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펜의 아시아(AD 610~1625) 천년여행 [202] / 사제 왕 요한 3

을지고는 양쪽 어깨에 힘이 실리는 느낌이었다. 야율 대석의 위세가 상승하면서 자신의 위치도 튼튼해질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을지고가 본 야율 대석의 인품이나 대범한 모습은 근래에 보기 드문 지도자의 자질이 분명하다고 느꼈다. 그는 흩어진 거란제국의 기독교 세력을 규합해 야율 대석의 제국을 기독교의 나라로 만드는 일에 자기가 먼저 희생해야 된다는 자신감으로까지 포부가 발전했다. 새로운 거란제국은 기독교의 나라로 만든다는 을지고의 자신감은 그의 아내인 나비소가 힘을 보태면서 날개를 달았다.

나비소는 몽골 여인으로 을지고의 신앙을 따라 기독교인이 되었다. 을지고는 당나라에 포로로 끌려온 고구려 유민 출신이다. 나비소는 여성이면서도 활달했다. 몽골인들은 여성들도 전투현장에 나가기도 하고 남자들 틈바구니에서 사회활동도 하는 등 경쟁력 있는 사람이 많다.

을지고는 아내 나비소의 정보까지 보태서 우선 100여 명의 기독교 신앙 가진 장부들을 소집했다. 그들은 투루판(코초, 고창) 지역에서 당나라 초기 전설적인 기독교(경교) 지도자인 알로펜의 신앙을 전수받은 가문 출신이었다. 그들 투루판 지역은 물론 쿠처국이나 사마르칸트 지역과 연계된 오랜 신앙의 배경을 가졌다.

“동지들, 우리들의 지도자요 장차 거란제국의 부흥왕조를 이끄실 황제께서 내게 기독교 부대 창설을 전적으로 위임하셨소. 우리는 먼저 제국이 안정되도록 힘을 써야겠어요. 그 어른은 우리 제국을 최강의 나라로 만들 지도력과 덕망을 가지셨소이다. 아마, 여러분도 충분히 동감하실 줄 압니다. 그러나 우리는 조상들이 물려주신 신앙을 가지고 새롭게 일어나는 거란제국을 기독교의 나라로 만들어야 할 책무가 있습니다. 이에 동의하시죠?”

“옳소이다. 두말하면 잔소리죠.”
모두들 찬성이었다.

“그럼, 여러분은 한 사람이 최소한 열 명씩 동지를 확보해 주시오. 그런 다음 우리들은 전투부대의 지원팀이 되는 것입니다.”

“질문 있습니다. 나는 이식쿨 출신 톨소키입니다. 을지고 어른의 말씀은 알아들었는데 각 부대 지원팀은 무엇을 하는 것입니까?”

“알겠소. 내가 말하죠. 지금 우리들의 갈 길을 막고 있는 카라한 세력을 격파해야 합니다. 그들은 조직기반이 탄탄한 국가인데다가 이슬람 신앙으로 정신무장 되어 있어요. 우리는 이슬람 신앙을 잘 알잖아요. 이슬람은 우리 기독교의 동생 집안이기도 하니 형님 된 우리가 그들을 타이르고, 또 그들을 앞서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이 같은 정신을 우리 부대원들 가슴에 먼저 심어야 합니다. 다시 말할게요. 카라한 군대를 물리치기 위해 우리 군대를 기독교 정신으로 강화시켜야 합니다. 강한 군대는 먼저 그들 가슴속에 적군을 압도할 힘을 가져야 합니다. 그 힘은 우리들의 신앙에서 나오는데, 바로 우리가 가진 신앙의 힘은 우리들 군대를 똘똘 뭉치게 합니다. 그때는 우리가 무적의 군대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거란국 군대가 2만 명 정도인데 적군에 비해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 부족한 부분을 신앙의 힘으로 보충하자는 것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거란제국, 야율 대석 황제의 제국을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로 만들기 위한 공로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을지고의 웅변에 마치 최면에 걸린 사람들처럼 열광했다. 그러나 이식쿨의 청년 톨소키가 다시 의문을 제기했다.

