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조 년
한남대 명예교수

지난 번에는 ‘개혁의 대상도 되지 못하는 한국교회’라는 주제로 이 컬럼자리를 메운 적이 있었다. 그 글에 대해 한두 곳에서 반응이 있었다. 한 곳은 그것을 좀 더 확장하여 어느 잡지에 싣게 해달라는 것이었고, 다른 한 곳은 어느 부인이 그 글이 좋아서 당신이 출석하는 교회에 가지고 가서 읽었다는 것이다. 그러고 나니 개혁을 기념하는 한국교회가 곧 개혁의 대상도 되지 못할 만큼 형편없는 지경이 됐다고 무시해버리기에는 참으로 안 된 일이다. 스스로 개혁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되지 않는 것을 고민하는 크리스천들이 참으로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쉽게 개혁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교회들은 상당히 긴 기간 자체개혁을 하면서 삶을 연장할 것은 분명하다. 다만 60, 70년대 같은 교회의 붐을 다시 일으키기에는 시대가 너무 밝아졌다. 그렇게 숫자로 승부를 걸려던 것을 넘어서 진정으로 크리스천의 속삶을 살찌게 하는 개혁의 방향으로 나가야 할 것은 너무 당연하다.

독일에 있는 개신교회들이 추진하는 루터의 개혁에 대한 관심, 거기에는 크게 세 가지를 내거는 주제가 있다. 루터의 의미는 스스로 믿고,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행동한다는 점이다. 믿음, 생각, 행동이란 이 세 가지를 어떤 신조나 조직이나 제도에서 만들어 준 것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믿는 자 하나하나가 자신의 속으로부터 나오는 것을 따라서 제대로 믿고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의미다. 그러고 보면 몇 가지 속과 겉을 개혁해야 할 것들이 있음을 발견한다.

믿음은 정파정치를 하듯이 집단으로 패를 갈라서 사는 것은 아니다. 비록 어쩔 수 없이 내가 출석하는 교회가 속한 어떤 종파에 관계하는 것이지만, 그 안에서 개인들은 각각 스스로 자기가 믿고, 생각하고, 행동하고 살아가는 것이지, 어떤 미리 만들어진 것에 따라서 사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자유할 때는 자유한다는 어떤 선언을 외우고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스스로 자유하는 것을 의미한다. 복음은 사람을 자유하게 하는 것인데, 그 복음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신조와 조직과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노예처럼 살 때가 참으로 많다. 그것이 슬픈 일이다. 즉 신부나 목사나 교파나 전통으로 내려오는 사도신경이나 교파의 교리의 틀 속에서 헤맨다. 바로 이러한 점이 개혁의 대상이다. 겉을 부수고 속을 세우자는 운동이 개혁의 방향이 돼야 할 것이다.

그렇게 보면 일단 각 종파들이 존재의 근거로 삼는 종파를 없애는 일에 집중하여 생각을 모을 일이다. 그것도 어떤 종파단위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 개인들이 믿음을 따라서 할 일이다. 그리고 종파신학교를 없애고, 각종의 신학노선을 포함하여 가르치는 신학교의 통합운영이 나와야 할 것이다. 교회 안에 있는 각종 계급들을 없애는 것이 좋다. 장로 권사 집사 또는 목사나 신부 따위가 마치 교회운영의 기능이나 역할분담이 아니라 신앙연조나 신앙의 권위를 주는 것으로 착각하게 하는 점을 극복해야 할 것이다. 예배의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 형식을 떠나서 내용중심으로 나가는 것이 좋다. 요사이는 점점 더 의식이 강화되는 경향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복장이다. 개신교 목사들이 로만칼라처럼 된 것을 목에 두르고 다닌다거나, 예배시간에 입는 예복들이 점점 더 복잡하고 화려해진다는 점이다. 그런 것을 없애야 한다. 나는 지금 가톨릭의 개혁을 주도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에게도 건의하고 싶다. 성직자들이 입는 복잡한 복장제도를 아주 단순하게, 일반 사람들이 입는 것으로 바꾸는 것이 좋겠다.

옷은 물론 권위의 상징이면서 옷이 보여주는 내용을 포함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미 그런 것으로 갈라놓고 내용을 대신하게 하는 시대는 지났다. 옷 색깔이나 모자나 띠나 어떤 상징물로 믿음과 생각과 정신과 행동을 규정하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그러니까 제도에 따른 어떤 의식행위에 집중되던 것을 지나서 속알을 채우고 내세우는 방향으로 나가야 할 것이다.

이른바 ‘성직’이란 것에 대한 해석을 새로 할 필요가 있다. 어느 개인이 직접 진리와 하나님과 통할 때만 거룩해 지는 것이지, 어떤 직책이 곧 거룩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살아 있는 ‘성직’이 되게 하기 위하여 교회들의 성직제도를 개혁할 필요가 있다. 이른바 성직자라는 이들의 깨달음과 동시에 일반 성도의 깨달음과 계몽이 일어나야 한다. 그러기 위하여는 모든 성도는 개개인이 직접 하나님과 통하는 길을 닦고 연습하고 걸어가야 한다. 스스로 믿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아주 과감히, 교만하다고 할만큼 과감하게 밀고 나가야 한다. 성직에 대한 도전이 마치 하나님에 대한 불경한 것으로 믿게 한 미신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그러니까 평범한 삶 속에서 하나님을 직접 만나는 체험만으로 믿음과 활동이 채워질 필요가 있다. 바로 그 자리에서 참스런 종교개혁이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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