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하든지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들 앞에서 진실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완전한 행위가 아니라 
진실하고 솔직한 행동인 것입니다.”

 

▲ 허달원 목사
한샘교회 담임

◈ 월 : 악을 선으로 / 누가복음 9:1~62

어느 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실 때 사마리아를 통과 하시게 됐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수님의 일행을 배척하고 자기 동네에 못 들어오게 했습니다. 
여기에 대하여 야고보와 요한은 몹시 분노하고, 당장에 하늘의 불로 사마리아 사람들을 멸망시키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들의 이와 같은 생각을 책망하셨습니다. 그리고 다른 촌으로 돌아서 가셨습니다(51~56).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의 용서 정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즉 지금 야고보와 요한은 사마라아인들을 감정으로 대결하려 했지만, 예수님은 사랑과 용서로 대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예수님의 이와 같은 정신을 본 받아야 합니다. 즉 악을 선으로 대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악을 선으로 대하는 것은 바보천치 같고 지는 것 같아서 그렇게 유쾌하게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악을 선으로 대하는 것은 처세에 있어서 가장 현명한 일이고, 이것이 곧 승리하는 방법입니다. 
▶ 기도 : 악을 선으로 갚을 수 있는 힘을 주소서. 

 

◈ 화 : 세 가지 기쁨 / 누가복음 10:1~42

사람들은 슬픔을 싫어하고 기쁨을 원합니다. 그런데 지금 읽은 말씀에 보면, 세 가지의 기쁨을 발견하게 됩니다. 
첫째로 70인의 기쁨(17절)입니다. 이들은 귀신이 항복한 것으로 기뻐했습니다. 
둘째로 예수님이 강조하신 기쁨(20절)입니다. ‘귀신들이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구원의 즐거움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구원의 즐거움은 보화를 얻는 것보다 더 크고, 세상을 정복하는 것보다 더 큽니다. 왜냐하면, 이 즐거움은 하늘나라에 가서 영원토록 누릴 즐거움이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예수님의 기쁨(21절)입니다. 예수님의 기쁨은 성령으로 말미암은 기쁨입니다. 
오늘 우리도 성령을 충만히 받고, 성령께 순종해서 살면, 성령이 주시는 이 기쁨을 충만하게 가질 수 있습니다. 
▶ 기도 : 성령이 주시는 기쁨과 감사를 누리며 살게 하소서.

 

◈ 수 : 바리새인의 외식 / 누가복음 11:1~54

본문 말씀 37~54절을 보면 바리새인들의 외식적인 행동을 살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 바리새인에게는 겉만 깨끗하게 하는 외식이 있었습니다. 즉 그들은 밥 먹기 전에 손  씻는 규례는 지키면서, 그들 속에 있는 탐욕과 악독의 죄를 청산하지 않았습니다(37~41).
둘째로 바리새인들에게는 작은 것은 지키면서 큰 것은 버리는 외식이 있었습니다. 즉 바리새인은 십일조는 바쳤으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없었던 것입니다(42).
셋째로 바리새인들에게는 대접을 받기 위해 자기를 꾸미는 외식이 있었습니다. 즉 그들은 평토장한 무덤과 같이 행동했습니다(43~4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외식의 죄는 대단히 큰 것임을 여러분은 아시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외식의 죄는 하나님을 속이려고 하는 죄이기 때문입니다. 어찌하든지 여러분들의 생활은,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들 앞에서 진실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완전한 행위가 아니라 진실하고 솔직한 행동인 것입니다.
▶ 기도 : 진실을 담아 하루를 살고, 사람을 대하여 그리스도를 나타내게 하소서. 

 

◈ 목 : 부자의 어리석음 / 누가복음 12:1~59

본문 13~21절 말씀을 보면, 어떤 부자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예수님은 이 부자를 어리석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이 부자를 어리석다 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첫째로 개인주의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개인주의는 자기를 가장 잘 되게 하는 방법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즉 개인주의는 자기를 망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개인주의는 하나님의 축복을 막는 행동인 까닭입니다. 행 20:35절에 보면,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둘째로 본문의 부자를 어리석다고 한 것은 그가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즉 이 부자는 영적으로 비참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다만 육신적인 부요만을 만족하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입니까? 개인주의보다 이타주의, 육신적인 부요보다 영적인 부요를 더 중히 여기고 여기에 더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 기도 : 하나님 안에서 부요함을 아는 자 되게 하소서.

 

◈ 금 : 회개치 않는 자에 대한 대책 / 누가복음 13:1~35

본문 1~5절을 보면 두 가지 큰 사건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첫째 사건은 빌라도의 손에 갈릴리 사람들 몇이 애매하게 피살된 사건이고, 두 번째 사건은 실로암 망대가 무너지는 바람에 18명이 압사한 사건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대하여 당시 사람들은 저들의 죄가 많은 까닭에 벌을 받아 죽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전연 다른 견해를 가지셨습니다. 2~3절에 보면, ‘너희는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음으로써 모든 갈릴리 사람들 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 말씀 속에서 깨닫는 바가 큽니다.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한다’고 하신 말씀은 곧 우리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제부터 자기 허물과 실수를 깊이 반성하고 통회 자복하므로 날마다 하나님의 징계를 피하는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기도 : 회개하여 회복할 수 있는 생명임을 알고 감사하게 하소서. 

 

◈ 토 : 겸손할 이유 / 누가복음 14:1~35

본문 7~11절의 말씀은 겸손함여야 할 것을 교훈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면 겸손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로, 겸손하지 않으면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네가 누구에게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상좌에 앉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은 경우에, 너와 저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 주라 하리니, 그때에 네가 부끄러워 말석으로 가리라’ (3~9) 하셨습니다.
둘째로, 겸손하여야 할 이유는, 이것이 곧 높아지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청함을 받았을 때에 차라리 가서 말석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벗이여 올라앉으라 하리니, 그때에야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이 되리라’ (10) 하셨습니다.
앞으로 여러분의 신앙생활을 겸손한 마음으로 이끌어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잠언 18장 11절에 보면,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라고 했습니다.
▶ 기도: 아무리 강조해도 무리가 없는 겸손, 그 자리에 오늘도 나아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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