“을지고 어르신, 아무래도 저는 무리한 생각이라고 봅니다. 더구나 이슬람과 우리 기독교는 우리가 사는 동방지역에서만 서로 간에 평화롭게 지내는 것이지 로마제국 쪽에서는 지금 이 시간에도 십자군 전쟁을 기독교가 일으켜서 전쟁을 치르고 있답니다. 이러다가 우리가 동방아시아 땅에서 십자군 전쟁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톨소키 형제, 잘 지적했어요. 누구나 그 같은 오해를 할 수 있어요. 그러나 나의 취지는 다릅니다. 우리가 기독교 부대를 창설한다 해도 우리는 후생관리나 우리 군사들의 사기를 복돋는 일을 하자는 것이지 적군과 총칼을 직접 겨누자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가 전쟁하는 것도 남의 나라를 지배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거란제국의 역사를 보세요. 우리는 당나라가 스스로 무너진 그들의 영토에서 일어나 사실상 당나라를 승계한 제국이지요. 그런데 여진족이 우리가 잠시 방심하는 사이에 우리 거란제국을 일부 점유 했어요. 우리는 우리의 본 제국 야율 아보기 태조의 8대손 야율 대석 황제를 모시고 중앙아시아의 한복판에 제국을 창건하고 있어요. 지금 우리가 목표하는 것은 유럽과 아시아의 중간지점에 수도를 정하고 유라시아 제국을 건국해 세계가 평화롭게 사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외다. 아시아와 유럽문명이 만나고, 문물을 비교 발전시키는 등 앞으로 우리는 기독교 중심으로 세계를 마치 하나의 제국처럼 이끌어갈 포부를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우리가 아직은 어린아이처럼 정신적으로 어린 이슬람과 싸우다니요. 그런 수준의 기독교가 아닙니다. 그리고 지난 5백여 년 동안 이슬람이 페르시아나 중앙아시아 일부에서 분쟁도 일으키고 때로는 전쟁을 주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이슬람 형제들에게 아무런 약점이 없어요. 이웃 또는 형제 종교로 대접하고 뒤늦게 세계 무대에 뛰어든 저들을 그동안도 많이 도왔습니다. 결코 톨소키 형제가 생각하는 우려는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을지고의 일장 연설을 듣고 있던 부대원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박수를 치기도 하면서 을지고의 자신감 넘치는 웅변에 만족하는 듯했다.

톨소키가 자리에서 일어나 을지고 앞으로 나오더니 머리 숙여 인사한다. 신뢰한다는 뜻과 송구했노라는 의미를 담았을 거라고 생각한 을지고 또한 미소로 화답하고 그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여러분, 부대를 이탈해도 좋으니 가까운 도시 또는 멀어도 상관이 없어요. 쿠처 왕국이나 투루판 허탄, 카쉬가르가 조금은 멀지만 그곳들과 연락하면 우리 기독교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성들도 우리 부대에 참여하고자 하면 얼마든지 환영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활동하실 때 많은 여성들이 전면에 나서서 주 예수의 메시아 운동에 남성들보다 더 많은 공을 세웠어요. 로마제국의 틀에 묶이면서 서방교회는 여성들을 하인 취급했지만 우리는 여성들에게도 남성들과 동등하게 대접합니다. 여성들도 건강한 사람들은 무조건 환영합니다. 지금 여기 계신 분들 중 절반 정도는 장기 출장을 허락할 터이니 우리들 평화의 부대에 참여할 사람을 초청해 오면 좋겠어요. 그러나 억지로 가거나 무리하게 움직이지는 마시고, 사람을 불러낼 자신이 없으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먼저 하면 됩니다.”

