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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 교회 함께 만나기’ 2회째7월 27일 루터중앙교회, 루터교-아나뱁티스트-침례교 만남
정찬양 기자  |  dsr12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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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1호] 승인 2017.08.09  15: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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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복음주의교회연합은 종교개혁 500주년 연속기획포럼 '한 몸, 다른 모습, 형제, 자매 된 교회 함께 만나기' 두 번째 시간을 가졌다. 이날 한국아나뱁티스트센터 총무 김복기 목사, 침례신학대학교 김승진 교수, 중앙루터교회 최주훈 목사(오른쪽부터)가 각기 자신들이 속한 교회의 역사와 오늘을 소개했다.

 

희귀하다는 표현이 맞겠다. 한국의 루터교회와 아나뱁티스트를 두고 하는 말이다.

한국복음주의교회연합(대표 이문식)은 종교개혁 500주년 연속기획포럼 ‘한 몸, 다른 모습. 형제, 자매 된 교회 함께 만나기’ 두 번째 시간을 7월 27일 오후 6시 30분 중앙루터교회에서 가졌다. 이날 한국의 루터교회와 메노나이트에 대해 밝힌 발제자들은 “희귀하다” “천연기념물급”이라는 말로 자신들을 소개했다. 그만큼 적은 교세이지만 자신들의 정체성을 이어가며 한국교회 안에 이웃 교회로 자리매김 해 온 역사를 전했다.

지난 5월 1회 때 가톨릭, 성공회, 정교회가 한 자리에 모여 주님 안에서 하나임을 확인한 데 이어 이날 모임에서는 루터교, 메노나이트, 침례교가 만나 그 여정을 이었다.

1부 함께하는 예전을 가진 후 김정태 목사(사랑누리교회)의 사회로 최주훈 목사(중앙루터교회), 김복기 목사(한국아나뱁티스트센터 총무), 김승진 교수(침례신학대학교)가 각기 자신들이 속한 교회에 대해 발표했다.

먼저 ‘종교개혁과 루터교회’로 발제한 최주훈 목사는 루터 교회는 세계적으로는 세례교인 숫자가 7천 5백만 명으로 기독교 신교 최대 교단이며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전국에 교회 49개, 전체 성도는 5천명도 되지 않는 적은 숫자라고 말했다.

한국교회 안에서 적은 교세로 이어온 이유에 대해 “1958년도에 한국에 발을 들인 후 선교 초기부터 ‘교회를 섬기는 교회가 되자’는 원칙을 지켜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런 이유로 선교 초기부터 라디오 방송을 시작했고, 기독교 통신강좌, 한국 최초의 헌혈운동, 컨콜디아 출판사, 한국 최초의 성경연구프로그램인 ‘베델성서’ 등 “한국교회에 건강한 자양분을 공급 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선교 원칙에 대해 최 목사는 “깨끗한 출발”이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나쁜 신학에 대항할 만한 힘, 즉 루터교회의 본질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고 질문하는 힘을 키우지 못했다”고 짚었다.

최 목사는 “종교개혁자가 물려준 가장 큰 유산은 매순간 자신의 자리에 대해 질문하고 저항하고 소통하며 새로운 공동체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 목사는 종교개혁 신학의 핵심으로 ‘칭의론’과 ‘만인사제직’을 꼽았다. 칭의론이 하나님과 인간의 수직적 관계를 다루고 있고 여기서 필연적으로 파생한 교리가 ‘모든 신자의 만인사제직’이라면서 “이 가르침은 사람과 사람이라는 수평 관계에 해당하며, 교회 정치 구조와 신자의 윤리적 삶을 구성하는 모토가 된다”고 밝혔다.

최 목사는 “루터교회의 직제는 언제나 위계적 지위가 아니라 질서를 위한 기능적 분화로 이해되면, 동시에 서로의 직무를 상호 존중하는 것이 루터교회 직제의 가장 이상적인 기본 틀”이라면서 “이와 같은 교리들은 모두 권위주의에 저항하고, 전통에 질문을 가지며, 그 질문지로 소통하고, 그 힘으로 교회와 사회를 변혁하는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힘을 지향한다. 그것이 기독교 신교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최 목사는 교단적으로 앞으로 풀어가야 할 과제로 “만인사제직의 정치적 적용”을 제시, 총회에서 위임된 최고의결기구인 실행위원에 일반신자들의 비율을 높이고 여성목사임직에 대한 문제 해결, 타교단과의 실제적 교류 등을 제안했다.

이어 ‘근원적 종교개혁: 아나뱁티스트와 매노나이트’로 발제한 김복기 총무(한국아나배티스트센터)는 “1525년 1월 21일, 스위스 취리히의 펠릭스 만츠의 집에서 처음 신자들이 모여 재세례를 시행한 것이 아나뱁티스트 운동의 시작이었다”면서 “비록 겉으로 드러난 운동의 시작은 유아세례 거부였지만 실제로 더 중요한 것을 성경적 교회의 회복이었다”고 소개했다.

한국의 아나뱁티스트 역사는 1952년 한국전쟁의 난민들을 돕기 위해 들어온 메노나이트 중앙위원회와 더불어 시작됐다.

김 총무는 “아나뱁티스트들은 종종 제3의 종교개혁가들이라고 소개되는데, 이는 동시대의 종교개혁이 온전한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뒷걸음칠 때, 성경의 가르침을 온전히 시행함으로써 종교개혁을 완성하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역사 속에서 급진적인 그들의 행보는 이단으로 분류돼 엄청난 핍박과 희생을 치르기도 했고 철저히 왜곡되고 무시되었다가 20세기에 들어와서 제3의 종교개혁가로 소개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오늘날 종교개혁의 맥을 이어가야 할 교회들이 혼탁한 기류에 빠져 있는 가운데 아나뱁티스트가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이런 물음에 대해 김 총무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김 총무는 “예수가 길이고, 진리고, 생명”이라면서 “자신들이 살았던 시대와 장소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부르심에 민감하게 반응하고자 했던 그들의 신실한 모습만이 우리에게 도전이 되어야 한다”고 피력했다.

이어 김승진 교수(침신대 역사신학)가 ‘침례교회 약사와 침례교 신앙의 특징’으로 발제했다.

다음 세 번째 모임은 9월 28일 아현감리교회에서 감리교, 성결교, 구세군의 만남으로 이어지고, 10월 26일 ‘신앙고백과 화해, 감사로 드리는 연합예배’로 만남의 여정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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