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승호
홍성사 편집부장

알퐁스 무하(Alfons Mucha, 1860-1939, ‘무샤’라고도 한다). 체코의 ‘국민화가’로, 아르 누보(19세기 말~20세기 초에 성행한 유럽의 예술사조)를 대표하는 작가의 한 사람이다. 오스트리아령 모라비아(현재의 체코 동부)에서 태어나, 27세 때 파리에 와서 우미하고 장식적인 작풍을 통해 시대의 총아로 활약했다. 

그의 이름이 설게 느껴지는 사람도 그가 남긴 아름다운 여성상과 유려한 식물 문양 등, 화려하고 세련된 포스터와 장식 판넬 작품의 선과 형태와 색상에는 비교적 친숙할 것이다(지난겨울 예술의전당에서 그의 작품전이 열리기도 했다). 체코 독립 후 그는 우표와 지폐 등의 도안을 통해 민족 정서를 집약하여 세인들에게 각인시키기도 했는데, 이처럼 고향 체코와 자신의 뿌리인 슬라브 민족의 정체성을 주제로 한 작품도 많이 남겼다. 그 집대성이 20점의 연작 <슬라브 서사시>로, 50세 때 고향에 돌아와서 약 16년에 걸쳐 제작한 것이다. 세로 6m, 가로 8m에 이르는 엄청난 스케일로 슬라브 민족의 고난과 영광의 역사를 그려낸 이 연작은 무하의 최고 걸작으로 손꼽히며, 체코 근대 미술사상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자리매김되어 있다. 

그 가운데 15번째 작품 <이반치체의 형제단학교(The Brethren School in Ivancˇice)>. ‘크랄리체 성서 인쇄’라는 부제목이 붙어 있다. 체코의 종교개혁운동을 주도한 보헤미아 형제단의 교육, 계몽운동을 담아낸 3부작 가운데 제1작으로, 무하의 탄생지 모라비아의 이반치체 시에 헌정한 작품이다. 

16세기에 이곳을 거점으로 한 형제단은 비가톨릭계 가문 영주의 보호 아래 학교를 열었다. 이 학교에서 학식이 깊은 사교(司敎) 얀 브라호슬리프의 지도하에 성서가 체코어로 번역되어 1578년에는 비밀리에 인쇄도 시작했다. 그 후, 안전을 위해 작업은 근처의 크랄리체 요새로 옮겨져 그곳에서 완성되었고, 이듬해 그 지명을 따라 ‘크랄리체 성서’라고 명명되었다.

그림에 담긴 광경은 440여 년 전 초가을, 이반치체의 성벽을 등진 교정에서 과실 수확이 한창이다. 많은 인물 가운데 전경에 비교적 크게 묘사된 두 인물이 눈에 확 띈다. 연로한 시각장애인이 의자에 앉아, 성서를 읽어주는 소년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다. 형형한 눈빛으로 우리를 마주하고 있는, 어딘지 낯익은 표정의 이 소년은 젊은 날의 무하 자신을 모델로 그려졌다.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는 화면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로, 저마다 펼친 일간지 크기의 종이에 갓 인쇄된 뭔가를 읽고 있다. 오른쪽 끝부분에는 두 젊은이가 인쇄된 종이 더미를 날라 오고 있다. 한 면에 네 페이지씩 인쇄된 이 종이에는 무슨 이야기가, 소식이 담긴 걸까?

이들은 체코어로 번역된 성서 첫 교정지를 살펴보고 있다. 앞서 언급한 바로 그 성서다. 바짝 눈을 대고 뭔가 유심히 살펴보고 있는 사람들 곁으로, 이 학교의 후원자가 전체적인 상황을 살피고 있는 듯하다. 교사와 학생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교정에 몰두하는 모습은, 교정교열이 일상사가 된 지 오래인 내게 낯설면서도 가슴 찡하게 다가온다. 한 자 한 자 꼼꼼히 살피고 있을 이들에게 어떤 성경말씀(들)이 어떻게 스며들고 있을까?

인간과 자연의 융화를 노래하는 파노라마적 경관과 평범하면서도 소중한(그러면서도 특별한) 일상의 모습이, 신록이 푸르러가는 이 계절에 거듭 어른거린다.

<복음인in 들소리>는 하나님의 교회다움을 위해 진력하는 여러분의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동반자로서 여러분과 동역하며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함께 하겠습니다. 샬롬!

후원계좌 : 국민은행 010-9656-3375 (예금주 복음인)

저작권자 © 복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