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펜의 아시아(AD 610~1625) 천년여행 [ 212 ] / 사제 왕 요한 ⑰

▲ 중국 투루판 일대에서 만난 사막지역에 자리잡은 민가.

 

거대한 초원의 중심에는 케레이트의 옹 칸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는 정치적 능력이나 군사적으로도 단연 초원의 최고봉이었다. 그러나 초원의 생리가 어디 그런가. 몽골 초원에는 국경이나 영토 개념이 없다. 흐르는 물처럼 판세에 따라서 더 좋은 위치를 차지한다. 더 좋은 위치란 짐승들의 먹이가 많은 곳, 푸른 풀이 무성한 곳, 풀이라고 해서 다 풀이 아니다. 풀들도 초지에 따라서 영양가가 더 좋은 풀이 있다. 짐승 먹이는 물론 타종족의 기습을 당했을 때 공수 기능이 확보되는 지형이면 더 좋을 것이다.

주 종족들의 위치는 초원의 중앙에 케레이트족이 자리 잡았고, 그 동쪽으로는 타타르족, 서쪽에는 나이만족이 버티고 있었다. 나이만족은 케레이트의 토그릴(옹 칸)이 몽골 초원을 통일하고 자기 종족의 지배 아래 하나의 종교 제국을 만들려 한다는 정보를 들었다. 나이만은 케레이트와 동일한 기독교, 그것도 네스토리우스 파와 가끔씩 경쟁력이 발동하는 라이벌 관계였다.

두 강적들이 마치 드넓은 초원에는 자기네들뿐이라는 식으로 전투 대형을 자리 잡았다. 사막의 종족들도 유사하다지만 몽골 초원 종족들 간에 전쟁이 일어나면 덩치가 큰 나이만과 케레이트 같은 부족은 대개 선전포고가 있으나 감정 대결의 경우는 기습 공격도 서슴지 않았다.

케레이트의 옹 칸과 나이만의 군주 타양 칸이 각각 자기네 지휘부 중심에 섰다. 양측은 모든 전사들이 총사령관인 군주의 지휘를 받는다. 그들 전사들은 기병 일색이다. 군사들이 포진한 뒤쪽으로 종족 전체가 함께 이동을 하고, 전투가 벌어질 경우 전진과 후퇴를 동시에 하게 된다. 여인들이나 노약자는 물론 이동 주거지와 예비 가축들도 함께 움직인다. 전사용 군마들은 예비마로 전사들이 직접 전투 중에도 관리해야 한다.

옹 칸이 밀집된 군진 안에서 모습을 드러내면서 소리친다.

“나의 형제 군주 타양 칸이시어! 어찌하여 이렇게 분란을 일으키시오! 우리는 서로가 존중하고 보호해야 할 다 같은 하나님의 백성들인데 왜 싸워야 하는지를 모르겠소.”

옹 칸의 목소리에서는 슬픈 기색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나이만족이 기독교 제국의 꿈을 계획하는 자신의 속마음을 알고 있음에 대해서 모르고 있었다. 또 안다 한들 어느 종족이 독식하고 독점하는 것이 기독교 제국일 수가 없다. 초원의 통일제국은 그것이 기독교 제국이니 특정 종족 독점물이 아니라는 확신을 옹 칸은 가지고 있었다.

카라 키타이의 을지 고 장군이 그의 일행과 함께 옹 칸 진영에 있었다. 케레이트 방문 중에 전쟁이 일어났으니 다른 도리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함께 위험을 감수해야 하고 만약 옹 칸의 케레이트가 나이만에게 몰려 위기를 맞는다면 더 적극적인 전투요원이 되어야 할 처지였다. 일단 을지 고는 숨을 죽인 채 양측 사령관들의 처신을 좀 더 지켜볼 것이다. 이동종족의 전쟁은 경우에 따라서는 축제 같기도 하다. 전사들과 그 가족들, 중환자가 있거나 낳은 지 3일 밖에 되지 않은 아이들까지도 함께 하는데, 피차 여유가 있어야 하고, 어떤 경우는 피비린내가 나고 살육이 벌어지는 생사의 갈림길인 전쟁터가 마치 축제의 마당처럼 되기도 한다. 그러나 양측이 결단내야 한다는 판단이 서면 전멸에 가까운 전세가 된다. 그때 패전 종족의 여인들은 상대 종족의 노비나 처첩이 되고, 병약한 자들은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험난한 초원의 대결장이다.
나이만의 타양 칸이 되받아서 소리친다.
“너 이놈, 토그릴! 네 놈이 감히 우리 나이만 부족을 경멸하려들어? 이놈아, 네 놈이 이 거대한 초원의 주인이요 황제가 되겠다는데 그럼 어디 내게 덤벼 봐라!”

옹 칸은 나이만이 왜 전쟁터로 자신을 불러냈는지를 알아차렸다. 밤말은 쥐가 듣고 낮말은 새가 먼저 듣는다더니 을지 고 장군과 며칠 전에 발설한 것이 처음인데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옹 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형님! 이제 알았소이다. 초원 부족들을 통일하고 황제가 되고 싶은 사람은 당신 타양 칸이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그게 이심전심이라, 내 마음이 그러하니까 너도 그렇겠지가 되는 겁니다. 나 오늘부터 타양 칸 당신처럼 부족들을 통합하고 덕망과 지도력이 있는 인물, 무엇보다도 기독교 사상으로 잘 훈련된 지도자를 찾아서 황제로 모시도록 하겠소이다. 황제의 대상에는 타양 칸 당신도 만만찮은 후보자이니 안심하고 돌아가서 민심을 다스리고 황제의 덕망을 쌓으시오. 그럼 오늘의 전투는 여기서 끝냅시다.”

