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병인 목사
고병인가족상담연구소 소장

수치스런 기억들은 다양한 이미지로 기억의 창고에 저장되어 있다. 성장한 후에 전혀 다른 일이지만 아이 때의 안 좋은 상황과 조금이라도 비슷할 경우 그때 가졌던 감정이 살아날 가능성이 아주 높다. 그리고 이런 감정들은 마치 눈덩이가 눈사태로 돌변하듯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난다. 

어린 시절 경험한 말 한마디의 상처, 해결되지 않은 잠깐 있었던 사건, 이해할 수 없었던 아버지의 표정 하나라도 시간이 흐르면서 수치스러웠던 기억 속에 합쳐져 눈덩이처럼 내 안에 머물러 있다. 성인이 된 어느 날 그 수치스러운 감정이 다시 속에서 재발되는데 굳이 그와 비슷한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 해도 그러한 감정은 재발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감정 안에서 자발적으로 충동질하기 때문이며 새로운 일에 임하려는 우리를 얼어붙게 하거나 ‘아예 나 같은 놈(년)은 가능성이 없어’라고 주저앉게 만든다. 그리고 이는 자신의 수치심을 마음속 깊이 내면화하게 된다.

감정이 수치심으로 묶이게 되면 우리는 감정과 더욱 분리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마침내 수치심이 우리 안에 완전히 자리 잡으면 우리 안에 있는 그 어느 것도 좋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자신 안의 모든 것은 다 쓰레기같이 여겨져서 자신을 실패자라고 느끼게 된다. 이제 자신을 자기 자신이 아닌 어떤 대상으로 여기며 마치 무슨 물건이나 된 듯이 보기 시작한다. 수치심이 많은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은 자신과 부부, 친구, 가족, 직장, 사회공동체 그리고 영적 존재와의 관계를 맺지 못하고 결국 물질(알코올, 마약)과 행위(도박, 섹스, 일, 게임, 쇼핑, 종교, 학문, 쇼핑, 분노)와 관계 맺는다. 즉 물질, 행위중독과 관계 맺고, 스스로가 물질과 -행위로 전락한다. 그리고 가족을 물질과 행위로 취급하여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폭력을 구사한다. 

이때 주로 나타나는 모습이 바로 편견과 미움이다. 가족(특히 배우자)을 평가하고 조각조각 찢어놓고, 자신마저도 조각으로 찢는 사람이 된다. 자신과 분리된 해로운 수치심을 가진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현실에서 벗어난 환상적인 세계를 창출하셔 사는 수밖에 없다. 자신과의 이질감은 종종 만성적인 우울증을 동반하는데 이 우울증은 자신과 분리되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다. 아마도 신경증의 가장 비극적인 면은 자기가 자신을 부정하는 면일 것이다.

자기 자신이 싫기 때문에 자신을 부정하고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위장하려는 것은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거짓 자아가 만들어지면 참 자기의 모습은 숨겨진다. 거짓된 자기 모습으로 수년이 흐르다 보면 나중에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게 된다. 거짓된 자아의 양상이 주로 완벽주의와 일중독으로 나탄다는 것은 흥미로운데 이는 자신의 영혼에 구멍이 난 것을 밖에서 보상하려는 태도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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