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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6% “‘만인사제’ 구현 필요하다”본지 설문조사(SMS)-목회자 342명, 성도 816명 등 1,158명 참여
양승록·정찬양 기자  |  dsr12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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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4호] 승인 2017.09.20  14:2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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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69.4%가 
‘목사를 포함한 모든 성도’라는 대답에는 목회자가 높게,
‘목사를 제외한 일반 성도’라는 30.6%의 대답에
무려 74.3%의 평신도가 응답

 

평신도들 성경의
‘너희는 왕 같은 제사장’(벧전 2:4~10)이라는 ‘만인사제’
절반가량 “모른다”,
87.8% 하나님 나라의 제사장으로서
책무 다하며 살지 못하는 것으로 인식

 

루터의 종교개혁 핵심 사안 중 하나였던 ‘만인사제’의 구현이 한국교회에 필요하다는 인식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교회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이를 기념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분주하다. 그러나 루터가 종교개혁 당시 부패한 가톨릭교회로부터 개혁을 촉구했던 핵심 사안 중 하나인 ‘만인사제’는 한국교회에서 얼마나 구현되고 있을까?

본지가 종교개혁 500주년과 창간 40주년을 맞아 ‘만인사제’와 관련해 진행한 설문에서 응답자 가운데 82.8%는 한국교회의 성도들이 삶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제사장으로서 책무를 다하고 있지 않다고 응답했다. 또한 89.6%가 “지금이라도 ‘만인사제’의 구현이 필요하다”고 응답,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그런데 왜 한국교회의 현실은 ‘목사’와 ‘평신도’로 나누어져 직분이 존재와 역할까지 구분하는 듯한 이분화 된 구조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설문은 8월 25일부터 9월 10일까지 SNS로 진행됐으며, 본지 독자(전체 참여자 중 50% 가량)를 포함해 20대부터 70대 이상의 목사 342명(29.5%)과 목사를 제외한 성도 816명(70.5%) 등 총 1,158명이 참여했다.

 

 ‘만인사제’  모든 성도의 책무

이번 설문에서는 한국교회의 ‘평신도’에 대한 인식을 묻는 질문과 함께 목사와 평신도의 구분을 넘어 그리스도인 모두가 하나님 앞에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삶에서 그 책무를 다하며 살고 있는지를 묻는 내용이 중심을 이뤘다.

1. 먼저 ‘평신도’에 대한 인식으로 질문을 제시했다. ‘평신도는 누구인가?’에 대해 ‘목사를 제외한 일반 성도’라는 응답이 목사 57.9%, 평신도 74.3%로 두 그룹 모두에서 높게 나타났으며 특히, 평신도 그룹에서는 월등히 높았다. ‘목사를 포함한 모든 성도’라는 응답은 각각 42.1%, 25.7%로 집계됐다.

2. ‘평신도도 설교와 성례 집전, 축도를 할 수 있다고 보는가?’ 질문에는 ‘아니다’라는 응답이 목사 67.5%, 평신도 55.1%로 ‘준비된 평신도는 가능하다’(각각 32.5%, 44.9%)보다 높게 나타났다.
응답 결과로 볼 때 한국교회 안에 ‘목사’와 ‘평신도’의 역할은 달라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한 것으로 분석된다.

3. 반면에 ‘하나님은 평신도(목사를 제외한 성도)보다 목사의 기도를 더 잘 들어주시는가?’에 대해서는 ‘아니다. 목사나 평신도 모두 하나님 앞에서 동등하다. 역할만 다를 뿐이다’라는 응답이 두 그룹 모두에서 각각 94.7%, 91.5%로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4. 본격적으로 ‘만인사제’와 관련한 질문에서는 ‘만인사제’에 대한 인식 여부와 함께 한국교회 성도들이 ‘목사’와 ‘평신도’의 구분을 넘어 삶 속에서 ‘제사장’으로서 살아가는가에 대한 부분에 집중됐다.  ‘한국교회의 평신도들이 성경의 ‘너희는 왕 같은 제사장’(벧전 2:9) 가르침에 따라 하나님 나라의 제사장으로서 그 책무를 다하며 살고 있다고 보는가?’에 대해 목사 92.1%, 평신도 86.0%가 ‘그렇지 않다’고 응답했다.

