 기독교 신교 역시 분파를 거듭하면서 변하여 왔다. 그런데도 여전히 남는 문제는 예수냐 교회냐 하는 문제다.

마치 자신은 개혁교회라는 종단에 속하기 때문에 개혁의 문턱을 넘었다고 생각하는 경향은 없는가? 개혁은 끊임없는 자기형성의 과정이요, 자기갱신의 삶이며, 진리에 가까이 가는 발걸음이지 어떤 시점이나 기점을 중심으로 완성된 것을 기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개혁은 남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자기갱신으로 나타나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교회는 루터의 종교개혁을 기념할 것이 아니라, 자기의 신앙갱신, 진리찾음에 집중해야 할 때다.

교회라는 조직논리에 따르던 관행을 떠나서 치열하게 복음과 자신의 관계를 새롭게 설정해 보는 일이다. 산상수훈이라는 진리에 충실했는가? 사도신경이라는 조직에 충실했는가? 내가 보기에 한국의 교회들은 진정으로 진리에 충실하는 길이 어디에 있는가를 따지고 살펴야 할 때라고 본다. 이런 과정에서 젊은 목회자들이나 교인들 중에서 관습과 전통과 조직을 넘어 진리에 접근하려는 운동이 일어나는 것은 매우 다행한 일이다. 그 운동이 생명질서에 따라서 방해 없이 산상수훈의 길을 걸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교회도, 사회도 모두 산상수훈의 세상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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