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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 키타이 발톱 >1<알로펜의 아시아(AD 610~1625) 천년여행 [ 214 ] / 사제 왕 요한 ⑲
조효근  |  dsr12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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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0호] 승인 2017.07.26  12: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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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란주의 한 박물관에서 만난 말과 병사들.

5년 후 을지 고 장군은 일단 자신감에 차 있다. 거란제국의 야망이 열리고 있었다. 제국 창업주 야율 아보기의 8대 손인 야율대석 왕손을 호위하여 천덕군을 탈출하여 인산사낵을 넘어 고비 사막을 헤매던 낭인시절을 지나 에밀에 왕도를 세운 지 40여 년이 지났다.
사람들은 제국 이름을 서요 또는 카라 키타이로 부른다.

당나라의 후예로 자부했던 요제국이 여진족에게 무너진 후 중앙아시아에 세운 나라였고 절세의 영웅인 야율 대석 카간이 40대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후에도 을지 고가 제국의 버팀목 노릇을 해오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자신이 있었다. 야율 카간이 통치력에 자신감을 얻게 되자 태자인 야율 요한을 할아버지인 야율 대석 못지않는 영웅으로 길러 볼 여유가 생겼다.

“태자 마마, 오늘은 대규모 모의전투가 있사옵니다.”
을지 고가 가벼운 마음으로 태자궁으로 들어서면서 말했다.

“사부님, 알고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태자 야율 요한은 전투복으로 바꿔입고 장검까지 왼쪽 옆구리에 차고 있었다.
을지 고는 군례를 올리고 태자 곁에 섰다.

“장하십니다, 소장. 이제는 몽골의 테무진이 부럽지 않습니다.”
“사부님, 어찌하여 툭하면 테무진을 말씀하십니까. 태자가 마음에 드시지 않으신가요?”

“아, 아닙니다. 결코 그런 뜻이 아니라 태자님이 그동안 키가 생각보다 자라지 않아서 소신은 은근히 걱정을 했으나 제가 초원지대를 다녀온 후 헌헌장부가 되셨어요. 어깨가 딱 벌어지고 몸이 기골이 잡히는데 앞으로 수년 내에 조부님보다 더 당당해지실 듯 해보입니다. 또 제가 테무진을 말하는 것은 제 마음 속에 태자님과 테무진이 자웅을 겨루는 날이 올 것 같은 예감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 오늘 전투 훈련을 잘 해내도록 소장이 앞장서서 태자님을 모시겠습니다.”

을지 고는 태자 요한 앞에서 정중한 해명을 하고 부대 지휘를 하러 나갔다. 그는 그의 애마인 백마에 몸을 사뿐히 올렸다. 태자도 자기 말에 뛰어 올랐다. 자줏빛 나는 태자의 말은 한나라 무제가 좋아했다는 한헐마의 개량종이지만 성격이 순하고 아직 미성숙한 태자를 보호할 수 있는 영리한 말이다.

을지 고는 거침없이 말에 올라 뽐내듯이 가슴을 한껏 펴는 태자의 모습에 박수를 보냈다. 부장들도 태자를 향하여 두 손을 흔들고 환호했다.

“태자 마마 만세! 만세! 만세!”
태자는 부장들의 열화와 같은 환호에 답하고 을지 고와 나란히 군진 앞에 섰다.

“여러분, 오늘의 모의전투는 실전과 같다. 이기는 부대에 상급을 듬뿍 내릴 것이다. 전사들의 숫자도 많으니 불상사가 나지 않게 하되 칼과 창 그리고 화공도 서슴없이 행하는 전투다. 알겠느냐?”“네!”

“1군과 2군으로 각각 나눈다. 1군은 준가르 평원 가까운 사막지대로 가라. 총사령관은 야율 직고 대장군이시다. 2군은 총사령관이 태자 마마시다!”
을지 고가 2군 총사령관이 태자라고 하자 군진이 술렁거리고 감탄사가 터져나왔다.

“태자 마마를 나 을지 고가 부사령관으로 모신다.”
태자의 부사령관이 을지 고라고 하자 전사들은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이며 창검을 두 손으로 들어 올리며 환호한다.

“출발!”
을지 고는 각기 1군과 2군이 동과 서로 나뉘고, 전사들도 더 보충하게 했다. 각 군이 최소한 5천명 씩은 되었다. 그리고 초원의 방식대로 전사들의 가족이 전사들의 후진으로 따르게 했다. 양 군진 간의 거리는 최소한 2km 이상씩 떨어져 있었다. 초원식 전투이니 역시 보병은 없었다. 모두가 기병들이고 병사들은 양측 군 모두 예측 불허의 긴장감으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가족들은 이동식 주거용 장비는 물론 살림과 식사 도구 일체를 가지고 있었다. 전사들의 예비용 말도 한 마리 이상씩 준비하는 것은 가족들의 책임이었다.

을지 고는 태자 주위에 맹수보다 날쌘 부장들을 배치했다. 물론 그 또한 태자와 한몸처럼 움직였다.
총사령관 태자의 명령이 떨어졌다.

“총 진군!!”
기다릴 것 없었다. 야율 직고 대장군이 지휘하는 1군 또한 진군령이 내려졌다. 양측 전사들은 화공을 시도할 지점에 와서 각기 멈춘다. 각기 전위 부대가 마치 학익진 전법처럼 거의 평행으로 진용을 가다듬었다. 어느 쪽이랄 수 없이 불화살이 날라오고 가는 데 장관을 이루었다.