5. 이어서 ‘제사장으로서의 책무를 다하느냐’에 대해 ‘그렇지 않다’고 응답한 이유에 대해서는 목사그룹의 경우 ‘교회에서 제사장으로 살도록 가르치지 않고, 그러지 않아도 아무 문제 없기 때문’(48.0%)과 ‘제사장으로 살려면 세상에서 고민되는 것이 많은데 함께 풀어갈 지지기반이 없다(교회는 세상 속 삶에 무관심한 것 같다)’(40.8%)가 비슷한 비율로 높게 응답됐다.
평신도 그룹의 응답은 반대로 나타났다. 후자가 58.6%로 가장 높았고, 전자가 26.8%로 응답했다. 그 뒤를 이어 ‘그것은 상징적인 표현일 뿐 모든 성도를 제사장으로 생각할 수 없다’(11.2%, 평신도 14.5%)로 낮게 나타났다.

6. ‘‘만인사제’에 대해 아는가?’ 질문에는 목사의 93.0%가 ‘안다’고 응답한 반면 평신도는 절반가량인 52.9%만이 응답했다(‘잘 모른다’ 47.1%).

7. ‘한국교회에 ‘만인사제’가 구현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에 대해서는 목사의 경우 ‘오랫동안 목사와 평신도로 신분을 이분화 해온 구조 때문’이라는 응답(30.7%, 평신도 25.0%), 평신도는 ‘평신도들이 주체적 신앙보다 수동적인 신앙생활을 추구하기 때문’이라는 응답(33.8%, 목사 21.9%)dl 가장 높았다. 이 외에도 ‘‘만인사제’의 의미를 모르기 때문이다(교회에서 가르치지 않는다)’(각각 17.5%, 22.4%), ‘목사들이 평신도의 주체적 신앙생활보다 수동적으로 따르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이다’(각각 29.8%, 18.8%) 등에 고른 분포도를 보였다.

8. 특히 연령이 낮을수록 삶 속에서 제사장으로 사는 것에 대한 고민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교회에 ‘만인사제’가 구현되지 못한 가장 큰 이유’에 대해 20~30대에서는 ‘평신도들이 주체적 신앙보다 수동적인 신앙생활을 추구하기 때문’이 43.6%로 가장 높았다(40~50대 31.0%, 50~60대 25.0%, 70대 이상 18.8%).
또한 삶 속에서 제사장으로 사는 것이 어려운 이유에 대해서도 ‘제사장으로 살려면 세상에서 고민되는 것이 많은데 함께 풀어갈 지지기반이 없다’는 응답 역시 낮은 연령대에서 높게 나타났다(20~30대 63.8%, 40~50대 54.7%, 50~60대 49.0%, 70대 이상 43.8%).

9. ‘지금이라도 ‘만인사제’의 구현이 필요하다고 보는가?’에 대해서는 양쪽 그룹 모두 ‘그렇다. 그리스도인 모두가 제사장으로서 주체적인 신앙으로 살아가도록 해야 한다’는 응답이 압도적으로 높았다(목사 92.1%, 평신도 88.6%). ‘아니다. 정착된 구조를 바꾸면 혼란만 가중될 것이다’에는 각각 7.9%, 11.4%만이 응답했다.

 

   
 

 

‘평신도는 누구인가?’ 
- ‘목사를 제외한 
일반 성도’ 응답 높아, 
평신도 스스로 인식 변화 절실

 

 평신도? 성도? 그들은 누구인가?

이번 설문에서는 ‘평신도’에 대한 인식 부분의 응답이 눈에 띄었다. 평신도에서 ‘목사’를 제외해야 한다는 인식이 목사(57.9%)보다 평신도(74.3%)에게서 훨씬 높게 나타났다. ‘만인사제’의 구현을 위해서는 평신도 스스로 존재에 대한 인식 재고가 필요한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루터는 사제와 성도에 대해 하나님 앞에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존재’에 대해서는 동일하다고 제시했고 다만 역할에서 다르게 보았다. 그러나 한국교회 안에서는 ‘목사=성직자’, 평신도에 대해서는 목회를 보조하는 역할이나 목사보다 낮은 계급 정도의 인식이 팽배한 분위기가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그러다보니 주체적인 신앙의 자리로 나아가려 하기보다는 ‘여기까지’로 선을 그으며 때로는 ‘관망하는 신앙’ 양태를 보이고, 이런 현상은 삶 속에서 주체적인 신앙 실천이 더욱 요원한 현실을 가중시킨다는 분석이 높다.

