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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레즘으로 가자 >1<알로펜의 아시아(AD 610~1625) 천년여행 [ 217 ] / 사제 왕 요한 _ 22
조효근  |  dsr12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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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3호] 승인 2017.09.06  11:5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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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투루판, 사막지대에 모스크 건립이 한창이다.

을지 고와 태자 요한은 부하라 유대인 집성촌 외곽에 한동안 머물기로 했다. 부하라는 인도 불교가 터를 닦았다고는 하나 알렉산드로스 아시아 정벌전 때 박트리아의 영향을 받은 도시로 알려졌다. 박트리아는 파르티아 왕국보다 먼저 형성된 알렉산드로스의 인도 아시아 전진기지다. 박트리아 출신 왕비로부터 후계자를 얻어 기뻐했다는 이야기는 부하라에서도 쉽게 듣는 전설이다.

을지 고는 수만 명 정도로 집계된 유대인의 부하라 집성촌을 좋아한다. 고레스 대왕의 페르시아 이후 유대 이스라엘 디아스포라는 사마르칸트는 물론 우즈베키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의 드넓은 지역에 많이 살고 있으나 부하라에 특히 많이 살고 있다.

“태자 마마! 유대인들의 모습에서 오늘 우리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 사람들의 처지를 생각해 봅니다.”

태자 요한은 갑작스런 을지 고의 말에 이어 받을 말을 찾지 못했다.

“무슨 뜻으로… 하시는 말씀이세요?”

“지금 유대인이 로마 중심의 기독교에게 학대받는 형편이….”

“아, 알았다. 우리들 처지와 비슷했다는 뜻이군요.”

“절반만 맞았어요. 저는 부하라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을 안타가워 하는 것이 아니라 고대 페르시아 제국 전역에 흩어져서 살고 있는 유대인은 물론이고 바벨론 포로기 이전 이스라엘 북왕조가 앗수르 제국에게 페망(BC 722년)한 후 흩어진 사마리아 출신 이스라엘 정통파들의 행선지를 몰라서 안타깝습니다. 우리 네스토리우스 파 판지갠트 교구 소식으로는 파미르 고원 산지에서 고대 이스라엘 북왕조 출신 유민들이 살고 있음을 알고 있고, 카스피해 북방에서 흑해 변방에 살고 있는 사마리아 유민들이 다수 있었으나 요즘은 종적을 감췄다고 했어요. 태자마마는 아시죠. 우리의 지도자 알로펜 총 주교님이 활동하실 때니까 벌써 6백여 년 전이군요. 그때 알로펜 총 주교님이 그들을 직접 보호해 주셨던 일이 있었답니다.”

“사부님, 말씀은 알겠는데 왜 그렇게 사마리아나 바벨론 출신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을 마음에 두고 근심하시는지요?”

“간단한 판단에서입니다. 로마제국의 기독교가 왜 여기 있는 부하라 유대인이나 사마리아 출신 이스라엘을 부르지 못하느냐는 것입니다. 생명의 조화를 외면한 처사입니다. 유대 이스라엘의 하나님 백성들이나 로마의 기독교인은 오른팔과 왼팔의 관계입니다. 서로의 지체를 모아서 통일된 예수의 복음을 만들어야 합니다.”

을지 고의 말을 듣던 요한 태자가 갑자기 깔깔 웃으며 배꼽을 잡고 어찌할 바를 모른다.

“태자 마마, 나를 늙은이라고 비웃으시는 겁니까?”을지 고가 정색하며 물었다.

“아니, 아니오.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우리 네스트라우스파가 동방 땅에 버려진지가 1천여 년이 넘었으나 저들이 버린 자식 취급하고 있는데 피해자인 사부님께서 유대 이스라엘 처지를 말씀하고 계셔서 제가 어린 마음에 웃고 말았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누가 누구를 버리고, 또 우리가 무슨 피해자입니까? 우리는 로마제국보다 훨씬 더 큰 아시아 땅에 동방의 기독교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저들 로마 십자군은 지금도 우리에게 지원군 보내달라고 애걸복걸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한때 로마교회로부터 피해자요 버림받은 자라 했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지금은 우리가 더 당당합니다. 우리는 이슬람과 싸우지 않았고 유대인들을 괄시하지 않습니다.”