을지고는 어떤 사람일까? 고구려의 유민 중 하나라는 정도만 알고 있으나 그는 그의 조상 중에 쿠처에 주둔지를 둔 당나라 현종 치세 안서 도호부 중견 장수의 15대손으로 고구려 왕족 출신이다. 고선지 장군과 같은 집안 사람이다. 그의 조상들은 당시 당나라 기독교 즉 “경교”로 호칭하는 기독교 집안 사람으로 대대로 신앙이 깊은 가문의 명예를 지켜왔다.

저녁에 집에 돌아온 을지고 아내 나비소가 단정한 고구려 여인의 복색을 하고 남편을 맞이하고 있음을 보고 잠시 긴장했다. 을지고는 아내를 뚫어지라고 살피다가 위아래 복색까지 평소 그녀 같지 않은 행동거지에 답을 찾지 못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리기까지 했다.

“여보 왜 그래요. 나 나비소, 당신의 사랑인 당신의 반쪽이에요. 왜 나를 처음 보는 사람처럼 낯설어하세요?”
“…….”

을지고는 말없이 아내의 등을 감싸 안으며 거실을 한 바퀴 돌았다. 그는 아내가 평소 모습과 다른 분위기를 원하는 거라고만 생각했다. 나비소가 을지고에게 식탁 앞자리를 권했다.
“여보, 당신이 구르칸의 신뢰를 얻은 것을 기념해 내가 앞으로는 내조를 잘 해야겠다는 뜻으로 이 밤에 내 낭군에게 정중하게 약주 한잔 올리고자 몸단장을 한 거예요.”

“자, 이런 내 참….”
을지고는 긴장을 풀고 아내의 두 볼을 감싸 안으며 입맞춤을 했다. 나비소는 더 적극적으로 을지고의 가슴으로 파고든다. 을지고는 아내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당신이 할 일은 이제부텁니다. 긴장을 풀지 마시오.”
“그 무슨 말씀…?”
“우리 기독교 부대 안에 여성부대가 조직될 겁니다. 그때 당신은 몽골인의 기개를 마음껏 펼치면서 새로운 제국을 위해 공을 많이 쌓아야 하오. 우리는 기독교 부대가 하늘나라 평화 군으로 발전하도록 노력을 많이 해야 합니다.”
“와!! 그렇게까지…?”

나비소는 펄쩍 뛰면서 기뻐했다. 그녀는 을지고를 두 팔로 껴안고 번쩍 들었다 놓으며 자신감을 표현했다.
“그렇게도 좋은가요?”
“네, 여보. 나는 당신의 여인이요 동반자인 것이 너무 너무 좋다오.”

“당신이 좋으니 나도 좋소. 나 말이오. 중앙아시아와 당나라에 예수의 복음을 가지고 와서 크게 일으키신 500여 년 전 알로펜 주교를 존경해요. 가끔씩 그 어른이 내게 중앙아시아는 예수의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하셨어요. 유럽의 기독교나 중국의 종교는 모두 반쪽짜리라 하시면서 앞으로 이 땅, 지금 나와 당신이 사는 이 땅에 동과 서의 균형을 잡아줄 통합된 평화, 승자의 평화가 아닌 참된 나라의 모형을 만든다고 하셨어요. 나는 젊은 날부터 야율 대석을 미래의 큰 인물로 점찍었지요. 그래서 그분의 밑에서 벌써 20여 년 동안 종살이하듯이 섬기면서 바로 오늘을 기다렸어요. 지금 당신이 말하는 야율 구르칸 나의 황제는 나를 상당히 신뢰하고 있어요.”

“여보, 그러나 방심하면 안 됩니다.”
“그럼, 나도 알아요. 방심뿐 아니라 만심해서도 안 되죠.”

어느새 부부는 포도주잔을 기울이며 포도주 빛깔처럼 붉어진 서로의 얼굴을 응시한다. 두 사람의 눈빛이 고비사막 높은 하늘 밤 별빛처럼 반짝인다.

작가 조효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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