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신학과 신앙은 이제 그 자세를 가다듬어 16세기 이후 500년 정체를 거듭했던 기독교 시대를 부활시켜야 한다.

사실, 16세기 유럽 종교개혁은 1525년 1월 21일 등장한 아나뱁티스트의 진보적 종교개혁을 맹목성 열광주의로 몰아붙여서 많은 희생을 냈고, 그해 곧 1525년 7월에 파멸과 부끄러움을 떠안았던 농민반란 제압은 마르틴 루터의 리더십 상실을 불렀다.

그 여파로 1618년 신·구 기독교 30년 종교전쟁을 하게 되었고, 그것은 르네상스 좌파들이라 할 수 있는 이성철학그룹의 저항을 용인했고, 그들은 더욱 세력을 모아 1700년대를 가로지르는 소위 계몽기 또는 무신론 철학자들의 반란, 1800년대에는 드디어 칼 마르크스의 등장으로 유럽은 기독교가 없는 대륙 꼴이 되었다.

이는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의 오만과 만용의 결과로 볼 수 있다. 그들이 메시아가 아닌 이상, 16세기 기독교 개혁은 유럽의 12세기부터 꿈틀거리기 시작한 종교개혁의 과정물이었다. 사실, 16세기의 용기보다는 15세기 초 보헤미아 얀 후스의 실력과 결단을 더 높이 치고, 16세기 기독교의 종교개혁은 그 결과물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그렇다면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이 죽기 직전에 유언으로 남겼어야 할 말은 “우리의 결과물(열매)은 너희들의 과정이어야 하느니라. 16세기 종교개혁은 겨우 출발선상에 섰을 뿐이니, 너희 17세기 이후의 역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완성도에 이를 때까지 온몸을 다 바쳐야 하느니라”고 했어야 한다.

오늘의 세계 기독교가 상속자도 없이 황혼에 다다른 것은 16세기 종교개혁을 완성품으로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예수님마저도 “내가 다시 와야 한다”고 하셨는데, 감히 인간들이 건방을 떨고 있음은 하나님의 구원사를 망쳐버리려고 작정한 사단의 술수나 다를 바 없는 일이다.

21세기 개혁시대를 열자. 이 또한 메시아 예수의 다시 오심까지의 중간기임을 명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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