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펜의 아시아(AD 610~1625) 천년여행 [ 210 ] / 사제 왕 요한 ⑮

▲ 중국 투루판 ‌‌사막 길, 사제왕 요한도 이 길을 지나갔을까.

 

을지 고는 석 달 걸린다는 계획으로 몽골 초원으로 출발했다. 출발에 앞서 크데시폰의 아론과 하만을 극비리에 십자군 진영 정탐으로 보냈다. 특히 유럽 십자군의 병기와 전술에 대한 정보를 은밀히 정탐해 보도록 명령했다. 언젠가는 십자군 전쟁 중에 유럽 군대와 싸운 경험의 이슬람 군대와 겨루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산자르 셀주크 술탄이 복수전으로 나설 경우 우리 카라 키타이는 자칫 우물 안의 개구리 꼴이 될 수 있다.

을지 고가 생각하는 카라 키타이는 문명지대인 콘스탄티노플과 북방 몽골 초원의 중간지대인 현실을 일단은 약점으로 판단했다. 문명의 중간에 끼어있는 처지였다. 그러나 초원의 이동종족들도 머지않아 정주민으로 바뀌어 갈 것이다. 자신의 나라야말로 초원의 종족과 정주민의 중간지대를 지키면서 양측 문명의 중재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을지 고는 자부심에 어깨에 힘이 주어짐을 느꼈다. 금번 여행 동안 케레이트의 옹칸 토크릴과 만나서 그의 속셈을 깊숙이 들여다볼 것이다. 옹칸은 중국식 왕이 몽골식 발음으로 옹이 됨으로 왕이면서 초원의 부족장이니 왕으로 표기로 할 수 있는 칸이다. 어법상으로는 왕왕이거나 칸칸이라고 중복 표현인 셈이다. 금나라 황제가 영주나 부족장의 높임 호칭으로 하사했다고 알고 있다. 이는 징기스칸과 연합하여 타타르를 물리쳐준 대접으로 금 황제가 내려준 호칭이다. 물론 그 이전부터도 그는 옹칸으로 불리기는 했었다. 

을지 고 자신이 아는 바로도 옹칸은 금나라에서도 몽골 초원의 1인자로 인정하는 인물로서 초원의 부족들을 이이제이의 방식으로 견제하기 위한 조정자로 대접하고 있는 사람이다. 또 서양이나 십자군 진영에서도 사제 왕 요한이 옹칸 토그릴이라는 신화를 굳혀간다고 들은 바 있다. 그러면 십자군 진영 사절단이 왜 카라 키타이에 와서 지원군을 요청하면서 선황제인 야율 대석을 사제 왕 요한으로 알고 있다는 말을 했을까. 이쪽이나 저쪽뿐이겠는가. 기독교국으로 정평이 나있는 나라는 케레이트 말고도 나이만이 있다. 십자군 진영에서는 나이만 족을 찾아가서도 카라 키타이에서와 비슷한 청원을 했을 것이다.

“이 사람들아, 다 준비했는가?”

을지 고는 몽골인 출신 유원정을 바라보면서 일행을 독촉했다. 우석도, 유드게스, 그루지아, 주영탁 등은 을지 고의 앞에 섰다.

“여러분, 국경에 도착하면 케리이트 병사들이 우리를 안내할 터이니 겁먹지 말고 자신감을 가져라. 케레이트가 우리보다 큰 나라라는 소문만 듣고 기죽지들 말고, 알았지?”

“네, 사부님!”

일행은 을지 고의 호칭을 사부님으로 통일하기로 했다. 군사 문제로 하는 여행이면 총사령관님이고, 정치 문제이면 국부나 국상으로 호칭하겠으나 문화와 종교부분을 중심으로 우호 증진 차 순행하는 것이니 사부님, 곧 선생님이 좋다고 생각했다.

을지 고 일행은 고비사막 입구에 들어섰다. 카툰성을 비켜서 톨라강 입구에서 케레이트 군사들을 만났다. 케리이트는 물론 초원의 이동 부족들은 국경이 없다. 목축과 함께 목초지를 따라서 이동하거나 다른 부족들과 크고 작은 전쟁을 할 경우도 그들이 점유한 영토는 움직인다.