“아, 그렇군요. 제가 경솔했습니다.”

요한 태자는 을지 고 앞에 겸허한 자세를 취했다. 충격을 받았는지 얼굴이 하얗다. 

“야율 직고 장군에게 하신 말씀대로입니다. 점령지에서 타종교인에게 강압이 없어야 한다고 하신 말씀대로 우리는 가능한 한 살상을 최소화하고 타종교인들과는 어떤 경우도 분쟁이나 대립을 삼가야 합니다.”

을지 고 장군과 요한 태자가 토론하는 막바지에 유대인촌에서 연락이 왔다. 정보였다.

‘장군! 투르크 열심당들이 장군님이 이곳에 머물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라는 긴급 내용이었다.

을지 고는 아랫방 수비 장수들에게 연락했다. 네 명은 태자를 보호하고 을지 고는 밖을 응시했다. ‘카라 진’ 요원들이 주변에 배치되었다. 그들은 주변 모래밭에 몸을 숨기고 을지 고와 태자를 보호하는 특수 요원들이었다.

을지 고는 밤길을 이용해 메르브로 이동하기로 했다. 중앙아시아 지역 네스토리우스파 총본부가 있는 곳이다. 박트리아 제국의 박트라와 헤라트 중에서 기독교 인구가 많은 곳이다. 오늘의 투르크메니스탄 지역에 해당하지만 을지 고가 활동하던 12세기 말에서 13세기 징기스칸의 무자비한 파괴 작전의 메르브는 아름다운 도시였다. 정주 인구도 10만 명이 훨씬 넘고 페르시아와 중앙아시아를 경유한 중국대륙 간의 교통로이고 인도와 박트리아를 경유하여 페르시아로 이어가는 십자로이기에 이동인구가 수십만 명이나 되었다.

특히 기독교의 메르브 본부가 있고, 인도 불교,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 아라비아의 이슬람이 빈번하게 마주치는 곳이다. 12, 13세기는 셀주크 투르크가 메르브에서 멀지 않은 호레즘에 세력을 강화하고 있었다.

을지 고는 태자 요한과 함께 다음날 저녁때에 메르브에 도착했다. 그들은 총본부 이삭 총 주교와의 면담을 위해서 준비했다. 비서실 연락을 받고 총 주교 방으로 갔다.

“총 주교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건강은 어떠신가요?”

“나 괜찮아요. 이제 겨우 80살입니다. 낮에 날쌘 전사들이 장군이 오고 계신다는 연락을 주었어요. 나 식사 전인데 자리를 옮겨서 대화 나누고 싶소만. 아참, 같이 오신 소년이 누구신가요? 혹시…?”

이삭 총 주교는 요한 태자의 소년티를 의식하며 조심스럽게 묻는다.

“네, 저희 카라키타이 황태자이십니다.”

“뭐, 뭐요? 황태자라니…, 을지 장군님도 농담하실 줄 아세요?”

이삭 총 주교는 눈이 커진다. 흰머리에 하얀 턱수염이 따스해 보이는 인상이기는 하지만 눈을 크게 뜨니 눈에서 번쩍 불이 이는 것 같았다. 그는 매우 놀랐는지 놀란 표정을 거두지 못했다. 

“총 주교님, 어찌 저를 민망케 하시옵니까? 제가 나이 어리다는 생각 때문이신가요?”

“아니오. 그냥, 한 나라의 태자께서 험한 여행에 나서신 것을 보고 제가 감탄한 것입니다. 태자님, 카라키타이는 물론 우리 동방 기독교의 큰 인물이 되실 분이라고 을지 장군이 말씀하셨어요. 이렇게 뵙다니 이 늙은이 마음이 기쁩니다.”

