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 전문과정 공부하며 한국생명의전화 봉사하는 백선애 권사

자살하려는 사람을 
생명으로 이끌고 싶어 배운
상담, 내 안의 상처 해결

다양한 상담기법 사용하지만,
영혼을 온전히 치유하시는 분은 하나님

▲ 백선애 권사

“권사님, 내가 사람으로 느껴지시나요?”

온몸의 털이란 것은 모두 곤두서는 느낌. 그는 평소의 목소리가 아닌, 어린 아이의 째지는 듯한 소리로 “죽고 싶다”며 울부짖었다. 그날 밤 백선애 권사(56, 강남교회)의 잠을 깨운 교회 여신도회 회원인 김주현 집사(가명)의 전화 한 통은 마음의 상처로 인해 살 의지마저 잃어버린 사람들의 암담한 현실을 보게 했다.

조현증으로 밤이면 거리를 배회하기도 하고 자신도 모르는 행동을 하게 된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그날 밤의 전화도 김 집사는 깜깜, 기억에 없었다. 그것도 모르고 귀신 들렸다는 생각에 미친 듯이 방언을 쏟아냈던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니 오히려 웃음이 나왔다.

여신도회 회장으로서 책임감이 발동해 그와 가까이 지내면서 알게 된 건 김 집사에게 상처가 많다는 것이었다. 어린 자녀의 죽음, 이혼, 아들의 장애…. 감당하기 힘들어서일까. 그는 자꾸만 아이의 모습이 되어 현실과 유리된 생활이 깊어져갔다.

“신앙의 권면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이 있구나” 하는 절박함에 상담 공부를 시작했다. 김 집사를 제대로 돕고 싶어서, 그리고 자살하려는 사람을 생명으로 이끌고 싶어서. 그야말로 “배워서 남 줘야지” 했는데…. 상처투성이인 내 모습을 보기 전까지는….

 

# 아픔 들여다보기, 손 내밀기

“전화해서 자살하고 싶다고 얘기하는 건 살고 싶다는 절규예요. 잠깐이지만 그에게 살아갈 이유와 힘을 찾아주는 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예요.”

백 권사는 5년 전부터 크리스천치유상담연구원(원장 정태기)에서 상담 공부를 시작했고, 이듬해부터 한국생명의전화(원장 하상훈, www.lifeline.or.kr)에서 전화상담사 교육을 받고 봉사하고 있다. 

생명의전화는 호주의 시드니 시 알렌 워커 목사가 빚으로 인해 절망에 빠져 자살하려는 청년으로부터 받은 전화 한 통에서 시작되어 고독한 사람, 절망 중에 자살하려는 사람, 갈등으로 몸부림치는 사람들의 소리를 들어주고 위기의 순간에서 한 걸음 물러서 다시 삶의 끈을 잡을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해오고 있다.

국제기구로 한국에서는 1976년에 도입되어 일상에서 발생되는 각종 위기를 365일 24시간 끊임없이 전화로 상담해 주는 서비스를 비롯해 사이버 상담, 자살예방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자살자가 많은 한강 다리 곳곳에 수화기를 들고 빨간 버튼만 누르면 상담사와 연결되는 ‘SOS 생명의전화’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으며, ‘1588-9191’을 통해서는 고독과 갈등, 위기와 자살 등 삶의 복잡한 문제에 빠져 있는 누구라도 답답한 마음을 상담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서울시 성북구 오패산로26에 위치한 한국생명의전화 상담실, 백 권사는 오늘도 죽음으로 향하는 이들을 삶으로 돌이키기 위해 전화통을 붙들고 씨름했다. 역할극을 하며 분노의 대상을 대신해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기도 하고, 아픈 상처로 얼룩진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고, 성적인 고민 상담도 거뜬히 응대해 주었다. 어떤 상황, 어떤 상태의 사람에게 전화가 올지 모르니 전화상담부스에 있는 내내 긴장의 연속이다. 1건당 짧게는 30분에서 1시간가량 통화하고 나면 전화기를 쥔 손은 땀으로 미끌거린다. 그래도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처음 전화 받았을 때보다 조금이나마 가벼워진 것을 느낄 때면 더없는 기쁨이요 보람이다.

가족의 자살이 “내 탓”이라며 죄책감에 시달리다 자신도 자살하고 싶다며 전화한 젊은 여성. 주변에서 누군가 자살한 경우 못다 해준 것들 때문에 죄책감에 시달리다 연쇄자살로 이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백 권사가 깜짝 제안을 했다. “돌아가신 분에게 못해준 것, 아쉬운 것을 오른손으로 편지 써보세요. 그리고 그 편지를 그분이 읽었다고 생각하고 그분 입장에서 답장을 왼손으로 써보세요.”

