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교회 성 니콜라스 성당 봉독자 박노양 형제에게 듣는 정교회 신앙과 역사

▲ 한국정교회 성 니콜라스 성당 내부를 설명하고 있는 박노양 형제.

 

고집스럽게 지켜온 예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만나는 현장

“교회의 전통이 감싸고 있는 것은 신앙의 본질, 
그 하나에 집중하는 속에는 생동감과 자유가 넘쳐”

 

“2천 년 전의 그리스도인들이 오늘날 정교회 성당에서 함께 예배드린다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입니다. 정교회는 그만큼 초기 기독교 예배 전통을 그대로 지켜내고자 힘써왔습니다. 예배를 현대화 한다는 불순한 생각은 가질 수 없습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한국복음주의교회연합(한복연)이 같은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고백하면서도 서로 다름으로 보여 온 교회들 간의 만남을 시도, 5월 25일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에서 첫 만남이 시작됐다. 연속기획포럼 ‘한 몸, 다른 모습. 형제, 자매 된 교회 함께 만나기’ 첫 시간에 가톨릭, 성공회와 함께 정교회의 전통과 한국 전래에 대해 설명한 박노양(52) 그레고리오스 형제는 위트 있는 말로 정교회의 특성을 소개했다.

2천 년 전의 예배 전통을 고집스럽게 지켜오는 것을 고리타분하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박노양 형제는 오히려 본질을 놓치지 않으려는 그 속에서 생동하는 신앙과 충만한 자유를 경험했다고 고백했다. 더 나아가 이처럼 느리지만 본질을 부여잡는 신앙 전통이 세상의 속도전에 방향 잃은 오늘의 교회에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제안도 조심스럽게 내놓았다.

본질 속에서 발견하는 자유함, 이것이 기독교 신교 신학도였던 그가 정교회의 품에 안기게 된 이유였다. 한국정교회 성 니콜라스 대성당에서 봉독자로 봉사하는 박노양 형제를 만났다. 

# 예배의 감격, 경험적 신앙으로 이끌다

“정교회가 2천 년 간 고집스럽게 지켜온 교회의 전통이 감싸고 있는 것은 신앙의 본질입니다. 본질에 집중하는 속에는 생동감과 자유가 넘칩니다.”

호칭을 고민하는 기자에게 그는 “형제면 충분하다”고 했다. 한복연 포럼에서 성직자가 발제한 가톨릭이나 성공회와 달리 유일하게 평신도 신분으로 나선 것을 의아해하자 그는 자신이 맡은 ‘성서봉독자’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내보였다.

정교회의 성직은 삼중직으로 서품을 받는 주교, 사제, 보제가 있고 그 외에 다른 직제는 없다. 다만 교회 안에서 예배를 돕는 봉독자, 성가대장, 성찬을 돕는 복사 등을 ‘준 성직’으로 부른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성 세르기오스 신학교에서 정교회 신학을 공부한 박노양 형제는 정교회의 역사와 전통에 대해 설명하는 데 막힘이 없었다. 고대 그리스도교의 동방 전통을 계승하는 정교회는 10세기 동안 고대 그리스도교 세계의 수많은 논쟁과 이단투쟁 속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의 정수들과 정신, 신앙적 삶의 방식들을 지켜낸 교회로 자부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에는 118년 전 러시아 정교회를 통해 전래됐다. 러시아 공산혁명으로 선교활동이 저지되면서 오랜 세월 힘겨운 시간을 보내야 했고 일제 식민지 시대와 냉전시대 등 외적 환경은 러시아에서 전래된 한국 정교회의 선교에 가장 큰 장애로 작용했다. 그래서인지 오늘날 한국 교세가 500명 남짓으로 집계되는 정교회는 다소 생소하게 여겨진다.

“한국 정교회, 러시아 정교회, 그리스 정교회 등은 신교처럼 교파적 개념이 아니라 단지 지역적 민족적 문화적 특성을 드러내는 개념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어디에 있든 정교회는 하나의 신앙과 동일한 전례와 영적 삶을 구현하고 있습니다.”

