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 > 연재 소설
사제들의 왕국을 이루자_ 2알로펜의 아시아(AD 610~1625) 천년여행 [ 208 ] / 사제 왕 요한 ⑬
조효근  |  dsr123@daum.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1634호] 승인 2017.05.24  14:40:58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 네스토리우스파 전도자들은 복음 전도를 위해 얼마나 많은 고투를 벌였을까. 사진은 중국 북방 초원.

 

을지 고는 여행길에 나섰다. 사마르칸트, 부하라, 우르갠치, 타쉬갠트를 중심으로 야율 대석 카간과 약속한 사제 왕국 건설을 위한 대장정이었다. 그와 동행하는 일행은 자그마치 일백여 명의 남정네들이다. 소그드 복색과 동일한 모습의 네스토리안 순회전도단이었다. 네스토리우스 파 신자들은 성직자와 평신도의 체제가 아니었다. 그들은 초대교회 식 방식으로 교회를 구성했는데 1인 1교회 체제였다. 이 말의 뜻은 사람들 개개인마다 하나의 교회 단위라는 뜻이다. 또 이들 네스토리안들은 모든 개개인이 예수 십자가의 동행자로서 죽음을 경험한 부활신앙을 가졌다. 다시 죽음은 없다는 신앙의 사람들이다. 예수와 함께 죽고 태어났으니 두 번의 죽음은 없다는 신앙이다.

생로병사라 했다. 이 중에서 죽음만큼 두렵고 무서운 것이 있겠는가, 그런데 바로 그 죽음의 문제를 미리서 해결한 사람들이니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무서움이나 두려움 따위가 더는 없다고 확신하는 그들이다.

그래서 그들이 가는 곳은 산이나 강 그 어느 곳도 두렵지 않았다. 그들은 산과 들길을 가다가 사람 사는 곳을 만나면 그곳에 등짐을 풀고 쉬기도 하고, 그들이 반겨주면 기뻐하고 가지고 다니는 물건을 팔기도 한다. 또 그들은 기본적으로 병든 자에게 주는 치료약이 있고, 또 치료하거나 병세를 살피는 기본적인 의술이 있다. 또 글을 모르는 이들에게는 글을 가르쳐주고, 특히 산술은 기본적으로 가르쳐준다. 또 그들은 물건을 팔고 글을 가르치고 병자를 돕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더 도와줄 것이 없는가를 살핀다. 그리고, 떠날 때 이르러서는 예수의 인생이야기, 곧 복음을 현지인들에게 전해준다.

그들 네스토리우스 파 전도자들은 늘 여행을 했다. 중앙아시아 일대는 물론 타클라마칸 사막과 몽골 사막, 중가르사막, 그런가하면 저 북방 초원 너머 시베리아까지도 그들은 늘 걷고 달리는 사람들이다. 가고 오는 길에 만나는 사람들과 함께 인간의 정을 나누고, 그들이 배운 예수의 도리를 말해주면서 떠난다. 현지인들이 그들 전도자들이 전해주는 복음에 옳다 아니다에 귀 기울일 시간이 없다. 서로의 필요를 나누면 떠나고 그렇게 헤어진 사람들이 다시 만나기도 한다.

도시나 촌락을 만나지 못하면 계속해서 걷는다. 걷고 달리다가 길을 잃기도 하고 고약한 짐승을 만나서 희생을 당하기도 한다. 짐승에게 목숨을 잃거나 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사막에서 길을 잃고 돌개바람을 만나서 모래무덤 속에 잘못 갇히면 숨이 막혀 죽거나 큰 부상을 당하기도 한다. 때로는 더 사나운 사막의 바람, 허리케인보다 훨씬 더 무서운 태풍에 휘말리면 집채만큼 한 바윗돌이 바람에 날아다니다가 길 가는 나그네를 덮치기도 한다.