케리이트는 안내 기병들을 따라서 3일 밤낮을 달렸다. 을지 고의 수행 젊은이들은 스승인 을지 고가 피곤할까봐서 번갈아가면서 안부를 묻곤 했다.

“이 사람들아, 여긴 본격 초원이다. 열흘 정도는 먹고 자지 않고도 달릴 수 있어야 생존하는 거야. 겨우 사흘 지났는데. 혹시 자네들이 피곤하여 그러는 건가?”

“아, 아닙니다.”

유원정은 역시 초원을 달리면서 살아온 사람이라 피곤은커녕 싱글생글이었다. 이틀을 더 달려서 옹칸의 지휘부에 도착한 을지 고는 옹칸의 영접을 받았다.

“옹칸이시여, 참 오랜만입니다. 매우 건강해 보이니 신의 마음이 흐뭇합니다.”

옹칸 토그릴은 이 같은 을지 고의 인사말에 만면에 웃음을 머금고 덥석 껴안았다.

두 사람의 이 인사는 서로가 안다. 몇 년 전 옹칸이 숙부와 권력 투쟁에서 패배해 쫓겨서 위구르를 거쳐서 카라 키타이로 들어왔을 때 야율 대석 황제가 옹칸을 도와준 일이 있었다. 그때 을지 고 역시 거지나 다를 바 없는 신세가 되어 도피 중이었던 토그릴을 도와주었다. 이 두 사람이 감격스러운 인사를 나눈 것은 바로 그 옛날을 떠올리면서였을 것이다.

그때, 감히 옹칸의 게르로 뛰어드는 겁 없는 아이가 있었다. 일곱 살쯤으로 보였다. 단정해 보이고 눈동자가 뚜렷한 아이였다. 을지 고가 궁금해 하자 옹칸이 아이를 불러 인사를 시켰다. 

“테무진! 이리 오라. 여기 이 어른께 공손히 인사 올려라. 큰아버지의 친구시다.”

“네. 안녕하세요. 테무진입니다. 저는 옹칸의 아들이기도 하며 하늘로 가신 예수게이가 저희 생부이십니다.”

테무진의 또렷한 인사를 받은 을지 고가 깜짝 놀란다.

“뭐! 예수게이가 너의 아버님이시라고…? 옹칸이시여. 이 아이가 예수게이의 아들이면 카불 칸의 증손자가 되는 구려….”

을지 고가 테무진의 두 손을 덥석 붙잡으며 아버지가 하늘나라로 가셨느냐고 묻는다. 

“을지 고 장군. 그대가 어찌 예수게이을 알고 또 카불 칸을 감히 아는가요?”

“모르시는가요? 바로 카불 칸께서 금나라 추적군에게 쫓겨 몽골 사막으로 피신한 우리 카라키타이 야율 카간을 도와서 금나라 추적군을 몰아냈으며, 그때 은혜를 입은 우리의 선황제이신 야율 대석은 카라 키타이를 창업했습니다.”

을지 고의 이 말을 들은 옹칸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생사는 이렇게 얽히고설키나보다면서 웃는다.

테무진은 을지 고와 옹칸의 대화 내용을 듣더니 나가보겠다면서 돌아섰다.

“테무진, 내 너를 곧 다시 한 번 만나고 싶구나.”

을지 고의 말을 듣고 발길을 멈춘 테무진은 뒤돌아서서 말없이 인사를 한 번 더 올리고 옹칸의 게르 밖으로 나갔다.

“옹칸이시여, 어찌 저 아이가 옹칸의 집무실도 함부로 뛰어들 수 있습니까?”

“네, 저 아이 부친 예수게이와 나는 안다를 맺은 관계입니다.”

“아, 네.”

