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에게서 희생정신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은 용감하게도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내놓으셨습니다. 
남을 유익하게 하는 일, 이것은 자기소모를 의미합니다. 
즉 남에게 유익을 주려면, 
자신의 희생이 불가불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 허달원 목사
한샘교회 담임

◈ 월 : 참된 경건 / 마가복음 7:1~37

어느 날 예수님의 제자들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보는 앞에서 음식을 먹게 되었습니다. 이때 제자들은 손을 씻지 않고 먹었습니다. 즉, 그 당시 유대 사회의 전통인 장로의 유전을 어긴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제자들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고 몹시 못마땅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의 유전을 준행치 아니하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나이까?”(5절) 하고 예수님께 항의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너희가 너의 유전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9절),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15~16절)하고 대답하셨습니다.

이상의 대화에서 우리는 참 된 경건이 무엇임을 알게 됩니다. 즉 참된 경건은 깨끗한 척 위장하는 것이 아니고, 깨끗하게 사는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들 마음속에는 음란, 도적질, 살인, 간음, 탐욕, 악독, 속임, 음탕, 흘기는 눈, 훼방, 교만 등 악한 생각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것들이 밖으로 행동화 될 때 사람이 더러워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21~23절).

▶ 기도 : 참된 경건을 이뤄 더러운 생각들을 제거해 주소서.

 

◈ 화 : 예수님을 보는 눈 / 마가복음 8:1~38

본문의 27~29절에 보면,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는 눈이 두 가지 형태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형태는, 예수님을 세례 요한이나 엘리야 등 선지자 중 한 사람으로 보는 무리가 있었고, 다음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보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견해는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대개 보면 믿지 않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석가모니, 공자, 소크라테스 등 성현 중의 한 사람으로 봅니다. 그러나 믿음을 가진 우리들은 예수님을 죄인의 구주로 의심 없이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들이 예수님을 죄인의 구주로 의심 없이 믿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우리들의 지식으로, 또는 오랜 연구의 결과로 믿게 된 것이 아닙니다.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 16:17) 하신 말씀처럼, 하나님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알게 되고 믿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고전 12:3절에 보면,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기도 : 예수님을 더욱 깊이 알고, 더욱 진실히 교제하게 하소서.

 

◈ 수 : 제자들의 미급한 생각 / 마가복음 9:1~50

지금 읽은 말씀에 보면, 제자들의 생각이 매우 어리석고 미급했던 일들을 여러 번 보게 됩니다. 첫째로, 기도 없이 귀신을 쫓아내려고 한 것이 대단히 어리석었습니다.

14~29절까지 보면, 어떤 아버지가 자기 아들을 제자들에게 데리고 와서 간질하는 귀신을 쫓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때 제자들은 자기네들의 수단으로 귀신을 쫓아내려고 했기 때문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즉, 기도의 방법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실패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기도 없이 하는 일들은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음 두번째로, 제자들이 저마다 높고자 경쟁한 일이 어리석었습니다. 33~34절에 보면, 제자들이 길을 가다가 서로 “누가 크냐”고 쟁론했습니다. 우리들 마음속에도 때때로 내가 잘났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이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높고자 하는 자를 낮추시고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은 자기를 낮추는 겸손한 마음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 기도 : 모든 생명 가운데 주님이 함께 하고 계심을 깊이 알고, 먼저 섬기는 자 되게 하소서.

 

◈ 목 : 예수님이 오신 목적 / 마가복음 10:1~52

지금 읽은 말씀 가운데 45절을 보면,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무엇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하셨습니다. 우리들은 예수님을 본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섬김을 받겠다고 생각하니까 자존심이 상하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불만, 불평, 원망을 하게 되는 것 역시, 섬김을 받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와 정반대로, 남을 섬기겠다고 생각하면 문제는 아주 달라집니다. 자존심 상할 일이 없고, 원망, 불평, 불만할 일이 조금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남 섬기는 생활은 마음의 평화가 넘치는 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또 우리들은 예수님에게서 희생정신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은 용감하게도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내놓으셨습니다. 남을 유익하게 하는 일, 이것은 자기소모를 의미합니다. 즉 남에게 유익을 주려면 자신의 희생이 불가불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 기도 : 목숨까지 내어주신 주님의 그 사랑을 본받아 오늘 우리가 살게 하소서.

 

◈ 금 : 하나님이 받으시는 기도 / 마가복음 11:1~33

25절에,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형제를 용서한 다음에야 하나님께 상달하는 기도를 드릴 수 있음을 알게 됩니다. 즉 형제와의 사이에 마음의 38선이 그대로 있는 상태에서 하는 기도는, 그 기도가 아무리 길게, 크게, 유창하게 하는 기도일지라도 하나님의 응답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많은 사람들과 접촉하며 삽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다 내 기분을 맞추어주거나 내 욕망을 채워주지 못합니다. 오히려 내 감정을 상하게 하고, 내 소유에 손해를 끼칩니다. 이럴 때마다 우리들에겐 용서의 정신이 필요한 것입니다. 즉 손해를 주고 내게 괴로움을 주는 이웃과 형제를 용납하는 너그러움이 있어야만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응답하시는 진실한 기도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내게 용서의 실천이 없다면, 하나님도 나를 용서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어떤 기도도 응답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본문 말씀을 다시 읽어 드립니다.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 기도 : 주님이 저희를 용서하셨듯이 흔쾌히 용서하게 하소서.

 

◈ 토 :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연보 / 마가복음 12:1~44

본문에서 하나님은 어떤 연보를 칭찬하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여유가 많은 가운데 바치는 연보보다 여유가 없는 가운데 바치는 연보를 더 가치있게 평가하십니다. 본문 44절에 보면, “저희(부자)는 다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생활이 부요한 상태에서는 아무리 거액의 연보를 한다 할지라도 생활의 위협은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생활이 구차한 사람은, 아무리 소액의 연보를 한다 할지라도 그 즉시 생활이 곤란해집니다. 즉 구차한 가운데서 바치는 연보는, 생활의 위협을 무릅쓰고 드리는 연보이기 때문에 가치가 더 있는 것입니다.

두번째로, 하나님이 칭찬하시는 연보는 자기소유 전부를 바치는 것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과부는 비록 두렙돈의 연보를 했을지라도 그 연보가 자기 생활비 전부였기 때문에 예수님의 칭찬을 받은 것입니다. 본문의 과부가 자기 생활비 전부를 바친 그 후 어떻게 됐겠을까요?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았을 것입니다.

▶ 기도 :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마음으로 헌금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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