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펜의 아시아(AD 610~1625) 천년여행[202] / 사제 왕 요한 ⑧

   
▲ 중국 돈황, 여행객들의 명사산 행을 위해 대기 중인 낙타들.

“적국은 무슨 적국!?”
빌게 추는 을지고가 내뱉는 말에 귀가 번쩍였다. 을지 고의 목소리가 의외로 컸다. 말소리를 듣는 순간 그는 반사동작으로 을지고를 바라보았다. 그의 귀에 날카롭고 큰 소리로 들리는 을지고, 그 목소리 당사자는 입가에 미소가 흐르고 있었다. 빌게 추는 자기가 무슨 최면에 걸린 사람이나 된 듯이 두 손으로 양쪽 귓바퀴를 감싸고 흔들어보았다. 다시 을지고는 말을 이었다.

“빌게 추 장군, 우리는 서로가 너무 가깝소. 그대가 산자르 칸의 직계일진대 투르크야, 돌궐족 말입니다. 나는 거란족이니 우리는 형제이기도 하고 멀어봐야 사촌지간입니다. 우리가 언제부터 적이니 원수니 하면서 살았다고 서로를 경계하거나 독을 품고 할 필요 있겠습니까. 가시거든 함께 잘 살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겠는가를 상의해서 연락 주시오. 우리는 기다리겠소이다.”

빌게 추는 을지고에게 간단하게 알겠노라는 말을 남기고 도망치듯이 카라키타이 진영을 벗어나왔다. 지체하다가는 말려들겠다는 뒷무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빌게 추 일행이 도망치듯이 떠나가는 모습을 오래 바라보던 석진 마루 부장은 을지고 장군의 위엄에 찬 말의 힘을 새삼 느꼈다. 빌게 추가 마치 염병을 피하듯이 도망질을 친 것은 을지고의 설득력 있는 말의 힘이라고 생각했다.

술탄을 찾아간 빌게 추는 카라키타이가 교활한 전술과 전략을 시도한다고 말했다. 을지고라는 야율 대석의 참모가 중국 고사에 등장하는 재갈공명과 같다고까지 말하면서 아는 체를 했다.
“그래, 재갈공명이 누구야! 지금 우리 무슬림 군은 승승장구하는 로마제국과 페르시아의, 아니야 알렉산드로스의 승전의 법칙을 다 알고 있단 말이다. 저들 북방 초원의 사냥개들 쯤은 우리가 쉽게 요리할 수 있다.”

빌게 추는 산자르 술탄 앞에서 납작 엎드려서 애꿎은 이마를 땅바닥에 거듭거듭 조아리고 있었다.
“술탄 합하, 그럼 오늘 기습하시는 겁니까?”
“무슨 소리야! 기습은 무슨 기습…, 선전포고를 해야지.”

산자르는 다음날 카라키타이 야율 대석에게 전쟁선포를 했다. 현 위치에서 에밀로 후퇴해준다면 전쟁이 아니라 평화를 원하는 것으로 알겠다고 친절한 사령을 통해 전했다.

야율 대석의 군진은 일제히 비상을 선포했다. 양 진영이 펼치고 있는 전쟁터는 부하라와 사마르칸트 북방 카트완 지역이다. 일단은 드넓은 평원과 사막으로 이어지는 지형이기는 하지만 뒷걸음을 치려면 피할 곳이 없으나 승자는 사마르칸트 성을 장악할 수가 있을 것이다.

야율 대석은 셀주크 군사력이 자기네보다 몇 배가 더 많다고 보았다. 상대가 세력이 많기 때문에 그는 오히려 자신감이 있었다. 그는 좌우군 사령관이나 참모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셀주크 군은 자기네가 숫자가 많은 것을 뽐내는지 모르겠으나 그들은 스스로를 통제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저들의 군진을 집중하기보다는 분할전략을 쓸 때 각각의 군세를 사정없이 가로질러서 그들의 군대가 많은 것이 혼란을 부추기도록 전략을 세우게 하라!”

좌우군 사령관인 야율 직고와 석로 탁은 각기 오른손을 들어 환호로써 총사령관인 중앙군의 야율 대석의 전술을 받아들였다.

이 전쟁은 이슬람이나 중국의 전쟁사에도 기록이 남아있다. 이슬람 측 기록에 따르면 야율 대석의 카라키타이 군이 발라사 군을 경유해 탈라스에 집결하기 전 카라한 왕조 휘하의 투르크와 거란인들 천막이 1만6천 개가 있었으니까 천막 하나에 5명의 성인이 있었다고 가정하면 야율 대석의 군에 추가 합류한 군대가 10만 명이 훨씬 넘는다는 계산을 해서 야율의 카라키타이 군을 30만 명은 된다고 기록했다.

그러나 야율 대석은 카트완 전쟁 전에 1130년대 초 에밀 지역에서 세력 규합을 할 때까지를 계산하면 1만여 명에서 출발했으며 카트완 전투 시까지 10여년 지났으나 앞서 좌우군 사령관들을 모아놓고 작전 지시를 했던 내용이 중국 전쟁사에 남아있는데 야율 대석의 흑거란군은 3만여 명이고 셀주크는 15만여 명으로 평가하기도 하고, 또는 카트완 전쟁 양 군의 군사를 비슷하게 보는 기록도 있다.

야율 대석의 전투 중 발언이 또 있다. 김호동 교수의 <동방 기독교와 동서문명>에는 저들 셀주크 군은 숫자는 많으나 이렇다 할 계책이 없다. 적군이 지휘하기 어렵도록 지휘망을 흐트러뜨려라. 각각 2천5백 명씩 빠른 기마군으로 치고 빠지기 작전을 시도하라는 기록이 있다. 레프 구밀료프의 <상상의 왕국을 찾아서>에도 1141년 카트완 전투 현장에서 산자르 술탄의 셀주크 투르크와 야율 대석의 카라키타이 군의 전투 현장 기록이 김호동의 자료와 비슷하다.

