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 15:6)에서 이신칭의 법칙이 역사 위에 등장했고, 유대 이스라엘은 아브라함과 하나님 사이에 약속된 이 믿음으로 예수를 메시아로 얻기까지 믿음의 승리를 했었다.

그러나 기독교는 갑작스럽게 16세기 마르틴 루터 등 개혁자들이 발견해낸 진귀한 물건이나 되는 듯이 안방 장롱 속에 넣어두고 있거나 학습교과서나 되는 듯이 서재나 책상머리에 두고 그 교리책에 먼지만 쌓이게 하고 있으니 될 일이 아니다.

하나님을 믿으니 이를 의로 여기신 그 뜻을 따라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산 자의 나라, 곧 하늘나라의 기초를 쌓았음을 우리 기독교는 깨달아야 한다.

부뚜막 소금도 집어넣어야 짜다는 잠언이 있다. 믿음으로 의로워진다는 교리책 모시고 다녀보아야 우리 신앙에 어떤 변화도 주지 못함을 알아야 한다. 이신칭의는 주 예수께서 나를 통하여 (나와 함께) 이루신 복음의 완성품이다(갈 2:20 참조). 내게 오셔서 내 심장을 작동시키시고, 나로 십자가 그 대속의 죽음에 동의케 하셨으며, 그리고 나를 온전한 희생물로 받으시겠다고 하신다.

그러므로 내가 내 몸이 아니고 내 소원이 내 욕심 채우는 것이 아니라 나와 너, 한국교회를 바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자 해야 한다.

이스라엘 역사를 보라. 그들은 개인의 생활이 민족과 국가로 곧바로 연결되어 왔다. 기독교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십자가 예수를 믿지 않는다 하여 미워하고 함부로 비난하는데 이는 이스라엘을 아직도 모르는 무지의 소산일 것이다.

이신칭의가 내 몸에 이루어지면 이스라엘은 물론 이슬람이나 기독교 자신의 모습이 새롭게 나타날 것이다. 대속신앙은 곧 이신칭의 법칙과 자기 동일성을 가지고 있는 기독교의 생명 그 자체이다.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으로 이신칭의 공부 다시 하고 루터의 묘비석 같은 꼴을 하고 있는 이신칭의 신앙을 우리와 함께 살아서 운동하게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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