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승호
홍성사 편집부장

2016년 10월 중순부터 3개월간, 도쿄 국립서양미술관(www.nmwa.go.jp)에서 ‘루카스 크라나하 전(展)-500년 후의 유혹’이 열렸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여 일본에서 처음 열리는 크라나하(1472~1553)의 이 전시에서는 세계 13개국 38곳의 소장처에서 대여 받은 90여 점의 작품이 소개되었다. 크라나하 작품의 가장 중요한 소장처이면서 많은 작품을 대여한 빈 미술사미술관 측은 “이 특이한 화가의 전시를 유럽 외에서 이렇게 대규모로 여는 것은 처음”이라고 밝혔다.

뒤러(1471~1528), 라파엘로(1483~1520)와 동시대 인물인 크라나하는 북유럽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마르틴 루터와 멜란히톤을 비롯한 많은 유명인의 초상화를 그려 ‘종교개혁의 시대를 체현한 화가’로도 손꼽힌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들과 비교되는 당대 화가들의 작품을 비롯하여 후대 화가들―특히 오늘날 현역 작가들―의 작품도 적절히 배치해, 사후 근현대 화가들에게 미친 그의 영향을 아울러 조명한 점도 돋보였다.

작품은 주제별 6개 섹션으로 나뉘어 전시됐다. ①뱀의 문양과 함께-궁정화가로서의 크라나하 ②시대의 모습-초상화가로서의 크라나하 ③그래피즘의 실험-판화가로서의 크라나하 ④시대를 초월한 앰비밸런스(ambivalence, ‘양면가치’)-나체 표현의 양상 ⑤유혹하는 그림-여자의 힘이라는 테마 ⑥종교개혁의 ‘얼굴’들-루터를 넘어서.

내게 관심의 초점은 단연 마지막 부분으로,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낯익은 루터의 초상화다. 밋밋한 배경에 간소한 의복, 결기 있고 단호한 의지를 표상하는 듯한 모습이며, 굳게 다문 입과 형형히 빛나는 눈매도 익히 보던 대로다. 크라나하가 그린 루터의 초상화 가운데 ‘성 아우구스티누스회 수도사’와 ‘결혼한 한 시민’으로서의 루터의 모습이 보인다. <어린이들을 축복하는 그리스도>는 신약성서에서 친숙한 주제지만 크라나하의 작품으로는 처음 대하는 것이다.

루터가 번역한 《신약성서》(1522년. 이른바 ‘9월성서’)의 삽화도 눈길을 끈다. 크라나하는 삽화가로서의 역할을 넘어 이 성서의 인쇄·출판 및 보급에도 전력을 다해, 3천 부가 넘는 초판이 ‘순식간에’ 다 팔려 3개월 뒤 2쇄를 찍었다고 한다(이 2쇄본이 ‘12월성서’다).

그는 비텐베르크의 궁정화가로 일하면서 일찍부터 공방을 개설하여 ‘크라나하 양식’으로 알려진 독특한 화법을 각지에 퍼뜨리며 짧은 시간에 많은 작품을 제작했는데, 그 과정에서 ‘시대를 앞서간 기업가/사업가’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기도 했다. 학자들 중에는 “그가 1505년경 세상을 떠났더라면 그의 작품세계가 더욱 돋보였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지만, 그가 당대 사람들의 평균수명(약 40세)만큼만 살았더라면, 루터 및 성서와 관련된 부분은 오늘날 어떤 모습으로 남아있을까?

기독교 인구가 그토록 적은 일본에서 열리는 크라나하의 대규모 전시. 종교개혁과 관련되지 않은 작품에 훨씬 비중이 실려 있긴 하지만, 전시장을 찾은 많은 일본인이 그가 그린 루터와 눈을 맞추고 말씀에 눈과 가슴이 열리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이 전시는 4월 중순까지 오사카에서도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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