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년에 한 권 정도씩 소설을 번역해왔다. 소설이 잘 나오지 않는 기독교 출판계에서 일하는 번역가로서는 쉽지 않은 특권을 허락해준 출판사에 감사할 따름이다. 가장 최근에 번역한 소설이 한국계 미국인 작가 토스카 리의 <솔로몬과 스바의 전설>(홍성사 역간)이었다. 이 책은 성경에 나오는 신비한 스바의 여왕을 화자로 삼아 정치적 음모와 순례, 사랑을 그려내고, 솔로몬의 신앙과 삶, 무엇보다 그의 지혜를 반성적으로 바라볼 기회를 제공한다.

옛날부터 솔로몬은 내게 부러움과 의문의 대상이었다. 아내가 많은 것이 부럽지는 않았고 재산이 그렇게까지 많기를 바란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지혜만큼은 부러워했다. 그와 동시에 그를 생각하면 떠나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하나님의 지혜를 받았다는 솔로몬이 속절없이 무너져버린 것이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솔로몬과 스바의 전설>은 나의 해묵은 의문을 어느 정도 해소하고 솔로몬에 대한 부러움을 상당히 덜어내는 기회를 제공했다.

먼저 지혜롭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내가 지혜라고 할 때 먼저 떠올린 이미지는 바둑의 고수였다. 바둑의 고수는 수많은 수를 내다보고 ‘판을 읽을’ 줄 알기 때문에 주어진 상황에서 가장 좋은 수를 알아보고 적절한 수를 둘 줄 안다. 그렇다면 인생의 바둑판을 그렇게 넓게 보고 멀리까지 내다볼 줄 아는 솔로몬에게는 수가 얕은 사람들이 모르는 유혹과 고민이 따라왔을 거라 짐작할 수 있다.

솔로몬에게나 나에게나 주를 의지하고 순종하고 살아가라는 명령은 동일하다. 겨우 눈앞의 일밖에 보지 못하는 나만 해도 나이가 들고 머리가 굵어질수록 주의 말씀대로 하면 어떻게 될지 결과가 ‘뻔히 보여서’ 그러면 안 될 것 같고, 다르게 하면 잘 될 것 같은 ‘다른 수들’이 보인다. 그렇다면 나보다 훨씬 수가 높았을 솔로몬에게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것은 훨씬 더 어려운 일이었을 수도 있겠다. 때로는 자신이 가진 대단한 수를 포기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믿음으로 순종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내 생각에 집사람은 그게 무슨 지혜냐고 반문했다. 보통 사람들은 머리로는 알아도 실천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리석다고 하는 것 아니냐고. 알아도 실행하지 못하면 그게 무슨 지혜로운 사람이냐, 헛똑똑이 아니냐는 것이다. 지혜는 가장 빠른 길을 알려주는 내비게이션 같은 기능만이 아니라, 그 길에 닥치는 온갖 어려움과 난관을 딛고 목적지에 도달하게 만드는 그 무엇이 아니냐는 아내의 지적은 일리가 있었다. 그러니까 지혜의 관건은 ‘자신을 지키는 것, 마음을 지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를 반면교사로 삼고자 한번 따져보았다. 지혜로운 솔로몬은 어쩌다 자신을 지키지 못했을까? 1. 처음부터 그가 하나님을 배반하고 돌아서지는 않았을 것이다. 작은 선택, 작은 합리화가 하나둘 모여서 어느 순간 그의 인생길을 ‘배교’로 만들었을 것이다. 매일의 작은 선택이 모여 조금씩 그를 더 어리석게 만들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 추측일 것이다.

2. 자신만은 다르다고 생각한 것이 어느 순간 그를 옴짝달싹 못할 올가미에 밀어 넣었을 것 이다. 소설 속에서 솔로몬은 계명의 취지와 정신을 말하면서 결과적으로는 계명을 준수하지 않는 자신의 선택을 합리화한다. 하지만 그도 사람에 불과한 존재. 자신이 선택한 길의 끝에서 선택의 결과가 빚어낸 자신의 실체와 마주하게 된다. 솔로몬은 자신도 계명 위에 있는 자가 아님을, 입법자가 아니라 법을 지켜야 할 자임을 결과로 확인해야 했으리라.

3. 솔로몬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누누이 말했던 것에 주목해야 할 것 같다. 소설 속 솔로몬은 자신이 가진 것을 지키고자 온갖 꾀를 내었고 그로 인해 헤어날 수 없는 덫에 걸려 허덕인다. 사람은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에 좌우되기 마련인데, 아내들이 그를 결국 우상숭배로 이끌었다는 성경의 기록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참으로 두려워할 분을 두려워하고 그 외의 것에 담대할 수 있다면 많은 것이 달라지리라. 조금씩이나마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는 하루, 한 주,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해본다.

홍종락 /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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