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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들의 왕국을 이루자 >3<
조효근  |  dsr12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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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5호] 승인 2017.05.31  15:3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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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투루판의 무슬림과 대화하고 있는 필자.

을지 고는 십자군 사절단을 면담했다. 사절단 일행은 을지 고와 대화를 나누면서 아시아의 교회들도 이단 종교인 이슬람과 싸우는 유럽교회의 십자군에 대해서 경의를 표해야 한다, 남의 일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는 식으로 오만스러운 말투였다.

“주교님, 하시는 말씀이 듣기에 거북합니다. 저희 카라 키타이의 정책을 감안하셔야 하지요. 더구나 장군님께 예를 갖춰주시기를 바랍니다.”

을지 고의 보좌관인 지언덕은 사절단장인 이쉬건 주교에게 따끔하게 한마디 했다. 이쉬건 주교 일행은 지언덕 부장이 볼 때도 자세가 공손하지 않았다. 이쉬건은 혹시 저들 십자군 사절단이 우월감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하고 걱정까지 했다.

“자, 부장님! 저희는 지금 매우 절박한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사특한 사라센인들이 거룩한 유럽을 괴롭게 한 점을 기억해야 할 줄 압니다.”

“물론 압니다. 그러나 이 전쟁을 누가 일으켰나요. 칼을 쓰는 자 칼로 망한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는데 기독교 신자들로서는 할 일이 아니죠.”

“지언덕 부장님, 그래도 같은 신자로서 도움을 청하기 위해 만 리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온 우리들을 앞에 앉혀놓고 말을 함부로 하시면 됩니까. 저희는 메르브 본부에서 을지 고 총사령관님을 찾아가면 크게 도움을 얻을 것이라 해서 찾아온 친구들입니다.”

“자, 이러시면 안 됩니다. 우리가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를 놓고 명분가리기에 매달리면 안 됩니다. 그래서인데 먼저 십자군과 이슬람 관계를 장차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 이쉬건 주교님이 말씀 좀 해 주세요.”

“네, 을지 사령관님. 사령관님은 단순한 군 지휘관이 아니고 카라 키타이에서 가장 존경받는 성자라고 저는 메르브 총본부에서 소개받은 바 있습니다. 제가 십자군의 앞날을 잘 알 수도 없지만 그보다는 사령관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그렇습니까. 십자군 지원병 요청은 1년 전부터 있었죠. 그런데 십자군 전쟁에 대한 의문을 저희는 가지고 있습니다. 중앙아시아 일대의 각 나라 사정을 보아도 기독교와 이슬람 간의 종교전쟁은 전혀 없거든요. 전쟁은커녕 종교문제를 이유로 개인적인 다툼도 거의 없어요. 왜냐면 이슬람과 기독교는 형제관계임을 서로가 알고 있기 때문이죠. 저희들 군대조직 안에는 기독교와 무슬림들이 거의 절반 가까이 섞여 있습니다. 만약 저희가 십자군 지원을 나간다면 우리 군대는 자칫 싸워야 할 상대를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주교님, 제 생각에는 이슬람과 불가피한 전쟁을 시작했으나 어느 시점에서 명분 있는 퇴로를 서로가 열어가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쉬건 주교는 물론 사절단 일행 4명 모두 어느 누구도 쉽게 을지 고의 말을 이어받지 못하고 있었다. 모두 침울한 얼굴로 시선 줄 곳을 찾지 못한 것이다.

전체회의를 마치고, 을지 고와 이쉬건 주교가 단독 모임을 가졌다. 이 주교의 요청에 의해서였다.

“을지 고 님, 어르신이 카라 키타이 왕국의 사제 왕이신가요? 요한의 이름으로 불리는 바로 그분이시라는 생각을 저는 가지고 있습니다.”

을지 고는 이쉬건 주교의 묻는 말에 답변하지 않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 주교에게서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그러면 사제 왕 요한은 어디에 계십니까? 유럽은 지금 사제 왕 요한이 보낸 편지까지 공개되어 들떠있습니다.”

“이 주교님, 정말로 사제 왕 요한을 찾고 계십니까?”

“그럼요. 그걸 지금 묻고 계십니까. 저희들은 그분을 만나기 위해서 여기에 와있지 않습니까.”

“이쉬건 주교님. 이곳 중아아시아나 북방 초원지대는 물론 시베리아 저 너머에 있는 네스토리안 기독교 신자들과 그들의 집단을 찾아가보세요. 네스토리안 신자들은 모두 사제(司祭)가 되기를 꿈꿉니다. 그리고 그들의 영적 이름은 모두 요한입니다. 요한복음 기록자가 모든 신자들은 사제 또는 목자(목사 또는 신부)로 가르치고 있다고 믿기에 신자들이 초보단계를 뛰어넘어 자기 몸을 드리는 헌신을 깨닫는 순간부터 그들 스스로를 왕 같은 사제요 명예로운 이름인 요한을 자부합니다.”

“허허…. 요한복음이 모든 신자를 사제로 만들었다니, 처음 듣는 말입니다만….”