이토록 험난한 인생살이이기는 하지만 그들은 찬송하면서 걷고 노래하면서 고통스러운 나그네 길을 잘도 견디며 살아간다. 건강한 몸, 등에 짊어진 살림살이가 먹고 살아가는 자산이요 소유의 모든 것이기는 해도 그들은 서두르지 않는다. 이미 그들의 몸 안에 천국과 지옥이 함께 있다. 십자가 예수와 함께하는 동행인이라는 확신과 믿음이 있는 한 그들이 오가고 머무는 곳마다에 천국이 있고, 아니면 사는 게 사는 노릇일 수 없다. 그러나 어느 한 사람도 억지로 네스토리우스 교단에 남아있을 필요는 없다. 싫으면 언제든지 떠난다. 계약이나 약속이 따로 없으니 배신이라는 수치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 그동안 함께해서 감사했노라는 마음을 간직하고 또 다른 자기 길을 가면 된다.

을지 고 일행은 사마르칸트에 이르러서 일행 중 절반을 두고 부하라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사마르칸트에 남겨둔 제자들은 그곳에서 탈라스나 이식쿨 지역으로 나뉘어서 간다. 그들은 가는 곳마다 현지에 대기 중인 이동 전도단과 교대하기도 한다.

부하라에 도착한 을지 고 장군은 제자들 다섯 명만 남기고 나머지는 우르갠치와 히바로 보냈다. 각기 떠나는 인원을 조정하고 선택하는 것은 서로 상의해서 하고 또 활동개시의 시간도 저마다 의논해서 하도록 했다.

“장군님, 이곳 부하라는 셀주크 잔존세력이 남아있습니다. 함부로 움직여도 될까요?”

“함부로가 아닐세. 다 알고 있네. 조금 전에 스데반 주교님을 뵙지 않았던가?”

“네? 아, 네….”

을지 고가 함부로가 아니라 하는 순간 유드게스는 자기의 경솔한 발언을 후회했다. 그는 아차 하는 생각에 혀를 지긋이 깨물면서 자기의 입방정을 거듭 탓했다.

“그렇다고 해서 움츠러들지 마시게 다 나를 걱정해주는 것인 줄 나는 알고 있으이….”

“아, 네! 장군님.”

“장군님, 장군님 하지 말게. 여기가 뭐 전쟁터도 아니고 또 나는 장군님 호칭을 좋아하지 않지.”

“네, 알고 있습니다. 사제 왕 을지 고 님 저는 장군이 사제이심을 알고 있나이다. 또 지금 전국을 순회

하고 케레이트까지 험난한 여행계획을 세우시는 속마음도 알고 있습니다. 아마, 금번 여행이 1년 이상 걸릴 수도 있습니다. 케레이트는 물론 그곳에서의 결과에 따라서는 몽골, 메르키트, 키르키즈, 오라이트, 나이만 부족들에게까지 가셔서 사제 왕국 동맹이랄까 기독교 연합제국을 논의할 외교 운동을 준비하고 계실 것입니다.”

“그루지아여! 너무 앞서나가지 마시게, 안다고 그걸 아무 때나 다 말로 하는 것은 아닐세.”

을지 고는 그루지아를 향해 사랑스런 눈빛을 건네면서 말했다.

“아, 그럼 우리도 금번에 엉덩이에 뿔이 돋을 만큼 긴 여행을 해야 되겠구나.”

크데시폰의 아론이었다. 대화를 지켜보던 하만과 주명탁이 자기들의 엉덩이를 각기 만지면서 엄살을 떨었다.

“그렇게 방정을 떨면 선택에서 밀려날 수도 있는 법, 나는 마땅히 우리의 스승님께서 데리고 가실 것으로 믿고 있다가 미끄러질 수 있습니다.”

아론의 말이었다.

말없이 제자들을 이끌고 을지 고가 가고 있는 곳은 낙쉬반드 교단 지도자의 저택 근처 외부 사원이었다.

“여기가 낙쉬반드가 일으킨 수피 이슬람이야. 나도 잘은 모르지만 이슬람 신비주의 한 종파인데 무소

유를 기본으로 하되 무한희생과 겸손을 훈련하는 이슬람 종파라네. 장차 이들이 초원의 유목민 출신

인 우리들의 정착과정에서 많은 유혹이 될 거야. 우리도 앞으로는 철저한 훈련을 통해서 앞날을 헤쳐

나가야 한다네. 아시겠는가?”