옹 칸의 이 말에 나이만 부족의 장수들이 웅성거린다. 옹 칸의 말에 공감해서가 아니라 자기들의 군주 타양 칸이 말싸움에서 기선을 제압당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나이만의 후계자인 태자 구출룩이 나서서 전투 대형을 갖추도록 명령하고 있었다.

긴박한 순간이었다. 을지 고의 생각이 복잡해진다. 몽골 초원의 두 강자가 치고받으면 그 결과는 간단한다. 이들은 장차 카라 키타이로서도 중앙아시아와 몽골 초원을 연계하여 유럽 기독교에 대응할 수 있는 아시아의 기독교 제국을 이루어내는데 주요 자산들이다. 무엇보다도 함께 믿고 협력해야 할 예수 제자들이 서로 싸우고 죽고 죽이는 일을 서두르다니 이는 안 될 말이다. 하나님이 용납지 않을 것이다. 원수를 사랑하라 하신 말씀을 잊었는가? 십자가에서 대신 죽어주신 예수를 이렇게 배반할 수 있는가? 을지 고는 사태 수습에 나서고 싶었다. 옹 칸에게 양해를 구했다. 그리고 외쳤다.

“존경하는 타양 칸이시여! 그동안 강건하셨습니까? 저는 카라 키타이에서 온 을지 고입니다. 케레이트 토그릴 칸을 뵙고, 가능하다면 대 군주 타양 칸을 찾아뵙자는 생각을 했는데 이거 전쟁터에서 두 분 어른들이 싸우는 모습을 보고 말았습니다. 칸이시어! 소장이 외람되지만 소견 한마디 할 수 있도록 허락하소서.”

을지 고는 말을 멈추고 타양 칸의 반응을 기다렸다. 타양 칸은 곧바로 한걸음 앞으로 나서면서 말했다.

“그대가 정녕 야율 대석 카간의 제갈량 을지 고 장군이란 말이오? 사실이오?”타양 칸은 물론 그의 진영이 웅성거렸다. 그들 모두가 놀라고 있었다. 타양 칸은 물론 그의 심복 참모들은 카라 키타이의 을지 고를 잘 안다. 외국 정보망이 있는 부족의 군주들이나 그 장수들 중 을지 고의 충성과 용맹 그리고 덕망과 지혜를 들어서 알고 있었다.

“대 군주 칸이시어. 나이만과 케레이트는 친형제보다 더 가까운 형제입니다. 저희 카라 키타이도 마찬가지이지만 우리들은 예수님 안에서 다같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더 이상은 미워해서도 안 되고 싸움이나 전쟁은 하지 않아야 합니다. 섭섭한 일이 있으면 서로 마음을 열고 대화로 풀어야 합니다. 그리고 타양 칸께서 초원의 통일과 기독교 제국을 말씀하셨지요? 저희 카라 키타이가 아랄해, 카스피해, 흑해까지도 평정하여 콘스탄티노플을 경계로 로마제국과 선의의 경쟁을 하는 중앙아시아나 정주민의 본거지인 한족의 땅은 물론 몽골 초원까지 하나님의 평화로운 나라를 이루어내는데 함께 할 수 있습니다.”

나이만 군주 타양 칸은 을지 고의 말을 듣고 크게 웃었다. 그리고는 활과 장칼을 풀어 참모에게 넘기고 단숨에 그의 자주빛깔의 말을 몰아 양 군진의 한 가운데로 와서 멈춘다.

을지 고도 비무장으로 말을 달려 타양 칸 가까이로 다가갔다.

“오호! 을지 고 장군! 그대를 이 험한 꼴로 만나다니…?”

타양 칸이 말에서 뛰어내린다. 을지 고 또한 말에서 내려 타양 칸과 악수를 하고 어깨를 마주치며 칸의 등을 어루만졌다.

타양 칸은 을지 고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말했다.

“장군! 카라 키타이에서 장군은 카간의 어버이도 되시고 백성들의 사제요 사제 왕 요한으로 존경받는다는데 그게 사실이오?”

“우리의 군주이신 야율 대석 카간께서 갑자기 떠나셨으니 아직 어린 카간을 보필하는 것이죠. 사제 왕 요한은 우리 카라 키타이에는 많이 있어요. 사도 요한과 같은 신앙을 지닌 사제들에게 주는 명예 호칭입니다. 십자군이 우리의 야율 대석 카간에게 준 명예로운 선물이고 하나의 부채입니다. 요즘 들으니 제가 아니라 타양 칸 군주가 사제 왕 요한이시라고도 하고 토그릴 칸더러 사제 왕이라고도 소문을 내는 유럽 십자군 전략입니다. 지원군 동원전략이 아닐까요. 칸이시어! 이미 유럽 십자군도 타양 칸의 덕망과 지도력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금번 케레이트와의 전투는 이 정도에서 거두심이 어떨지 이 사람, 같은 기독교 신자로서 호소드립니다.”

이렇게 말하던 을지 고가 무릎 하나를 꺾고 군례를 올리면서 타양 칸의 마음을 읽으려고 애썼다.

“을지 고 장군! 이러시면 안 되오. 일어나시오.”

타양 칸의 억센 손이 을지 고를 붙잡아 일으켰다.

“나 오늘은 일단 돌아가겠소. 오랜 만에 그리운 친구를 만났으니 이 기분으로 돌아가겠소. 며칠 후 내가 한 번 초청하리이다.”

을지 고의 답변을 듣지도 않고 말에 오른 나이만의 사나운 군주 타양 칸은 자기 군진으로 돌아갔다. 을지 고는 그 자리에 서서 나이만 진용을 바라본다.

“토그릴! 오늘은 이만 하자.”

타양 칸은 일방 선언을 하고 나이만 전사들과 그의 부족을 이끌고 전장을 떠났다.

조효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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