성찬예배는 정교회 신앙의 정수이고 신화의 여정을 지치지 않고 걸어갈 수 있게 해주는 장치이다. 그래서 정교회는 무엇보다 4, 5세기 초대교회 예배 전통을 지켜가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매 주일 성찬예배를 드리는데 봉독자는 2시간 남짓 사제의 인도로 예배가 진행되는 동안 수시로 성서를 읽고 회중 찬양을 선창하는 등 봉독자의 역할이 크다고 소개했다. 한국정교회 출판사의 번역자로 일하면서 평일에도 매일 오후 5시에 드리는 예배에 성서봉독자로서 봉사하고 있다.

“하느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간다는 것, 신화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전례적인 삶입니다. 정교회의 모든 예배는 하나의 ‘기억’에 바탕 두고 있는데, 이때 기억은 단지 과거의 회상이 아니라 우리의 구원이 있게 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 창조와 타락, 회복과 마지막 심판을 관통하는 하느님의 구원사 전체를 내 삶의 현재 사건으로 경험하게 해주는 것으로서의 ‘기억’입니다.”

2시간 동안 진행되는 주일 성찬예식만 보더라도 신교에 비해 복잡한 듯 보이는데 박 형제는 오히려 “정교회의 신학과 예배는 단순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경험하도록 인도하기 위해 다른 곁가지들을 제거하는 그 단순함이 정교회 신앙과 신학의 바탕이라고 했다.

“의미 없는 나열이라면 복잡하겠지만 예배 예식이나 1년 동안의 예배 모두는 하나의 드라마처럼 연결되어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 사역, 예수님의 일생을 경험할 수 있도록 배치돼 있습니다. 매일 어머니의 젖을 먹어도 질리지 않는 것처럼, 똑같은 예배와 성구지만 믿는 자들의 영적 양식이기에 매번 새로운 감격과 깨달음을 얻습니다.”

정교회의 신앙 본질을 향한 집중과 단순함이 기독교 신교 신학도였던 그를 매료시켰다.

# 오감으로 드리는 예배

한국에서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가톨릭 영성에 대해 공부하기 위해 프랑스에서 유학하면서 정교회를 만났다. 종교개혁은 당시 부패한 가톨릭으로부터 복음의 핵심, 본질로 돌아가자는 것이었지만 그렇게 출발한 신교에서 오히려 과거로 회귀한 듯한 모습을 발견할 때면 갈등이 컸다. 그런 그에게 신앙의 본질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그리스도교 전통을 강하게 지켜가는 정교회는 새롭게 다가왔다.

“주교들의 도포자락이나 긴 수염, 복잡한 예식으로 볼 때 상당히 보수적이고 답답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본질 하나에 몰두하고 그 외의 것에는 신앙이나 신학이나 상당히 자유로운 것을 느꼈어요.”

그 자유는 방종이 아니라 “중요한 것 한 가지에 집중하면 중요하지 않은 것에 끌려 다니지 않을 수 있게 되는 자유”라고 설명했다.

“서구 신학은 하나님에 대해 많은 말로 설명하지만 사실 하나님은 인간의 말로 다 설명될 수 없지요. 말로 표현하려다 사변에 빠지기도 하고요. 정교회는 초대 교부 때부터 그걸 경계하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교제하는 실존적이고 경험적인 태도를 굳게 견지해왔습니다. 그 핵심이 성찬예배입니다. 먹고, 마시고, 냄새 맡고, 머리 숙여 절하는 등 몸으로 드리는 예배는 인간의 변덕스러운 지성에 휘둘리지 않고 오감으로 하나님을 경험하고 그 신비에 잠길 수 있도록 이끕니다.”

박 형제도 때로는 정교회의 ‘느림’이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현대사회는 자기 피알 시대가 아닌가. 기독교 신교처럼 전도 열심히 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정교회의 장점을 알리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급변하는 세상을 따라가기에 급급한 교회들이 자칫 신앙의 본질을 잃어버리고 관심이 분산되는 것을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세상에 대한 무관심이 아니라 변화무쌍한 세상에서 변함없이 진리를 지켜내는 신앙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 복음의 능력이라는 생각이다.

“신앙은 그것을 지켜가기 위해 매일 투쟁하는 삶일 수밖에 없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믿음을 놓치지 않기 위해, 내 앞의 수많은 유혹을 물리치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향해서 나 자신을 돌리는 평생의 여정입니다.”

오후 5시,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데 평일 예배 시간을 알리는 성 니콜라스 대성당의 종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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