지난 6월 IVF 한국교회탐구센터(소장 송인규)가 1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평신도 소명의식에 대한 개신교인 인식조사’ 발표에서도 ‘평신도’에 대한 인식 재고의 필요성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 조사에서는 평신도 스스로 목회자와 신분상의 차이로 보는 인식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평신도의 정체성’ 부분에서 전체 응답자 중 65.8%는 ‘평신도’ 개념에 목회자를 포함시키지 않는 것으로 응답했으며, ‘평신도도 제사장이다’(47.6%), ‘모든 성도를 다 제사장으로 생각하기는 어렵다’(44.5%)에는 의견이 비슷하게 나왔다.

또한 ‘목회자와 평신도는 직분에 따른 역할 차이가 있을 뿐 신분상의 차이가 없다’는 데 대해서는 전체 응답자의 60.8%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평신도의 교회 활동에 대해서는 공예배시 찬양인도, 선교활동에 대해서는 60% 이상이 ‘문제 없다’고 인식한 반면, 안수기도, 설교, 성찬식, 축도 등에 대해서는 60% 이상이 ‘목회자가 아니라서 꺼려진다’고 응답했다.

IVF 한국교회탐구센터 설문 결과 발표 포럼에서 ‘한국교회는 평신도 신학을 수용할 수 있는가’로 발제한 소장 송인규 목사는 ‘평신도’의 정체를 밝히는 데 초점 맞췄다.

송 소장은 “일반 그리스도인은 끊임없이 성직자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존재요, 성직자에 비해 무언가 급이 낮은 계층으로 몰아세우려는 가부장적 견해와 결별”해야 함을 강조하고 평신도의 관점에서 자신이 누구이고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탐구하는 ‘평신도를 중심으로 한 신학’의 필요성을 제시했다.

송 소장은 “성경에 ‘평신도’라는 단어나 안수 받지 않은 개인이나 계층의 개념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밝히고 ‘평신도’라는 용어 이해에도 재고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송 소장은 평신도의 영어 단어 ‘레이(lay)’의 근원을 밝혀주는 희랍어 단어 ‘라오스’의 의미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그리스도인들로 구성된 신앙 공동체”(행 15:14; 딛 2:14; 히 4:9; 벧전 2:9 등)를 제시, “성경의 평신도(라오스)는 그리스도인 전체를 통칭하는 말로서, 공동체 안에서 직분의 유무고하를 막론하고 또 성직자 여부를 막론하고 전체로서 하나님의 백성을 가리킨다”고 풀이했다.

송 교수는 평신도와 목회자의 차이에 대해 “하나님 앞에서의 신분(state) 관점에서는 동등하지만, 공동체 내에서의 직분(office) 면에서는 서로 차이가 생긴다”고 설명했다.

‘평신도’ 용어에 대한 부분은 본지 설문조사에서도 고민거리였다. 평신도 대신에 ‘성도’라는 단어를 생각했지만 목회자와의 구분으로는 한국교회에서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평신도’ 단어가 명확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응답자 중에는 ‘평신도’가 아닌 ‘성도’라는 단어를 택했어야 하지 않았는가 하는 문제제기도 있었다.

최석환 장로는 “목사나 평신도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로 부름 받은 그리스도인이고 다만 직분(역할)으로 목사와 장로, 권사, 집사 등으로 구분되어 있을 뿐”이라면서 ‘평신도’라는 단어 자체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장석환 목사(하늘기쁨교회)는 “벧전 2:9이나 루터의 만인사제 제시는 모두가 성경의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과 대면하는 것을 말했다”면서 ‘제사장’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장 목사는 “본래 평신도라는 말은 개혁주의적 용어가 아니다. 목사를 포함해 그리스도인 모두는 ‘성도’”라면서 “만약 풀타임 사역자가 되어 성경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것을 제사장이라는 의미로 사용한다면(구약의 레위인이나 제사장은 오늘날 풀타임 사역자로 그것에 집중하는 사람이지 신분의 면이 아니다) 목회자와 일반성도는 구분되는 것이 맞다”고 제시했다.