카트완 전투 첫날이다. 야율 대석 좌군인 야율 직고의 1만여 명은 산자르의 까마귀 떼만큼이나 많은 군대가 단숨에 몰려들자 기겁했다. 그의 얼굴이 빨개졌다. 우선 자기가 한순간 겁을 먹었다는 것을 적군이 알아보았을까 싶었다. 야율 직고는 어금니를 짓씹었다. 적들이 한꺼번에 좌군을 향해 돌진해 왔다. 야율 직고는 말 위에서 부장들에게 손짓했다. 부장 이영실과 부 신후가 야율 직고를 주목했다. 이들은 야율 직고의 비밀 병기들이다. 이들은 야율 직고의 좌우에서 백여 명씩의 병력으로 돌파를 시도했다. 이들이 돌파 시도를 했을 때 적은 사정없이 이들을 밀어붙였다. 야율 직고는 부장들이 돌파구를 찾는 척할 때 뒷 공간을 넓히고 부장들의 돌파시도를 신호로 일정한 간격으로 산자르 군과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마치 부채 살을 펴듯이 충분한 전투 공간을 확보했다.

그 순간이었다. 야율 직고의 정면으로 산자르 군의 일부가 흔들리는 듯이 요동쳤다. 야율 직고의 계략에 걸린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좌군은 적의 주력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야율 대석의 중앙군이 움직였다. 좌군과 우군이 저마다 주력군 행세를 하면서 공격과 수비 등 전략을 구사하자 산자르 군은 자기들에 비해 열세인 적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 그런데 주력군이 도대체 몇인가? 산자르가 좌우를 살피는데 야율 대석이 나타난 것이다. 야율 대석과 산자르 군이 전투를 하지만 산자르 군이 속았다. 주력군이 몇이냐, 마치 특수부대들처럼 셀주크 군을 농락하고 있었다. 산자르 군은 전투 직전에 야율 대석이 예감하고 작전 지휘를 했던 대로 전체가 한꺼번에 움직이고 있었다. 산자르의 군진은 긴 뱀처럼 움직였다. 그 많은 군사들이 별도의 전략을 행사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군진이 여러 개로 분할되기는 했지만 토막 난 군사들이 별도로 실력을 행사할 수 없었다.
그와 달리 야율 대석의 좌우 진은 중앙군과 함께 각 군이 독자적으로 지휘할 수 있었고 기초 지휘권을 2천5백 명씩 각 부대가 행사하다가 상급 지휘관이 신호를 보내는 대로 마치 카드섹션을 하듯이 각 부대들의 지휘하는 대로 신속하게 부대형식이 바뀌었다. 바뀔뿐 아니라 곧바로 부대 지휘가 가능했다. 기본군을 기마병들로 2천5백 명 단위로 많은 훈련을 했기에 좌우와 중앙의 3개 사령부와 같은 기능을 10개 이상으로 전투 진행 중에도 변형시도 할 수 있었고 상대방을 교란시킬 마법과 같은 야율 대석의 뛰어난 전술전략이었다.

산자르 술탄의 셀주크 투르크는 혼비백산이다. 혼이 빠져나갔다. 그들은 정신없이 도망가기에 바빴다. 군 기본전술마저 작동하지 못했다. 오합지졸이 되었다. 산자르는 탄식했다. 그는 혼자서 도망치고 있었다. 핵심 참모들도 야율 대석의 군에 포로가 되었다. 심지어 산자르 술탄의 마누라까지 포로가 되어버렸다. 일대일 전투를 시도했던 것이 원인이었을까.

야율 대석은 사마르칸트에 입성했다. 그는 카트완 전투 직전 탈라스 성에 부대를 주둔했었다. 4백여 년 전 당나라 고선지 군을 패퇴시킨 이슬람 군과 투르크 연합군 주둔지에서 훈련하면서 반드시 이기고 싶었다. 그때 이슬람과 투르크 연합세력이 당나라를 이겼듯이 그는 당나라의 후예들인 중국도 이기고 이슬람과 투르크를 이기고 싶었다.

통쾌한 승부였다. 야율 대석의 카라키타이가 중앙아시아의 새로운 강자로 등장했다. 그의 흑거란이 아무다리아 서쪽, 동쪽으로는 탕구트와 접경했고, 동북쪽으로는 나이만족과 마주쳤고, 수도는 발라사군, 제2의 수도는 사마르칸트였다. 카라키타이는 노쇠한 카라한 왕조를 완전히 흡수하고 셀주크투르크를 멀리 몰아냈다. 천산 위구르 왕국 등 작은 부족국가들을 조공국으로 삼았고, 13세기 징기스칸이 등장하기까지 중앙아시아의 중심국이 되었다.

야율 대석의 카라키타이가 셀주크 투르크 10만 또는 30만 대군을 물리쳤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십자군 전쟁기 초, 제2차 십자군 발진 직전에 수리아 주교 위고에 의해 교황에게 전해지면서 유럽 기독교의 혼을 빼게 하는 이야기가 이제부터 본격 진행된다.

산자르 술탄의 셀주크 투르크를 물리친 야율 대석은 당신이 사제 왕 요한입니까? 라는 질문을 받게 되고, 십자군은 성지에서 셀주크 투르크에게 패배하는 역사로 이어진다.

작가 조효근

<복음인in 들소리>는 하나님의 교회다움을 위해 진력하는 여러분의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동반자로서 여러분과 동역하며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함께 하겠습니다. 샬롬!

후원계좌 : 국민은행 010-9656-3375 (예금주 복음인)

저작권자 © 복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