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만화가가 꿈이었고 지금도 만화를 좋아한다. 빠뜨리지 않고 찾아 보는 웹툰이 매일 두어 편은 된다. 그런데 봄이 되고 날이 따뜻해지면 나도 모르게 기다리게 된다. 지금쯤이면 강풀 만화가 나올 때가 되었는데 하고. 그의 최근작이었던 웹툰 <무빙> 이야기를 좀 해보자. <무빙>은 초능력자 이야기다. 한국형 슈퍼히어로물을 표방했다. 남자는 결코 철이 들지 않는다고 누가 그러던데 나를 보면 맞는 말 같다. 나이를 그렇게 먹고도 초능력자 나오는 터무니없는 이야기가 너무 좋다. 아마 꼬부랑 할아버지가 되어도 그대로지 싶다. 요즘 아이언맨이니 엑스맨이니 하는 마블 영화가 전 세계적으로 인기 끄는 것을 보면 나만 그런 것은 아닌 모양이다.

<무빙>에는 비행능력, 회복능력, 예민한 감각 등 초능력의 소유자들이 나온다. 만화 속 주요무대는 당연히 국정원이다. 초능력자들은 국정원 블랙팀에서 은밀한 임무를 수행한다. 그런데 국정원은 초능력이 자녀에게 유전된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 초능력을 타고난 아이들을 찾아내기 위해 어느 고등학교에 직원을 교사로 파견한다. 최일환. 겉으로 볼 때 그의 직업은 고등학교 체육교사지만 실제 임무는 재능이 있는 학생들을 평가하는 것이었다. 외부적으로는 선생으로서 일하면서 국정원에서 써먹을 수 있는 재목감을 면밀히 관찰하고 체크하고 찾아내는 임무를 맡았다. 분명히 악당 캐릭터다. 그런데 그는 국정원에서 맡긴 일을 충실히 이행하는 과정에서 자기도 모르게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최선을 다했다. 학생들을 돌보고 그들에게 관심을 쏟고 돕는다. 그러다보니 그에게 고마워하고 그를 진정한 선생님으로 여기는 학생들이 생겨났다.

그러던 중 그가 가진 정보를 확보하기 위해 북측에서 사람들이 찾아온다. 최일환은 그들 북측의 초능력자 집단, 나중에는 남측 국정원의 압력에 직면해 자신의 안위와 학생들의 안전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그리고 그는 씩씩하게 선택을 내린다. 위험한 길, 누가 시키지도 않은 길이다. 그의 상관이던 국정원의 민 차장은 그에 대해 이런 취지로 말한다. “학생들을 감시하라고 보냈더니 선생이 되었더라고.”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고? 세월호 기간제 교사들을 순직 처리하라는 대통령의 지시를 접하고 마음이 짠했던 이야기를 하려는 거다. 대통령의 그 지시가 왜 그렇게 감동으로 다가왔는지 생각해 보았다. 너무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과연 뭐가 당연한 것일까? 학교와 교육부와 ‘노동시장’에서는 비정규직 기간제 교사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다. 그냥 잠깐 쓰고 대체할 수 있는 노동력으로 여기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런 불안정한 고용상황에 처한 기간제 교사는 (그도 사람이다 보니) 자신이 맡은 학생들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갖기가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다. 자신이 받는 대우와 대가만큼만, 딱 그만큼만 일하고 말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세월호에 탔던 기간제 교사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절체절명의 위태로운 순간에 학생들을 먼저 생각하고 그들을 위해 목숨도 아끼지 않았다. 자신들이 맡은 일이 그냥 ‘업무’가 아니라 학생들이라는 것을, 교사란 학생들에게 지식뿐 아니라 관심과 사랑과 자신의 일부를 내어주는 사람임을 그 자리에서 입증해버렸다. 학생들과 마지막까지 함께하는 희생적 선택이라는, 계산이 안 나오는 선택을 내림으로써 그들이 하는 일의 성격을 규정해버렸다. 그러니까 그들의 희생을 순직으로 인정하지 않는 국가의 반응이 그토록 이상했던 것이다. 그들의 고결한 선택이 그들에 대한 인색한 처우의 비루함을 까발려버린 까닭이요, 그들이 궁극의 희생을 통해 교사라는 자리를 영광스럽게 만들어버린 탓이다.

누가 뭐래도, 그들은 자신들의 행동과 선택을 통해 그들이 하는 일의 가치를 단번에 드러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그것이 인정받는 날이 온 것 같아 기쁘다. 귀한 일이 귀하게 인정받고, 고귀한 희생이 그에 합당한 존중을 받는 일이 더 많이 당연해졌으면 좋겠다.

홍종락 /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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