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21세기 이렇게 대비한다 <40-3>

종교개혁 500주년을 마르틴 루터를 칭송하는 것으로, 그의 “이신칭의”에 감읍하는 것으로 끝낼 수 없다. 루터는 개혁운동의 출발점부터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프로테스탄트 교회(교단)를 가톨릭과 별개로 만들고자 한 일이 없었다. 사는 날 동안 교회가 분열과 반목, 서로 원수시 하는 현상을 많이 괴로워했었다.

왜냐하면 그는 가톨릭 내부의 잘못된 교리적 이해나 교회의 관습을 바로잡자는 뜻 외에는 다른 목표가 없었다. 이는 그가 제시했던 95개 조항을 눈여겨보면 알 수 있다.

우리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종교개혁 시작했던 날”의 500주년이라 표현해야 한다. 500년 전 1517년 10월 31일을 기념일로 하는 종교개혁은 개혁운동 진행과정의 어느 한 날의 출발점일 뿐이지 종교개혁이 “완성된 날”도 아니고 “성공한 날”도 아니었다.

16세기 개혁의 출발점은 하나님의 은혜로 몇 가지 항목들을 바로잡기는 했다. 그 중에서 뚜렷한 결과물은 “이신칭의”의 교리적인 명쾌성이었다. 그러나 성찬론, 세례론 등에서 각 지역 개혁자들 간에 큰 갈등은 돌이킬 수 없는 프로테스탄드 역사에 과오를 남겼으며, 특히 만인 제사 부분은 어설픈 신앙 제시만 했다가 수십만 명의 농노들을 희생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특히 루터는 꾸란을 읽어보지 못했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이미 십자군 전쟁 후 이슬람에게 유럽이 잠식되어가는 그때, 그들 16세기 개혁자들이 이슬람 확산과 그 피해에 대한 대안과 대책을 세우지 못했음을 실토한 셈이다.

하나 더, 중요한 것은 가톨릭은 루터의 개혁운동을 어느 날부터 사실상 용인했는데 우리 기독교(Protestant, Reformed church)는 가톨릭을 원수(사탄집단)시하는 등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종교개혁운동은 16세기 운동가들 때부터 500년 세월이 지났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이제 겨우 걸음마 단계에 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21세기 현재 기독교가 지금처럼 기독교 자기개혁을 방치해 두고, 16세기 개혁을 찬미하고 예찬하면서 마치 선대 조상들의 제삿날 챙기듯이 500주년, 500주년을 읊조리는 것으로 세월을 허송하려 든다면 하나님은 인류구원사의 촛대를 기독교의 손에서 빼앗아서 다른 종교에 주시거나 또는 새로운 종교를 일으키실지 모른다.

기독교는 더 이상 방심하면 안 된다. 당장 오늘이 남북 대치상황, 태극기와 촛불의 대치 상황은 물론 우리 국민의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있는데도 기독교는 손발을 묶고 몽유병 환자들처럼 헛발질을 하고만 있다.

두고 보라. 천당 티켓이나 파는 식으로 기독교 현실을 안일하게 방치하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절망이 도적처럼 너와 나를 삼키게 될 날이 올 것이다.

無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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