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열망과 야망의 사람이었다. 그는 예루살렘에 머물던 시대에도 예수께서 갈릴리와 예루살렘을 오가며 복음을 전하실 때 먼발치에서라도 단 한번 예수님과 눈길 마주친 일이 없었다. 혹시 저녁 늦은 시간 변장하고서 예수 머무시는 곳 가까이에서 그 음성이라도 들어본 일이 없는 것 같다. 아니면 비서나 제자들 중 어느 누구를 예수께서 활동하시는 현장에 보내서 간접 방법으로 예수의 언행을 가늠해 볼 수 있었을까.

바울이 사울의 이름으로 살아갈 때 모습을 연상해보면 그는 자부심이 대단한 유대인 엘리트였기에 예수의 갈릴리 식 정서에 거리를 두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다메섹에서 예수를 만난 후, 그의 인생 목표가 예수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도전했다. 예수의 높은 그 경지에 (나도) 가고 싶다. 어디 바울뿐이겠는가? 예수께서도 제자가 스승 만큼이면 좋겠다고 하셨듯이 제자는 스승을 뛰어 넘을 때 비로소 제자의 자격을 얻는 법이니 바울뿐 아니라 이 땅의 그리스도인 모두가 예수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를 주께서는 원하실 것이다.

요즘 나라가 어수선하고, 주변에 “어른”이 계셨으면 하고 그리울 때 예수님이 계셨으면 좋았겠다. 아니면 바울이나 그 밖의 탁월한 도덕성과 지도력을 가진 인물이 있다면 참을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다가 또 나 자신을 바라볼 때 초라한 내 모습에 씁쓸한 생각을 하게 된다.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는 30세에 아프리카 활동을 끝내고, 구자라트 주 아흐메다바드에 와서 15년 활동하다가 50살 넘어서 뉴델리로 활동지를 옮겼는데 그는 마하트마(위대한 혼)라는 호칭을 타골로부터 얻은 때가 환갑이 되기 전이었다. 그리고 78세에 열심당 힌두 청년에게 살해될 무렵에는 가히 “인류의 스승”이었다.

힘들지만 한국교회도 큰 인물, 만인이 아끼고 존경하는 인물을 냈으면 좋겠다. 숲이 깊어야 큰 짐승이 산다 했듯이 서로를 아끼고 존중하고 존경하는 풍토가 먼저 조성되어야 하겠으나 그래도 한국교회와 한국 현실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를 원하는 지도자들이 나타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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