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에 대한 심각한 왜곡과 오류 바로잡기 시도

▲ 1549년 제네바에서 열린 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칼빈.

 

▲ <칼빈과 개혁전통>
리처드 멀러 지음/
김병훈 옮김/지평서원

“이후 개혁신학자들과 비교되는 칼빈은 16세기 초·중반에 이루어진 토론들에서 만나게 되는 역사적인 칼빈이 아니었다. 그런 비교에 사용된 ‘칼빈’은 흔히 ‘-주의들’, 특히 예정론주의, 결정론주의, 그리고 스콜라주의와 대립되게 설정된바 그리스도 중심주의와 인문주의로 정의되는 20세기의 기이한 산물이었다.”

하나의 이야기가 시간이 지나고 여러 사람을 거치면서 전혀 다른 내용으로 왜곡되는 경우는 인간사에서 많이 일어나는 오류이다. 기독교사 역시 예외가 아니다. 책은 개혁파 정통주의의 요지를 집대성한 것으로 2세대 종교개혁자이자 장로교의 창시자인 존 칼빈과 그의 사상이 오늘날 당시와 얼마나 달라졌는지 비교해 살폈다.

저자는 결론은 소위 ‘칼빈주의’라는 이름은 내적·외적으로 커다란 모순과 오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잘못된 이해는 칼빈이라는 종교개혁자에 대한 지배적인 이해와도 맞물린다고 보았다. 이런 전제로 칼빈과 개혁전통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칼빈주의자들을 지지하는 칼빈’이나 ‘칼빈주의자들을 반대하는 칼빈’이라는 옛 지배 담론들을 치워버려야 한다”고 잘라 말한다.

저자는 옛 접근 방식은 칼빈주의자라고 불리기를 꺼려하는 사람들을 칼빈주의자로 규정하고 나서, 칼빈주의자들의 신학의 특징을 판단하고 심지어 타당성을 재량할 목적으로, 칼빈과 소위 칼빈주의자들 사이의 맥락과 역사적 발전을 고려하지 않은 채 그들을 하나씩 비교해 나갔던 점에 주목한다. 그러한 분리와 비교는 개혁파의 전통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저해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옛 지배 담론은 역사적으로 세밀한 부분이나 변화하는 맥락들에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며, 변화하는 개혁 사상의 형태들을 거의 전적으로 교의학적 관점에서 분석한다는 전형적인 특징을 보인다고 짚는다.

“폭넓은 종교적, 신학적 맥락에서 개개의 신학자들을 분리시킨다면, 개혁신학의 등장, 곧 개혁파라는 구체적인 전통의 형성을 올바르게 분석할 수 없으며, 적절하게 이해할 수도 없다.”

저자는 개혁파 신학자들의 방대한 원전들을 직접 읽으면서 개혁파 전통에 속하는 방대한 신학자들의 사상이 얼마나 다양하고 역동적으로 꿈틀거렸는지를 섬세하게 논증한다. 이런 연구를 통해 개혁파에 대한 기존의 지배 담론들이 어떠한 오류를 가지고 있으며, 그 오류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밝힌다.

책의 각 장들은 각각 하나님의 작정, 그리스도의 속성이 가지는 충분성과 유효성,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구원 서정, 신자가 가지는 구원의 확신을 다루는 논문들이다.

특히 그리스도의 속상을 다루는 장에서는 학계의 특정한 흐름과 반대로 칼빈에서부터 아미로에게로 이어지는 직접적인 연결성이 없음을 보여준다.

저자는 “무엇보다 칼빈은 보편 은혜를 가르치지 않았으며, 하나님 안에 두 의지들이 있음을 부인하였고, 하나님의 궁극적인 의향 안에 어떠한 조건성이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칼빈은 조건들이 오직 하나님의 약속이 계시된 의지 안에만 있다고 가르쳤다”면서 “이러한 점들을 고려할 때 칼빈의 견해가 아미로와는 상당히 다르다는 것이 드러났다”고 말한다.

저자는 책을 통해 칼빈에 대한 왜곡을 조명하는 한편 멀게만 느껴지는 17세기 개혁파의 신학적 논의들이 21세기를 사는 우리의 구원 문제와 얼마나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는지를 알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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