“총 주교님, 제가 태자이기는 하지만 저는 을지 사부님의 제자입니다. 금번 여행을 통해서 훌륭하신 이삭 총 주교님을 뵙는 영광을 얻습니다. 많은 지도 부탁드립니다.”

“네, 네. 저도 영특하신 태자님으로부터 배울 게 있을 것으로 압니다.”

이삭 총 주교가 안내한 식당은 달빛 좋은 오늘 밤에는 더욱 아름다운 장원이었다. 꽃들이 만발해 있고 시원하게 트였으면서도 아늑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젊은이들이 한쪽에서 양고기 굽는 냄새로 은근히 식욕을 돋우는 초저녁이다.

“총 주교님, 저희는 부하라에서 쫓기듯 달려왔어요. 유대인촌 객관에서 쉬고 있는데 무슬림들이 해코지 할지 모른다 해서 길을 앞당겨 메르브로 달려왔어요. 왜 그럴까요?”

“응, 그거 이슬람과 유대교 간의 갈등 때문일 것입니다. 이슬람이 유대인 집단촌에서 함께 살자고 했는데 유대교가 난색을 표하자 심술이 났던 모양이더군요.”

“그렇군요. 지금까지 부하라에서 종교들 간의 갈등은 없었잖아요?”

“이슬람 종파들이 거칠어졌어요. 몇 십 년 전이죠. 카라키타이와의 전쟁에서 패한 셀주크투르크 산자르 술탄이 카트완 전투에서 대패한 후 아나톨리아(현 터키 앙카라지역)로 쫓겨갔으나 십자군 전쟁에 참전하여 승전하면서 크게 세력이 강화되었잖아요. 그가 지금도 을지 고 장군을 벼르고 있답니다.”

“그렇습니까. 내 목숨이 그에게 매우 소중한가봅니다 그려.”

“장군, 거 무슨 말씀이오. 뭐가 그토록 자신만만합니까?”

“네, 그럼요. 여기 내 힘과 자신감은 우리 카라키타이 태자 때문입니다.”

“사부님, 무슨 말씀을 그리하세요?”

“그러게요. 천하의 지와 용, 그리고 덕을 겸비하신 을지 고 장군이 소년 태자 때문에 기운이 난다니 나는 궁금하군요.”

“총 주교님, 우리 태자님은 왕국의 승계자가 아니라 이삭 총 주교님의 승계자가 되실 분입니다. 하늘의 주께서 사제요 왕이신 분으로 지명하신 분이십니다.”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80살 늙은이는 오늘 하늘로 가도 이 땅의 문제는 걱정이 없겠습니다. 그럼 요한 태자님은 들으세요. 우리 메르브는 그동안에 케레이트 옹 칸을 관심 있게 보고 있었는데 나이만 군주와 서로 앙숙인지라 불안합니다. 둘 다 그릇이 조금씩 모자라기도 한데다 초원지대는 언제 새로운 강자가 나올지도 모르잖아요. 요즘 몽골족의 테무진이라는 소년이 새로운 인물이 될 것이라는 여행자들의 말을 듣기도 합니다. 을지 장군의 가르침이면 요한 태자께서는 동방 기독교의 지도자가 분명합니다.”

총 주교의 말을 받아 태자 요한이 자기 소견을 말했다.

“총 주교님, 저는 사제의 자격과 군주의 역할이 과연 가능할까에 대해서는 조심스럽습니다. 사제노릇과 군주 임무의 병행이 불가하면 저는 기쁘게 사제로 남아서 동방아시아 기독교 발전에 제 맡은 책무를 다하겠습니다. 그러나 사제나 사제가 군주를 겸하는 일은 각 나라마다 각각 자기네의 책임을 다하면 될 줄 압니다. 나라가 각기 다른데 기독교가 최고의 종파라지만 남의 나라까지 간섭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총 주교 이삭의 눈이 다시 휘둥그레진다.

조효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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