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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으로 살아내지 못한 것, 거품이었다…”20여년의 개혁운동·목회 벗고 “사람” 배움에 나선 구교형 목사
정찬양 기자  |  dsr12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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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5호] 승인 2017.09.27  12: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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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만을 요구하는 
삶에 끼어든 “위선” 걷어내기, 
힘겹지만 꼭 해야 할 일

“내가 모르는 믿음을 
어떻게 가르치는가?” 
목회 접고 
‘한 사람’ 찾는 삶 속으로

 

   
 

어지간한 기독교 개혁운동단체 대부분에 몸담으며 한국교회를 향해 개혁을 부르짖던 사람. 그동안 한국교회가 달라질 것을 요구하는 자리에 등장하며 적잖이 여러 매체에 이름과 얼굴을 알렸는데, 그가 더 이상 자기 모습 드러내기를 꺼렸다. 7년 동안 이어오던 목회도 접었다.

20년 가까이 교회개혁 운동가요 목사로 살아온 구교형 목사(51),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 목사, 위선에 빠지다

이 땅에 정의와 평등의 구현은 어린 시절부터 줄곧 관심사였고,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한 것도 그런 배움의 일환이었다. 친구들이 잘나가는 직업을 위해 준비하느라 분주할 때도 좀 더 공공의 유익을 위한 고민에 몰두해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

성경공부 모임을 통해 깊이 들여다보면서 정의와 평등 문제는 자연스럽게 하나님 나라의 구현과 맞닿았고 하나님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에 신학공부를 결심했다. 진보적인 성향의 그에게 믿고 따르던 스승은 “신앙은 기본뿌리에서부터 시작하는 게 필요하다”며 보수계열의 총신대를 추천했다.

신학교 졸업 후 당시 태동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 간사로 시작해 운동단체와의 만남이 이어졌다. 이후 남북나눔운동 간사, 교회개혁실천연대 사무국장, 평화누리와 성서한국 사무총장 등을 지냈다. 그러는 중에도 늘 떠나지 않는 부분이 “사람의 근본적인 변화”에 대한 갈망이었다. 목회 현장에 대한 계속적인 관심도 그런 갈증 때문이었다. 전임사역자로 사역할 때면 목사로서의 정체성에 충실한 듯 느껴졌다. 2010년에는 ‘찾는 이 광명교회’를 개척해 개혁의 가치에 동의하는 이들과 함께 걸어왔다.

그는 그렇게 주변의 요청에 따라 운동현장과 목회현장 사이에서 오가며 살아온 것을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른 삶”, “추구한 대로 살아온 행복한 삶”으로 믿어왔다. 그런 그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분명히 위기다. “위선에 빠진 나”와 직면했기 때문이다.


# 삶이 없는 설교는 거품일 뿐

“사람들은 내가 하는 말과 일을 보며 훌륭하다고 인정하고 박수쳐 주었고 나 역시 그런 칭찬에 만족하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속에서 일어났어요. 이유를 알 수 없는 분노로 내 마음에 평화가 바닥난 것을 보며 괴로웠어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싫어지고, 나름대로 옳다고 외치는 소리에 잘 반응하지 않는 성도들과 교회들을 보며 화가 치솟았다. 문제가 뭘까. 곰곰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깨달은 것은 “삶은 없이 정답만 제시하는 나 때문”이라는 결론이었다. 

상황과 사물을 비판적으로 인식하고 다름을 극대화시키며 정답을 요구하던 삶, 그것을 위해 자신에게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살아온 삶이었다. 상대를 이해하기보다 “너는 틀리고 나는 맞다”고 여기는 삶, 하지만 그런 모습에는 여지없이 위선이 끼어들었던 것이다.

그것을 자신보다 더 먼저, 더 아프게 꿰뚫은 사람은 바로 그의 아내였다. 운동현장에서 만난 아내는 늘 구 목사의 곁을 지켜주었다. 운동가로서 더 나은 생활을 추구하는 것이나 그런 문제로 고민하는 것은 탐욕이요 세속적인 소치라고 치부하며 마치 현실을 뛰어넘은 사람인 양 살아왔다. 그런 구 목사의 곁에서 아내는 생활의 무게를 혼자 짊어져야 했다. 어쩌면 “대의를 위해 희생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당연하게 여겼는지도 모른다. “당신의 말과 하는 일은 존경스럽지만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그것을 지켜보는 나도 행복하지 않다”는 아내의 말. 아내의 희생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아내가 많이 아파하는 모습을 통해서야 뒤늦게 깨달았다. 

아프고, 슬프고, 고통스럽고, 비참하고… 인간으로서 삶에서 겪어내야 하는 것들을 마치 초월한 것처럼 꾸미는 데 익숙했던 삶은 아니었을까. 구 목사는 그것을 아프게 깨닫고 있다고 했다. 그런 위선적인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가족의 아픔은 안중에 없었다. 그것은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라”고 설교했지만 가장 가까운 이웃인 가족, 그리고 나 자신도 사랑하지 못했고, “삶이 없는 설교는 거품일 뿐”이라고 그는 고백했다. 

구 목사는 아내의 이야기가 나오자 얼굴을 감싸 쥐고 쉽사리 말을 잇지 못했다. 공공의 유익을 추구하고 평등한 세상을 부르짖었지만, 자신의 위선적인 삶이 아내에게는 폭력이었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은 것 같다고….


# 목사, 나를 보다. 사람을 배우다

구 목사는 “내가 모르는 믿음을 어떻게 가르치는가?” 하는 생각에 올해 초 목회를 접고 현재는 서울 영등포의 한 노숙인 쉼터 시설장을 맡고 있다. 목사요 운동가이기 전에 자신을 더 깊이 들여다보고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 새롭게 배우는 시간을 갖고 싶다고 했다.

성경도 다시 읽고 있다. 이제는 ‘정답’에 연연한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사람을 어떻게 대하셨는지 그분의 진심에 초점 맞춘다. 그럼 상대방을 향한 예수님의 말뿐 아니라 그분의 표정과 눈빛, 몸짓이 조금은 보인다는 것이다. 

사마리아 여인과의 만남에서 여인에 대해 어떤 선입견도 없이 우물가에 털썩 주저앉아 갈증을 호소하는 예수님, 그분이 건네시는 자연스러운 대화에 여인은 비로소 진리를 향한 자신의 타는 듯한 목마름을 토로할 수 있었다. 병 고침의 현장에서도 단순히 병만 고치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을 꿰뚫어 보시고 회복으로 이끄시는 예수님의 진실한 모습을 닮고 싶다고 했다.

그가 몸담고 있는 한국복음주의교회연합(대표 이문식)에서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가톨릭, 성공회, 정교회, 루터교, 아나뱁티스트 등 한 분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며 각기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교 종파들과 만남을 시도하는 것도 신앙의 풍성함을 이해하는 데 큰 배움이 되고 있다고 했다.

“서로에 대해 만나고 대화하면서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그만큼 더 풍성해집니다.”

자신의 좌충우돌한 삶을 내어 보이는 것이 부끄럽지만 용기 낸 것은 “나 같은 또 다른 목사”들을 위해서라고 했다. 그는 “내가 모르는 복음을 그럴듯하게 설교하고 그것이 나인 줄 착각하는 것, 나도 속고 남도 속이는 것”이라면서 “한 사람에 집중하기”를 시도하라고 제안했다. 그 한 사람, 누구보다 나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는 게 우선이라고 말이다.

“인생 초보운전, 기쁘게 다시 시작한다”며 아직 익숙하지 않지만 새로움을 향한 걸음에 조금씩 속도를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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