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형은 목사
말씀삶공동체
성락성결교회 담임

현직 대통령이 파면되었다. 헌정 사상 최초의 일이다. 여기에 대해 찬반이나 논란이 없을 수 없다. 견해 차이는 어쩌면 당연하다.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다. 의견의 차이가 없으면 민주주의가 아니다. 민주주의는 서로 다른 주장과 의견과 가치관이 공존하는 정치 구조니 말이다. 중요한 것은 대통령 파면 이후에 앞으로 걸어갈 길이다. 역사는 앞으로만 간다. 사회의 상황을 말하면서 퇴보라는 말도 하지만 이도 시간을 거꾸로 간다는 게 아니다. 점점 더 나빠지면서 앞으로 간다는 얘기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법치의 민주주의 역사에 세계적으로 길이 남을 2017년 3월 10일의 의미를 우선 간단히 요약하자. 인치(人治)의 폐해를 법치(法治)가 바로 세운 날이다. 인치가 법치의 테두리 안에서 건강하게 작동하여 덕치(德治)의 열매를 맺는 경우도 없지 않다. 그러나 요즘 같이 험한 세상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일이 되고 말았다. 박근혜-최순실 사태에서 드러난 국정 농단과 국기 문란에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파면이라는 주문(主文)으로 결론지었다. 서구 선진국의 주요 언론이 한결같이 민주주의 가치를 지켜낸 일이라고 높게 평가하는 게 당연하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앞으로 할 일이 태산이다. 짧게는 박근혜정부 시절에 발생한 부정적인 상황을 바로잡는 일인데 이 중 여러 가지가 이명박정부에 연관돼 있기도 하다. 국민이면 누구나 걱정하는 것만 몇 가지 꼽으면 핵 문제를 중심한 대북정책, 미국 중국 일본과 연관된 외교적 탄력성 회복, 경제 상황에 대한 바른 처방과 일관성 있는 정책 실행 등이다. 길게 보면 1987년 체제의 헌법과 정치 구조에 대한 논의와 개헌이 중차대하다. 더 길게 보면 박정희-박근혜 현상에 대한 역사적 정리인데, 결코 쉽지 않은 문제며 사회 각 영역의 지도자들이 지혜롭게 풀어가야 할 사안이다.

현실적으로 부정적인 변수가 있다. 지난 12일 저녁에 사저로 돌아가서 대신 발표한 박 전 대통령의 짧은 대국민 메시지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대한 불복으로 해석되고 있다. 친박계의 단결과 ‘새누리당’의 재창당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현실적으로 친박 정치세력이 폐족(廢族)을 거부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 정당을 구성하는 것일 테다. 사회 전체적으로 헌재 판결에 대한 승복이 거부할 수 없는 대세긴 하다. 그러나 이른바 ‘콘크리트 지지층’이라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핵심 세력이 똘똘 뭉치면 그 영향이 어떨지는 가늠하기 쉽지 않다. 촛불 세력과 태극기 세력 양 집단에서 진심으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이제는 이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 대화와 이해로써 통합에 힘써야 한다. 그래야 극단적인 세력이 힘을 키우지 못한다.

행백리자 반어구십(行百里者 半於九十), 중국의 전국책(戰國策) 진책(秦策)에 있는 말이다. 진나라의 무왕에게 어떤 사람이 충정으로 조언했다. “신은 임금께서 제나라를 가볍게 알고 초나라를 업신여기며 한나라를 속국 취급하는 것을 염려하고 있습니다. 왕자(王者)의 군사는 싸워 이겨도 교만하지 않고, 패자(覇者)는 궁지에 빠져 있어도 노여워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 시(詩)에 말하기를 백 리를 가는 사람은 구십을 반으로 한다 했습니다. 이것은 마지막 길이 어렵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어떤 일에서 거의 다 성공을 거두다가 마지막에 방심하고 자만해서 일을 그르치지 말라는 교훈이다.

엉망이 된 법치를 다시 세우고 기울어진 주권재민의 민주주의를 일으키는 일에서 대통령의 파면은 현실적으로 시작일 뿐이다. 어느 개인에 대한 미움이나 상대편을 꺾었다는 승리의 흡족함이 주된 관심사라면 일을 결정적으로 그르칠 수 있다. 문제는 우리 사회에 건강한 법치의 민주주의가 다시금 힘을 얻어 성숙해지는 것이다. 5월에 있을 대통령 선거에 나서는 후보자들뿐 아니라 우리 사회 각 분야의 지도자들이 깊이 헤아려야 할 일이다. 우리는 지금 실제로 반도 오지 못했다. 하물며 거의 다 왔다고 생각한다면 길이 열리지 않을 것이다. 하나가 되어 집단지성으로 힘을 모아도 쉽지 않은 세상인데 뿔뿔이 흩어져 제 고집만 피우는 야만으로는 어림도 없다. 우리가 대한국민이다. 우리는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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