“아, 있잖아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라고 하셨잖아요. 나무와 가지는 한 몸이고 한 생명입니다. 내게 붙어있으면 열매를 맺는다 하지 않아요. 이렇게 쉬운 말씀을 두고 기독교 신자들은 방황하고 있습니다. 포도나무 가지이기에 예수님의 성격을 그대로 가진 작은 예수들이 예수의 신자요 제자들인 우리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그를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는 유대인들의 죄를 대신해서도 죽으신 것처럼 우리 기독교 신자들도 우리를 위협하고 죽이려드는 이슬람 종교를 위해서 대신 죽어줄 수도 있다는 정직한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렇군요. 사제 왕이시며 카라 키타이 왕국의 총사령관이신 어른의 말씀을 새롭게 듣고 보니 저같이 못난 사람도 마음의 눈이 뜨이는군요. 가르침에 경의를 표합니다.”

십자군 지원 요청을 위해 온 이쉬건 주교와 그 일행이 카라 키타이를 떠났다. 을지 고는 발라사군의 군사 지도자들을 소집했다. 군 지도자는 적군이 침공해오거나 반란이 일어났을 때의 신분이고, 그들이 등짐을 지고 집을 나서면 상인이 되고, 농기구를 들고 들과 산으로 가면 농부가 되지만 오늘의 경우는 복음 전도자의 특강을 위한 수업을 하거나 이웃을 섬기는 훈련의 시간을 위한 모임이었다. 3백여 명의 남녀가 모였다. 이런 모임의 경우는 먼저 몇 사람의 신앙 간증이 있어왔으나 오늘은 을지 장군의 특강 시간이다.

“내가 잠시 여러분 곁을 떠나 여행을 다녀왔으나 수일 안에 케레이트 왕국과 그 주변국을 잠시 다녀올 계획입니다. 케레이트는 중아아시아 일대는 물론 초원의 국가들 중 가장 강대한 나라입니다. 우리 요나라가 동방과 당나라의 자산을 물려받아서 아시아를 호령할 때만 해도 부러울 것이 없었는데 지금은 케레이트가 부럽고, 또 케레이트를 넘보려드는 몽골 종족들의 연합도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더 쉽게 말하면 금번 케레이트 방문은 몽골족들의 동향을 살펴보고자 함이올시다.”

을지 고가 말을 마치고 자리에 앉자 한 젊은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을지 장군님께 질문이 있습니다. 저는 저 북방 아무르 강 강변에서 살았던 몽골계 후손이기도 하고 거란 건국기부터 종족의 역사를 따져보는 북방계 후손으로 알고 있는 유원정이라고 합니다. 우리 왕국의 사부님이기도 하시고 사제 왕도 되시는 을지 장군님 수행원으로 케레이트에 가보고 싶습니다. 저의 간절한 소원을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모인 사람들 중에 키들키들 웃기도 하고 유원정 군을 살펴보려고 목을 뽑아들고 두리번거리는 이들도 있었다.

“그래, 좋다. 데려가지. 그 대신 내 짐은 자네가 가지고 다니도록 하거라.”

“네, 장군님. 짐뿐 아니라 장군님 여행 중에 힘이 드시면 제가 잘 모시겠습니다.”

“좋다. 그렇게 하도록 하라. 또 질문이 있거나 궁금한 게 있습니까?”

“장군님. 얼마 동안 궁성을 비우실 겁니까? 장군님이 계시지 않으면 저희는 불안할 것입니다.”

젊은 여인이었다.

“불안해하지 마시오. 정히 불안하거든 남편의 가슴팍에 매달리시오. 그리고 믿는 우리 기독교 신자가 어떤 특정한 인물 때문에 불안하거나 안녕하다는 것은 바람직한 신앙이 아닙니다. 우리 예수님이 믿는 우리와 항상 함께하십니다. 이 믿음으로 우리는 세상에서 살아갑니다. 또 누구 질문 있습니까?”

“네, 있습니다. 우리 카라 키타이 부흥왕조의 황제이신 야율 카간께서 떠나시고 새 황제는 아직 섭정을 받으실 만큼이신데 우리 왕국의 지도자이신 을지 고 총사령관님이 아무리 서둘러도 몇 개월 걸릴 수 있는 타국 행을 하시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으실 것 같은데, 그걸 저희가 알면 기도해드릴 수 있습니다. 아참, 제 이름은 우석도입니다.”

“앞서 말한 대로 케레이트 국의 기독교 신앙에 모범이 있는가를 살펴보고자 함이요. 또 아무르 강변을 한 번 살펴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입니다. 우리 왕국은 섭정을 끝내고 직접 통치를 시작하신 황제께서 만백성을 잘 지켜주실 겁니다. 또 주변의 침략자가 발생하면 나보다 몇 배는 더 능력 있는 장군들이 계십니다. 오직 나는 장치 초원의 나라들이 연합세력으로 뭉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며칠 전에도 십자군 지원 요청 사절단이 다녀갔으나 우리는 종교 간에 싸우거나 목숨 건 전쟁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유럽 기독교가 어려울 때 도와달라는 것을 거절했으니 유럽 기독교는 종교 간의 평화를 주창하는 우리를 좋게 보지 않을 것이오. 그럼, 그 이후에 일어날 일에 우리 스스로 준비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강한 나라 또 부한 나라가 되기 위해 내 잠시 여행을 다녀오리다.”

을지 고는 야율 아열 카간의 궁으로 달려갔다. 황제는 황태자 야율 요한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세자, 할아버지 오셨구나.”

황제는 을지 고를 반기면서도 아들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폐하, 평화로워보입니다. 폐하께서 세자를 어여삐 여기시니 소신은 기쁘옵니다.”

“그럼, 그러셔야죠. 십자군 사절들은 돌려보내셨습니까?”

야율 아열은 그제야 을지 고를 바라보면서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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