‘만인사제’ 구현은 제도보다는 인식의 변화와 성숙이 먼저라는 의견도 있었다. 계인철 목사(광천중앙침례교회)는 만인사제의 구현에 대해 “잘못된 뿌리라도 그것이 깊이 박히면 그게 상식이 되고 삶을 만든다”면서 “개개인의 의식이 성숙해야 본질적인 변화가 가능하지 제도를 바꾸는 것만으로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리스도인 모두의 
주체적 신앙·삶 제시한 
‘만인사제’ 
그러나 목사·평신도로 
계급화 된 현실

 루터가 주창한 ‘만인사제’란?

올해는 1517년 10월 31일 독일 아우구스티노수도회의 수사신부요 비텐베르크대학에서 성서학을 가르치던 신학박사 마르틴 루터(1483~1546)가 비텐베르크 교회 정문에 당시 가톨릭교회의 개혁을 촉구하는 ‘95개조 논제’를 내걸면서 시작된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해이다.

루터는 종교개혁이 본 궤도에 오른 1520년에 자신의 개혁 방향과 신앙 내용을 명백히 밝히는 내용의 세 논문 ‘독일 크리스천 귀족에게 보내는 글’, ‘교회의 바벨론 감금’, ‘크리스천의 자유’를 발표했다. ‘만인사제’는 그 중 ‘크리스천의 자유’에 제시돼 있다.

“우리는 왕 중에서 가장 자유로운 자들일 뿐만 아니라 또한 영원히 제사장들이기도 하다. 이것은 왕이 되는 것보다도 훨씬 더 훌륭한 일이다. 그것은 우리가 제사장으로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거룩한 일들을 서로 가르칠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제사장들의 직무이며 이 직무는 불신자에게는 주어질 수 없는 것이다.”

루터는 벧전 2:9에 의거해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제사장들이며 왕”이라고 밝히고 사제만이 성직이 아니라 그리스도인 모두가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제사장’이라고 강조했다.

“‘만일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이 다 제사장이라면 우리가 지금 제사장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일반 교인과 어떻게 다른가?’라고 당신은 물을 것이다. 나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겠다. 곧 ‘사제’, ‘승려’, ‘영적인 것’ 및 ‘성직자’란 말들이 그릇된 용법에 따라 현재 ‘성직자들’이라 불리고 있는 소수 사람들에게 잘못 적용되고 있다. …이러한 곡해(曲解)로 인하여 기독교의 은총과 신앙과 자유 및 그리스도 자신에 대한 지식은 완전히 고갈되어 버렸으며 그 위치는 인간의 공적과 율법의 견딜 수 없는 속박에 의하여 빼앗겨버렸다.”

루터는 특히 ‘만인사제’에 대해 사제와 성도 간의 대립적인 구도를 말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서 누리게 되는 참된 자유에 강조점을 둔 것으로 보인다. 당시 사제가 하나님과 성도 간의 중개자 역할로 인식되던 것이나 면죄부를 통해 하나님께 죄를 용서받는 등의 행위를 걷어내고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자유한 존재인 것을 설파했다.

“그렇다면 누가 크리스천의 고상한 진가(眞價)를 납득할 수 있는가? 그의 장엄한 능력으로 크리스천은 만물과 죽음과 생명과 죄를 다스리며, 그의 제사장적인 영광을 통하여 하나님이 요구하시고 원하시는 일을 행하기 때문에 그도 하나님과 함께 전능하다. …크리스천은 만물에서 해방 받고 만물에 대하여 자유로우므로 자기를 의롭게 하고 구원하기 위하여 아무 공적도 필요로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나 분명히 알 수 있다.”

루터는 그리스도 중심의 승리하는 신앙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크리스천의 자유’가 올바로 가르쳐져야 함을 강조하면서, “어떻게 하여 우리 크리스천들이 모두 왕들이고 제사장들이며 아울러 만물의 주이며 또한 우리가 행한 것은 무엇이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그의 마음에 들게 한다는 것을 굳게 믿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말해질 때 되어진다”고 제시했다.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3大 논문> ‘크리스천의 자유’ 참고-지원용 옮김/컨콜디아사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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