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펜의 아시아(AD 610~1625) 천년여행 [ 202 ] 사제 왕 요한 ⑤

 

   
▲ 중국 투르판 사막의 흙집.

 

“그렇긴 하죠. 그러나 우리가 살아남고 또 우리의
기독교가 세계의 중심이 되어 평화로운 나라들을 만들려면
서로 마음 여는 게 나쁠 것은 없을 겁니다.”


야율 대석은 셀주크 투르크와 이웃하며 지내고 싶었다. 그는 조상 할아버지 야율 아보기가 건국한 요나라를 금나라에게 빼앗긴 후 서쪽으로 밀려와서 나라를 세웠으나 더는 다른 부족과 전쟁하고 싶지 않았다. 얼마든지 종족들 간에 우애를 나눌 수 있다고 생각했다.

1137년 야율 대석은 서 투르키스탄과 접근했다. 이는 그가 상대세력을 파괴하려한 것이 아니라 상대인 서 투르키스탄 사람들이 그의 제국인 카라키타이(서요 또는 흑거란)에 가까이 하려 한다고 믿었다.

서 투르키스탄은 야율을 피해 물러선 카라한 왕조와 동맹관계의 나라였으나 야율 대석의 카라키타이에 우호적 접근을 하려 들었다. 하지만 야율 대석이 쉽게 마음을 열기 어려운 것이 그들 약체 국가들을 넘보는 셀주크 투르크가 이미 낌새를 알아차리고 무력시위를 자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력시위는 셀주크 투르크의 군주 산자르가 직접 지휘하는 수만 명에 이르는 기마군이다. 그는 국경 근처에서 위협적으로 훈련하는 식이었다.

어쩌다가 하는 훈련이 아니라 한 달에 한 번씩 산자르의 강력한 기마군은 야율 대석에게 겁을 주고 있었다. 그들의 군마가 휘젓고 달리는 벌판에서 검붉은 모래 바람이 훈련기간 동안 야율 대석의 발라사군의 하늘을 뒤덮곤 했다. 그들 셀주크는 신흥 세력인 야율 대석의 카라키타이를 견제하려는 심리전이었다.

을지고가 야율 대석의 군막으로 찾아왔다. 그는 지난 며칠 동안 야율 대석이 고심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을지고의 판단으로는 서쪽으로 나갈 길을 셀주크가 가로막고 있고, 북방초원의 배후에 있는 케레이트 부족을 거북스러워한다고 판단했다. 을지고도 셀주크 투르크는 자웅을 겨룰 만 하지만 케레이트의 몽골족은 강하고 폭력적인 것을 알고 있었다. 을지고는 칸(황제)을 뵙고자 했다. 황제 야율 대석의 총사령관실로 들어간 을지고는 출입문 입구에서 엎드렸다.

“폐하, 을지고가 알현코자 여기 있나이다. 무례를 용서하소서.”
황제 야율 대석은 자리에서 일어나 을지고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야율은 을지고를 만나면 언제나 기분이 좋았다. 아직도 망명국 신세고 주변에 도사리고 있는 강한 나라들 때문에 몸조심하는 그에게 최상의 존칭을 사용할 뿐 아니라 늘 새롭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놓는 을지고가 좋았다.

“그래 오늘은 짐에게 무슨 좋은 소식을 가져왔는가?”
야율은 환한 미소로 먼저 입을 열었다. 그는 을지고의 말에 기대를 걸었다.

“폐하, 셀주크 투르크와 한 번 붙어서 자웅을 겨뤄야 하나이다. 현재 우리 군사가 저들의 절반 정도이기는 하지만 투르크의 산자르가 비록 용맹한 장수요 지도자라고 해도 폐하를 감히 당해낼 만한 인물은 아닙니다.”

“그럴까? 나도 을지고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는 있지. 그러나 아직은 때가 아닌 듯해요.”

“네 맞습니다. 폐하의 전세판단이 옳습니다. 그러나 셀주크의 산자르에게는 허점이 많습니다. 저들은 중앙아시아 일대에서는 자기를 당할 군사를 가진 나라가 없다고 큰소리친답니다.”