제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다짐했다.

“그리고 그루지아는 내가 케레이트뿐 아니라 이웃의 몇 나라를 더 찾아갈 것으로 안다는 듯이 말했는

데 누가 자네에게 그 말을 해주던가?”

“아닙니다. 제가 짐작하는 것뿐입니다. 사부께서 우리들만의 나라를 생각하고 계시지 않고 케레이트

방문을 서두르시는 것을 확인하면서 제가 생각해보았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북방과 중앙아시아 일대의 나라들을 기독교 제국으로 조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요. 내가 생각하는 바도 기독교 제국을 구상하고는 있네. 그러나 이는 우리 네스토리안 교단의

신앙성격과 일치하지는 않아요. 우리는 기독교의 틀에서도 벗어나서 궁극적으로는 종교의 해체, 아니면 종교 아닌 종교의 시대를 이 세상에 만들어내야 할 거야.”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크데시폰의 아론이 질겁하면서 묻는다.

“여러분, 우리 네스토리우스 파 교단이 유럽의 기독교, 특히 로마 가톨릭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핍박과 저주를 받아왔는지를 아는가? 지금도 로마의 기독교는 우리들을 사악한 이단으로 종교는커녕 인간취급도 하려 들지 않아요. 그래서 우리는 저들 유럽 기독교들보다 예수를 더 잘, 더 열심히 믿고 싶어 하지요. 그리고 우리는 결코 타종교를 차별하지 않아요. 나 자신은 더더욱 종교 간의 우열시비나 이단경쟁을 싫어합니다. 나뿐 아니라 중앙아시아권 우리 네스토리우스 교단 사제나 학자들 어느 누구도 타종교, 즉 불교나 도교, 마스다교(조로아스터교), 이슬람, 마니교 등 어느 종교와도 등지고 사는 것 싫어합니다. 그런데도 또 한편으로 이 사막과 초원의 이동민족들이 장차 정착해서 서로가 종교와 혈통이 달라도 정착문화로 바뀌어갈 이 세상에서 차별이나 학대를 받지 않으려면 일정한 수준의 조직력을 갖춘 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보는 거라네. 어찌 보면 모순된 것이기도 하지요.”

“아닙니다. 동물의 세계도 조직과 질서를 기본으로 움직여갑니다. 사부님 사제께서 우리 카라 키타이뿐 아니라 이동부족국가들 모두를 위해서 더 수고하셔야 합니다.”

유드게스의 말이었다.

“좋아요. 일단 우리는 이곳 부하라 형제들과 며칠 지내다가 히바, 우르갠치, 사마르칸트, 타쉬갠트를 거쳐서 일단 발라사군으로 돌아갑니다.”

을지 고는 이 말을 마치고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을지 고가 돌아오자 카간 야율 아열은 반색했다.

“사부께서 케레이트로 곧바로 가셨으면 어찌하나 하면서 걱정했소이다. 사부께서 여기 계시지 않은 동안 십자군 쪽에서 사절단이 와서 지금 객관에서 버티고 있습니다. 지원군을 반드시 허락받아야겠답니다.”

야율 아열은 두 손으로 자기의 양쪽 귓바퀴 부분을 짓누르는 시늉을 했다. 골치 아프다는 뜻으로 을지 고는 받아들였다.

을지 고 역시 반갑지 않았다. 선황제 야율 대석의 당부도 있을 뿐 아니라 현재 셀주크 투르크 역시 수년 전 참패를 기억하고 있을 터인데 군대를 지중해 쪽으로 이동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이다.

을지 고 역시 머리통이 지끈거렸다. 지방 순행에서 얻은 마음의 여유가 사라지고 마음속이 온통 뒤죽박죽이었다. 이를 어쩌나….

작가 조효근

조효근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10-460 서울시 종로구 창경궁로 16길 73-6(연건동)  |  대표전화 : 02-3676-3082~5  |  팩스 : 02-3676-3087
신문등록번호 : 서울 다 06483  |  등록일 : 1988.5.31  |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 조효근  |  이메일 : dsr123@daum.net
Copyright © 2013 들소리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