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펜의 아시아(AD 610~1625) 천년여행 [ 218 ] / 사제 왕 요한 _ 23

▲ 중국 란주에 남아있는 동굴 속 집. 여기서 신앙의 박해를 피해 살았던 방이 있다.

 

총 주교 이삭은 태자 요한을 넋이 나간 사람처럼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의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눈동자가 붉어지는데 그는 애써서 자기 감정을 감추고자 했다. 내 눈앞에 있는 이 소년이 분명 소년의 티를 다 벗지 못한 떠꺼머리인데 어찌 그의 입에서 성자의 목소리가 튀어나오는가.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을지 고 장군 또한 백발성성한 상노인인 이삭의 심각한 충격 앞에서 그의 꿈을 깨울 수가 없었다. 곁눈질해보았으나 태자 역시 자기가 아주 몹쓸 잘못이라도 저지른 아이가 평소 엄격한 할아버지 앞에서 주눅 든 손주처럼 몸이 굳어 있었다.

그런 분위기가 아주 오래 가지는 않았다. 이삭 총 주교의 너털웃음이 장원 속 꽃 장식을 떨게 하고 아나톨리아 교구에서 선물한 초원시대 흉노들이 썼던 투구들이 진열대에서 흔들거릴 만큼이었다. 음식 시중을 들고 있던 소녀들이 놀라서 발걸음을 멈춘다. 

을지 고가 총 주교 이삭을 따라서 함께 웃었다. 하지만 태자 요한은 자세를 풀지 않았다.

총 주교 이삭이 꼿꼿한 자세로 앉아있는 요한 태자 앞으로 가서 초원의 방식으로 한쪽 무릎을 꿇고 이어서 얼굴을 들어 태자의 모습을 향했다.

“동방의 지도자로소이다. 기다렸나이다. 장차 우리 동방 아시아의 교구에 하나님의 은혜가 태자 요한님의 거룩한 기운을 따라서 융성하리라고 확신합니다.”

이삭 총 주교 곁으로 와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을지 고가 간신히 태자에게 눈짓을 했다. 이삭 총 주교를 일으키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요한 태자는 그대로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하는 수 없다 싶었는지 을지 고가 총 주교 이삭을 일으켜 세운 후에야 자리에서 일어난 태자가 이삭 총 주교 앞에 허리를 굽힌다.

“총 주교님, 어르신의 가슴 속에 있는 소원까지도 소년이 다 읽었나이다. 또 그동안 우리 교단을 지켜내기 위하여 총 주교님이 어떤 수고를 하셨는가에 대해서도 저는 을지 고 사부께 누누이 들어서 압니다. 이제 저희 젊은이들이 일어섭니다. 저희 키라 키타이만 해도 저와 같은 충성심을 가진 소년들이 수천입니다. 앞으로는 수만, 수십만으로 길러내서 나라를 지키듯이 동방의 기독교를 지켜내도록 총 주교께서 크게 지도해 주시기를 앙망하옵니다.”

의젓한 태자의 말에 자리에 앉았던 이삭 총 주교가 요한에게 두 손을 내밀었다. 자랑스러운 손주를 부를 때의 할아버지처럼. 요한 태자가 일어나서 이삭 총 주교 앞에 한쪽 무릎을 꺾어 군례를 올렸다. 이삭이 자기 앞에서 예를 갖췄던 대로 올리는 답례였다. 이삭은 태자를 일으켜 자리에 앉게 하고 말했다. 

“내가 오늘 두 분 앞에서 모처럼 한 말씀 드립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사정입니다. 여러분, 북 왕조 사마리아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 어딘지 아십니까?”

“저희는 잘 모릅니다.”

“나 역시 우리 동방아시아 선교 초기에 알로펜 총 주교님이 남겨주신 전승 자료를 토대로 조금 더 발전시킨 수준입니다만 저는 그들 북 왕조 사마리아의 흩어진 백성들이나 남 왕조 예루살렘의 디아스포라를 상대로 한 우리 기독교의 정신자세를 문제 삼고 있습니다.”

“이삭 총 주교님, 사마리아와 예루살렘 이스라엘에 대한 정신자세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요한 태자의 질문이었다.

“글쎄 뭐라고 할까, 기독교의 한쪽 날개라고 하면 어떨까. 아니면 한쪽 가슴이라고 표현할까요. 우리 기독교는 이스라엘 12지파 후손들과 한 생명의 일체감을 잃어버린 지 오래 되었습니다. 남북 왕조가 분열될 때까지로 거슬러 올라가기는 하지만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사건의 범인을 유대인으로 설정해 오늘날까지 기독교는 이스라엘 또는 유대교와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요. 애초부터 북 왕조 출신 사마리아 백성들이 당시 앗수르제국 변방이니까 지금 우리가 머물고 있는 이곳 메르브 땅을 비롯해 흑해와 카스피해 주변에 그들 대다수가 집단촌을 이루었을 것입니다. 뿐입니까, 남 왕조가 멸망한 이후 페르시아 고레스 대왕의 영토 안에 흩어져 살아갔던 예루살렘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출신이 피난살이 하던 곳에서 부딪치기도 했을 것이다.

이를 다시 정리해보면 예루살렘 출신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사마리아에서 추방된 북 왕조 이스라엘을 외면했고, 또 예루살렘 출신 유대인들이 페르시아 땅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로마 제국에 둥지를 튼 기독교가 그들 유대인들을 구세주 예수를 죽인 원수들이라고 미워하고 저주하는 것이 오늘까지의 현실입니다.