“그깟 투르크 군대 따위는 걱정하지 않아요. 우리의 배후에 진짜 강자가 있지. 자네도 알고 있겠으나 케레이트 부족은 용맹하고 큰 나라이니 그들이 마음에 걸린다네.”

“폐하, 말씀하신 내용이 맞습니다. 그들 케레이트 족은 강군이고 또 성격이 포악한 것으로 소문이 났습니다. 그러나 저 을지고는 케레이트와 동맹을 맺을 자신이 있습니다. 폐하께서 그 부분을 제게 맡기시면 저의 모든 수완을 동원해 우리가 투르크의 산자르와 전쟁한다 해도 배후를 걱정하지 않도록 할 자신이 있습니다.”

“그래요. 어떻게 그토록 자신할 수 있는가? 그걸 내게 말해 줄 수 있겠지?”

“네, 그럼요. 지금 말씀드리겠나이다. 케레이트 부족은 전체 인구가 기독교인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우리 카라 키타이가 기독교를 지향하고 기독교부대를 우대한다는 것을 그들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래요? 어떻게…?”

“그들 케레이트는 강하고 독선적이기는 해도 몽골 지대의 최강자입니다. 그들은 또 기독교 세계제국을 목표하고 있으므로 기독교 신앙을 존중하는 폐하의 나라를 해코지하지 않습니다. 지금 폐하의 군대 안에는 케레이트 부족 출신의 기독교 군사들이 많이 있나이다. 그리고 저들은 몽골계로서 무당(Shaman, Tengri) 신앙과 기독교 신앙의 혼합 종교성을 가졌으나 저들을 기독교로 만들어 준 기독교는 메르브에 총본부를 둔 네스토리안 파 기독교, 즉 우리 부대원들의 신앙과 동일한 종파의 큰 종족입니다. 먼 훗날에는 저들과 우리가 이웃 이상의 형제애를 나누게 될 것입니다.”

“그래요. 거기까지는 짐이 모르는 부분일세. 그러나 을지고의 말을 들으니 우리가 무엇을 먼저 해내야 할지 알겠구먼.”

“그렇습니다. 산자르의 셀주크 군을 격파하고 우리의 힘을 온 세상에 널리 알리는 일입니다.”

을지고는 케레이트 부족에 대해 상세히 알고 있었다. 을지고가 아는 바로는 케레이트 부족이 고비 사막 남쪽 지역을 다스리고 있을 때였다. 부족장(칸)이 사냥길에 나섰다가 눈보라를 만나 사경을 헤맬 때 성 사르기스(St. Sargis)가 나타나서 세례 받겠다고 하면 살려주마고 했다. 그는 살려만 주시면 가르침을 받겠나이다 하였고 그는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살아난 칸은 자기 군막으로 돌아와 자기 부대 안에 있는 네스토리우스 파 사제를 불렀다.

“사제여! 나와 내 부족 모두가 당신의 기독교를 받아들이기로 했소. 내 생각이 혹시 변할지 모르니 사제가 빨리 조치를 취했으면 하오.”

사제는 발빠른 상인들과 젊은 사제를 메르브의 대주교관구로 보냈다. 대주교 오디쇼에게 케레이트 부족에게 세례를 주도록 해달라고 했다. 메르브 사제단은 즉시 남부 고비 사막으로 달려왔다. 칸이 먼저 세례 받고 곧 이어서 그의 백성들 20만 명이 동시에 세례 받았다는 역사 기록이 있다. 그 해가 AD 1007년이었다.

칸이 세례 받은 때로부터 세월이 흘러 케레이트 족은 몽골 초원의 수많은 부족들 중에 최고 최강 부족으로 강력한 통치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때 징기스칸 부족은 케레이트와는 비교도 되지 못할 소수 종족이었다.

을지고는 케레이트 부족이면서 자기 휘하에 있고, 야율 대석의 신하가 된 투이산과 이식쿨 출신 톨소키를 자기 군막으로 불렀다. 케레이트 국에 자기와 같이 가기에 두 사람 중 누가 더 적합하겠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자기들 둘 다 을지고 장군을 모시고 울란바토르에 다녀오고 싶다고 했다.