태자군 주변에 불화살이 날라들었다. 그러나 태자는 을지 고을 힐끔 쳐다볼 뿐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을지 고가 혹시나 하고 걱정을 했다. 아직 전투 지휘나 전선에 나가게 하기에는 어리다는 야율 카간을 간곡히 설득하여 모시고 나왔는데 태자의 신변에 이상이 생기는 날이면 아무리 을지 고라 하여도 무사할 수 없으리라.

한동안 화공을 날리던 양 진영은 간격을 좁혀왔다. 양측 전사들이 아니라 태자군이 말을 달려 앞으로 나갔다. 태자군은 전투 대형을 넓혔다. 순식간에 3개 전투부대로 바뀌었다. 중앙군은 밀집형으로 태자의 지휘부를 옹위했고 양 날개로 활용할 기세를 보였다.

한동안 지켜보던 야율 직고 대장군의 1군은 상대의 변형을 무시하고 단일진용으로 대응했다. 다만 자기 부대의 후방을 방어하도록 했다.

“2군은 겁을 먹었나? 왜 재주만 부리고 있는가? 을지 고 장군! 그대는 자신이 없어서 유충하신 태자 마마를 전선에 세우는가?”

야율 직고 대장군은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으면서도 애써 위엄있게 외쳤다.

“무엄하다! 제국의 태자를 경멸하는가! 용서할 수 없다. 적장은 나와라. 내가 직접 대응하리라!”태자가 느닷없이 말을 몰아 나서며 시퍼런 칼을 뽑아들었다. 기세에 놀란 야율 직고는 잠시 주춤하면서 생각에 잠기는 듯 했다.

태자가 칼을 뽑았으니 을지 고가 긴장했다. 주변의 장수들이 태자의 주위를 방패로 단단히 방비했다. 태자가 칼을 뽑은 것을 신호로 삼아 좌우 양 군이 태자보다 한 발 더 빠르게 적진을 향하여 달려나갔다.

양 군은 모의 전투가 아니라 실전과 같았다. 칼등을 사용하고 창날이 없었다지만 양 군은 죽기 살기로 엉켜 붙었다. 태자군은 잘 싸웠다. 군진을 셋으로 나눈 것이 효과를 보았다. 중앙군인 태자와 을지 고의 지휘부를 뒤로 하고 좌우군은 날쌘 표범의 무리들처럼 상대를 격파해 갔다.

야율 직고 대장군은 양측 전세를 지켜보다가 전투 중인데도 부대를 급히 둘로 나눴다. 뒤늦은 전술 변화였다. 야율 직고의 군진은 뒤로 밀리고 전열이 흩어지는 모습까지 보였다.

그때, 태자가 을지 고에게 말했다.
“장군, 나를 따르시오.”

을지 고가 말릴 겨를이 없었다. 거침없이 적진 가까이 달려간 태자가 칼을 휘둘렀다. 태자를 호위하는 카라 키타이 최고 장수들 몇 명이 함께 엉켜서 적과 아군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치열한 승부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을지 고는 태자의 무모한 도전에 가슴을 조이면서 그의 좌우를 지켰다.

그러나 이를 어찌하나, 태자가 탄 말이 사고를 냈을까. 태자가 낙마를 했다. 태자는 칼을 뽑은 채 그 몸이 공중에 튀어 올랐다. 을지 고 또한 태자를 구할 길이 없었다. 하는 수 없었다. 을지 고가 몸을 날려 낙마하는 태자의 몸을 감싸안고 함께 뒹굴었다. 적에게 노출되면 안 된다.

태자와 한 덩어리가 된 을지 고가 정신을 가다듬고 보니 그의 백마가 그의 곁에 와 있었다. 을지 고는 온 힘을 다해서 태자를 안고 말 위에 뛰어올랐다. 주변을 살피니 부장들이 그제야 낙마한 태자 곁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부장 한 사람이 태자의 한헐마 고삐를 쥐고 을지 고 곁으로 왔다. 태자가 자기 말로 갈아타고 적진을 살폈다.

“태자 마마! 큰일 날 뻔 했나이다.”
“그래, 내가 아직 미숙해. 서두르다가 실수했어. 그러나 사부님이 곁에 계시니까 내가 기세를 한 번 올려 봤지. 아까 야율 직고 대장군도 가슴이 철렁했을 걸. 핫 하하하~.”
태자는 능청스럽게 말하고는 웃었다.

1, 2군의 전투는 아직도 계속되었다. 사생결단이었다.
“야율 직고가 물러서지 않는군. 내가 다시 한 번 칼을 뽑아….”
태자가 자기 칼을 찾았다. 칼집만 그의 옆구리 갑옷에 묶여 있었다.

“총사령관인 내가 목숨보다 더 귀한 칼을 잃어버리다니….”
“아닙니다, 태자 마마. 마마의 장검은 소인이 지키고 있나이다.”
부장 하나가 태자의 칼을 내밀었다.

을지 고가 모의전투 끝을 알리는 청색 깃발을 흔들었다. 양 군은 진땀을 흘리면서 싸웠다. 몇몇 부상자를 낸 정도로 실전보다 더 강렬한 전투훈련을 마쳤다.

“을지 고 장군! 오늘 전투 평가를 해야지요?”
“네, 야율 직고 대장군. 크게 수고하셨소이다.”

조효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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