그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고 했다. 죽은 가족의 입장이 되어 답장을 쓰면서 더 이상 슬픔에 잠겨 있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죄책감으로부터 헤어 나오게 된 것이다.

마음의 상처를 털어놓으며 우는 경우도 많다. 그럼 백 권사는 울음을 달래지 않고 그냥 들어준다. “실컷 울어야 감정이 풀린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12살 때부터 대인기피증으로 약을 먹었다며 고통을 호소하는 46살의 남성, 그는 사람이 무서워 길에 다닐 때면 복면으로 얼굴을 덮고 다닌다고 했다. 백 권사가 그에게 어린 시절에 대해 물었다. 그의 기억에 남은 한 컷, “아버지는 술 드시고 엄마는 아빠에게 맞아서 울고 있어요. 아빠를 말리고 싶지만 6살인 나는 힘이 없어요. 너무 무서워 구석에서 떨고 있어요.”

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셨는데도 남성은 어린 시절 상처를 털어내지 못해 아파하고 있었다. 백 권사는 “6살의 당신은 힘이 없었지만 지금은 아버지보다 힘이 세지요. 이제 아버지의 팔을 붙잡고 말려보세요.”

남성은 그때로 돌아가 아버지를 말리고 어머니를 구했다. 상상이지만 남성의 마음은 한결 편안해졌다고 했다.

상담을 할 때면 그동안 배운 상담기법을 총동원하지만 속으로는 하나님께서 한 영혼의 상처를 어루만지셔서 그 마음에 환한 빛이 밝혀지도록 간절히 기도한다. 영혼을 온전히 치유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믿음에서다.

 

# 상처투성이 잣대로 바라본 세상

4시간 동안 상담봉사한 후인데도 백 권사의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없었다.

“내 안의 깊은 상처를 해결하지 못했다면 내담자의 아픔을 들어주는 건 불가능했을 거예요. 상담은 우선 내가 건강해야 합니다.”

상담을 공부하기 전까지는 “나는 상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상담자가 되려면 먼저 내 안의 상처를 해결해야 한다는데, “없는 상처를 만들어 내라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할 만큼  자신에 대해 몰랐다.

하지만 상처투성이인 내 안의 나를 발견하고 그것이 해결된 후에야 왜 그동안 그토록 완벽주의자로 정답에 연연한 삶을 살았는지, 왜 이유도 없이 몸이 아팠는지를 깨달았다. 그리고 나의 상처가 해결되니 멀게만 느껴지던 어머니와의 거리도 가까워졌다.

7살 때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었다. 남편 없는 삶이 힘겨워서였을까. 백 권사는 어머니로부터 따뜻한 말을 들어보지 못한 채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것이 상처가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덧 완고한 어머니의 모습을 닮아 완벽주의로 살았다. 어머니의 모진 말들에 상처 받지 않으려 감정을 제거하는 게 습관이 되어 다른 사람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고 늘 신앙의 잣대까지 들이대며 정답을 제시하는 자신을 보게 됐다. 상대방은 공감과 위로를 원한 것이지 정답 내려주기를 바란 게 아닌데 말이다.

여러 가지 봉사를 하면서 요양원의 노인 분들의 몸을 씻겨주고 안아주면서도 정작 어머니는 멀게만 느껴졌다. 그런데 내 안의 상처가 해결되면서 비로소 어머니의 상처도 보였다. 홀로 사는 어머니를 방문한 저녁, 문가에 기댄 어머니의 얼굴에서 깊은 어둠이 보였다. “우리 엄마, 그동안 너무 외로웠구나” 하며 덥석 껴안는 딸의 품에 안겨 어머니는 그만 펑펑 울음을 터뜨리셨다. 어머니도 누군가와 감정 나누는 방법을 잃어버린 채 오랜 세월을 견뎌왔다는 걸 깨닫고 그날 모녀는 실컷 눈물을 쏟았다.

 

# 사랑, 생명을 살리는 힘

백 권사를 상담공부의 길로 이끈 김주현 집사, 지속적으로 대화하고 함께하면서 그가 놓아버렸던 것들을 다시 찾고 작은 것부터 새로운 시도에 나서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함께 기뻐해 주고 있다.

“절망에 빠진 사람을 구하는 것, 여럿이기보다는 한 사람이 내민 따뜻한 손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백선애 권사, 마음의 상처로 삶의 이유마저 잃어버린 이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손을 내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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