을지고는 두 사람 다 함께 가기로 결심을 했다. 그들을 일단 돌려보내고 아내인 나비소와 저녁시간 늦게까지 지혜를 모았다.

“여보, 케레이트 성격이 거칠답니다. 조심해야 해요. 또 그들이 우리 요나라를 도울 마음이 있을까에 대한 경우도 생각해 봐야 해요.”

“그렇긴 하죠. 그러나 우리가 살아남고 또 우리의 기독교가 세계의 중심이 되어 평화로운 나라들을 만들려면 서로 마음 여는 게 나쁠 것은 없을 겁니다.”

“그래요. 당신은 당신의 나라에는 우리 가정이 별도로 없으니까요.”

“여보, 그 무슨 소심한 말을 다 합니까. 우리는 케레이트 족과 좋은 관계를 위해서 서둘러야 합니다. 그들이 우리 요나라를 인정하고 우호적인 자세로 협조해야 합니다. 그들은 북방 초원 무대의 최강자이고, 또 우리와 똑같은 기독교 신자들로 그들은 우리보다 한 발 먼저 기독교 제국을 사실상 이루었어요. 우리는 형제 국입니다.”

“아이고, 이 이는 늘 태평이네.”

이튿날 을지고는 케레이트 부족은 찾아가서 우방국으로 함께 살아가자고 호소하기로 했다. 야율 황제는 쾌히 승낙하고 수행원을 다섯 명이나 더 붙여 주었다.

야율 대석은 셀주크 투르크와 일전을 겨룰 날이 멀지 않았다는 조급한 느낌이 있었다. 우선 투르크에 정탐꾼을 보냈다.

부국강병이다. 야율 대석은 그의 제국이 강한 나라, 그가 자신의 호칭으로 내세운 사해(四海)의 대왕에 걸맞은 군주가 되고, 부강한 살림을 종족에게 나누어 줄 실력이 있어야 함을 뼈저리게 생각하고, 이를 실현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

야율 대석이 훌륭한 지도자라는 소문이 멀리까지 퍼져나갔다. 종족 결속력이 약하거나 본디 종교개념이 없었던 중앙아시아, 페르시아, 몽골과 시베리아 출신의 사람들, 더구나 야율의 모국인 거란제국 백성들이 금나라의 핍박을 견디지 못해 서쪽에 다시 창건한 야율 대석 휘하로 찾아드는 숫자까지 말 그대로 물밀 듯이 밀려들었다.

특히 네스토리우스 교단 선교사들이 길러낸 기독교 신자들도 대거 몰려들었다. 어느덧 야율 대석의 흑거란(서요) 세력은 수십만 명이 되었고 그들 중 전쟁터에 나갈 만한 장정들이 10만여 명이 훌쩍 넘었다.

야율 대석은 자기를 찾아온 모든 백성들을 기꺼이 먹여 살리고 젊은이들의 군사 훈련에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백성들 중에는 야율의 속마음을 벌써 살폈을까. 금은보화 등 값비싼 귀중품을 내어놓고 제국을 지켜내는 비용으로 사용하라는 사람들도 심심찮게 나타났다.

야율 대석은 국경지역에서 기마군 훈련을 주기적으로 시키면서 심리전을 해대는 셀주크 투르크의 산자르 술탄이 무섭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그를 따르는 백성들에게 강하면서도 매우 인자한 지도자의 모습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백성들에게 나라 지키는 것은 걱정하지 말고 논과 밭을 가꾸어 농사를 짓도록 배려했고, 휘하의 병사들도 순환제로 파견해 농민들을 돕도록 명령했다.

셀주크 투르크 군사들이 국경을 넘어 들어와서 야율의 군사들을 괴롭힌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으음, 때가 왔구나. 야율은 전군에 비상령을 내렸다.

기쁜 소식도 찾아들었다. 두 달 전에 케레이트 부족 칸을 만나러 갔던 을지고 일행이 돌아왔다. 케레이트 칸이 기쁘게 동맹을 수락했다는 소식을 가지고 왔다.

작가 조효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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