그런데 두 분 내 말을 잘 들어보세요. 이사야서를 펴보면 페르시아의 고레스대왕을 “기름 부음 받은 자”라고 표기하고 있어요. 성경에 이방 출신에게 기름 부은 자 호칭을 허락하신 사람은 오직 단 한 사람 고레스대왕입니다. 그래서 포로기 유대인들은 고레스가 메시아일 수 있다고까지 했잖아요. 이것이 무엇을 말합니까? 기독교는 로마제국과 함께 페르시아제국을 기반으로 동서양 세계를 지켜냈어야 했어요. 그런데 기독교가 페르시아를 버리니까 아라비아의 무함마드가 이슬람을 일으켜서 페르시아를 차지했어요. 현제까지 고대 페르시아 고레스의 영토를 거의 전부 차지했어요. 그들은 앞으로 로마 기독교의 영토도 절반쯤 빼앗아 갈 것입니다. 두 분 이 늙은이가 눈물로 호소하는 말뜻을 아시겠어요.”

이삭 총 주교는 눈물을 펑펑 쏟고 있었다. 실컷 울도록 을지 고와 요한 태자는 기다렸다. 눈물을 거둔 이삭 총 주교가 힘겹게 말을 이었다. 

“흑해와 카스피해를 중심으로 한 지역이나 현제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의 총대교구가 있는 메르브는 물론 박트라, 헤라트, 발흐 일대까지 차마 말하기 부끄럽지만 우리들 동방아시아 기독교가 1천여 년 동안 피 흘리면서 개척한 선교지가 이슬람의 영역으로 먹혀갈 겁니다.”

“아닙니다. 그럴 수 없어요.”

태자가 급히 이삭 총 주교의 말길을 가로막았다. 태자의 붉어진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이삭이 단호하게 말했다.

“태자께서는 이 늙은이를 용서하세요. 기독교의 로마 또는 서방의 기독교는 우리 동방기독교를 배반했어요. 여러분은 중국 당나라 시대의 기독교를 아시죠. 알로펜 총 주교가 당나라의 창업자인 당 태종과 어떤 관계였는지? 그때 만약 로마의 기독교가 중국과 외교관계를 유지하고 알로펜 총 주교의 선교활동을 직간접 지원했으면 지금 중국 일대는 기독교가 대세를 이루었겠죠. 그러나 유럽 기독교는 아시아 기독교를 계속 외면하고 있어요. 그러나 이슬람은 아라비아, 이집트, 페르시아, 중앙아시아 일대까지 마치 하나의 나라를 경영하듯이 하고 있습니다.”

이삭은 다시 눈물을 쏟고 있었다. 그의 눈 속에는 눈물 항아리가 크게 자리 잡고 있을까. 그는 마냥 울었다. 태자가 무슨 말을 하려 하자 을지 고가 저지하고 나섰다.

“총 주교님,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을지 고가 자신감 없는 말투로 질문을 던졌다.

“이슬람을 견제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알로펜 총 주교님의 제자들은 이슬람에게 지나칠 만큼  우호적이었어요. 그들은 우리 기독교의 호의를 기회로 뒤따라온 종교로서 이제는 중앙아시아 전체를 장악하려 듭니다. 그들은 아리비아에서 페르시아와 중앙아시아는 물론 아나톨리아 지역을 장악했으며 콘스탄티노플도 사실상 유럽 기독교가 고립시키고 있음을 알고 조심스럽게 먹어치우려 하고 있어요. 흑해 주변에서부터 동로마 지역까지 이슬람의 손아귀에 거의 다 들어갔습니다. 십자군 전쟁도 머지않아 이슬람의 승리로 종결됩니다. 제가 분석한 이슬람의 장악력은 지나칠 만큼 위협적입니다.”

이삭 총 주교의 논리는 단호했다. 그는 단정적으로 이슬람의 호전성을 고발하고 있었다.

태자 요한이 입을 연다.

“총 주교님, 그래도 우리는 예수님의 방법 외에는 모릅니다. 저들이 우리의 목숨을 달라면 줘야지요. 달라는 자에게 주라 하셨잖아요. 예수는 십자가에 매달려 죽임 당하셨지요. 당시 예루살렘을 앞세운 로마세력 앞에 목숨을 내주셨기에 나중에 로마가 기독교에게 로마를 통째로 바치지 않았을까요. 저의 신앙으로는 이슬람이 우리 기독교를 먹어 치우려다가는 다 먹기 전에 저들의 배가 터져서 기독교보다 먼저 죽고 지상에서 사라질 것입니다.”

이삭은 다시금 무슨 말을 하려다가 주춤거린다. 그는 태자 요한을 말없이 바라보기만 하고 있었다. 침묵을 깨고 을지 고가 입을 열었다.

“이삭 총 주교님, 제 생각에는 우리 태자마마의 선택이나 총 주교님의 지적이나 옳다고 봅니다. 현재로서는 우리가 붙잡을 다른 방법도 없습니다. 우리 기독교가 이슬람을 부추겨서 오늘날 이 꼴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역사를 되돌아보세요. 이슬람의 무함마드가 아라비아에서 종교를 일으킬 때 그곳에는 기독교 세력이 90%정도였고 나머지는 유대교였고, 일부 메카의 소수자들이 무함마드를 지지했어요. 무함마드가 메카에서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메디나로 도망 갈 때가 그가 이슬람 선언한지 12년차였는데 그를 따라간 신도들이 겨우 80여 명뿐이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런 그가 어떻게 오늘날 기독교 지지층을 앞지르게 되었을까요? 우리는 예수의 이름으로 죽을 수 있을 만큼 예수를 믿고 있는가부터 저마다 자기를 살펴봐야 합니다.”

“그럼 다 내주고 우리가 이슬람 터번을 쓰고 나서야 합니까?”

“아닙니다. 그건 이슬람도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앞날을 하나님께 맡기고 정정당당한 기독교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사는 날까지.”

태자 요한이 을지 고가 하고 싶은 나머지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계속)

조효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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