‘안다’는 몽골인들의 관습으로 의형제를 맺거나 생명을 서로 지켜주는 은인관계를 맺는 몽골어이며 영어로는 ‘blood brother’로 표현할 수 있는데, 서로의 피를 그릇 하나에 담아서 절반씩 나누어 마시는 행위다.

“예수게이는 내가 숙부와 권력 싸움에서 다시 승리할 수 있도록 도왔어요. 예수게이가 없었으면 내가 카라키타이 등을 다니면서 떠돌이생활을 했을 때 이미 죽고 없어졌겠죠. 그럼 오늘의 케레이트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 을지 고 장군! 앞으로 나를 좀 도와주시오. 나는 케리이트의 옹칸으로만 인생을 마치고 싶지 않습니다.”

여기까지 말하던 옹칸이 잠시 말을 멈춘다. 옹칸 집무실 주변 분위기를 살피는 것 같았다. 옹칸이 곧이어서 말한다.

“우리는 초원의 터 위에 정주민 문화와는 다른 기독교 제국을 만들고 싶어요. 일찍이 중국인들이 우리 초원의 인종을 말하여 흉노족이라 했으나 인류 문명사로 볼 때 우리 동족들이 하나님의 복음인 기독교를 중국이나 몽골의 북방 드넓은 초원 백성들에게 선물했어요. 이제 우리가 기독교의 복음을 아시아일대 정주민들에게 먼저 전파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초원이 단일제국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이 일을 위해서 을지 장군이 힘을 보태주세요.”

옹칸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나 몽골 초원에서 케리이트가 가장 큰 나라이기는 할지 몰라도 크고 작은 여러 부족국가들이 있다. 케리이트에게는 지고 싶지 않은 나이만 부족, 두 나라는 기회만 있으면 서로 치고 싸우지만 두 나라 모두 거의 전체 백성이 기독교 신자이다. 나이만뿐인가. 메르키트족, 타타르족, 탕구트족, 위구르나 돌궐족은 중국과 대결하면서 중앙아시아 쪽으로 진출했으나 20여개 종족들이 쉽사리 종족 연합이나 통합에 순순히 응하겠는가. 그것도 북방초원의 종교들 중에는 불교나 이슬람종교는 물론 범 몽골족으로 표현하는 종족들이 텡그리 곧 샤머니즘이라 하면 더 잘 이해되는 무속 종교에 깊이 절어 있는데 옹칸의 기독교 제국은 쉽지가 않을 것이다.

“옹칸이시여. 기독교 제국은 저희 카다 키타이도 이미 국가 정책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도 절반은 이동족과 정주민의 혼합이기는 하지만 북방의 초원은 모두가 강물처럼 흐르는 인심인데 많은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요?”

“을지 장군. 나는 조금 전 테무진을 보셨습니다만 장차 저 아이를 잘 길러서 기독교 제국을 완성하는 과정을 개척할 계획입니다.”

을지 고는 옹칸의 말에 가슴이 철렁, 그의 심장이 쿵쿵쿵 요란하게 뛰었다. 그가 보기에도 테무진의 첫 인상이 어딘지 모르게 애어른으로 보일만큼 침착하고 은근한 그의 눈빛에서 어떤 예감이 느껴졌는데 토그릴이 테무진을 장차 초원의 기독교 제국을 성취할 인물로 생각한다니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

“을지 장군! 테무진의 증조부이신 카불 칸은 초원의 부족들이 한마음으로 존경해오는 지도자입니다. 그가 후계자를 아들이 아닌 사람으로 세웠던 역사는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내 친구 예수게이가 지금 살아있으면 기독교 제국으로 가는 길을 앞당길 수 있었을 거요. 그래서 나는 테무진을 중심으로 몽골초원을 기독교 단일국가로 만들고 싶습니다. 도와주시오.”

“돕다마다요. 저희 카라 키타이도 중앙아시아와 콘스탄티노플은 물론 우선 동유럽 국가들과 사귀면서 장차 큰 그림을 그리고 싶습니다.”

을지고와 옹칸 토그릴 두 사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서로 뜨겁게 껴안았다. 

 조효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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